<인천 주보: 빛과 소금> (1993.10.24)

 

신앙인의 페리호

 

성 염 (서강대 교수)

 

     페리호 침몰로 인하여 한국 해운사상 두 번째 큰 참사가 빚어졌다. 시신이 인양된 사망자만도 270여명이 되는 저 비참한 사고를 두고 천주교 믿는 우리 교우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일상의 사건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라고 한다. 하느님만 들여다 보시는 우리 속마음을 살펴보자.

 

“뭣 하러 집에나 있지 혼자 놀러갔다가 참변을 당해 처자식 과부 고아로 만들랬나?"(= 죽어서 싸다!). "쯧쯧, 되게 재수 없는 사람들이지... 수십 년 바다낚시를 다녀도 나처럼 풍랑 한번 안 만난 사람도 있다구..."(= 난 살았다!)."당신도 배 가지고 있어봐. 170명 정원대로 태운다면 당신들 굶어 죽는다구. 저까짓 370명 아무것도 아니라구. 난 한여름에는 500명도 실어 날랐다구. 머릿수가 돈이야 돈!"(= 돈이 하느님이야!). "어쩔 수 없어. 당신도 항만청에 있어봐. 돈 먹고 눈감아 주지 않을 사람 없다구. 우리나라 여객선 다 그렇구 그렇다구. 상부의 압력은 누가 배겨낸담..."(= 직장은 직장이구 신앙은 신앙이라구. 남 골 때리게 만들지 말라구!). "철도에서, 비행기에서, 배에서 대형참사가 일어났으니 이제 지하철에서 일어날 것이다"(= 구경 구경 해도 떼죽음 구경이 최고지!).

 

옛날 옛적 예수님을 찾아와 사람들이 군산 페리호사건(?)을 들려드리자 예수께서는 뜻밖에도 퉁명스럽게 대꾸하셨다. "실로암 탑이 무너질 때 깔려 죽은 열 여덟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들인 줄 아느냐? 아니다. 잘 들어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루가13,4-5). 예수님의 말뜻이 무엇일까?

 

방금 꼬집은 우리의 속말 그대로들 한다면, 저 엄청난 참사가 죽은 사람 죄 값이거나 재수가 없어서 일어났다.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서는 어쩔 방도가 없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뜻이다.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돈 욕심과 사회부정이 저지른 참극을 염치없이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는 손을 턴다(이럴 때는 "하느님 뜻"이라고 하는 말이나 "하느님 탓"이라고 하는 소리나 똑같다). 예수께서 불쾌하게 역정을 내신 이유가 우리의 이 못된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 말씀이 한결 마음에 걸린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간단한 예로 난폭운전, 음주운전을 무슨 자랑처럼 떠벌이는 교우를 보자. 하느님의 눈에 그 교우는 이렇게 장담하는 셈이다. "걸어가는 너는 내 차에 치어 죽어도 단단한 자동차 속에 있는 나는 죽지 않는다. 기껏해야 운전 면허증 몰수당하고 6개월 감옥살이다. 네가 병신 되어 살아남는다면 보험으로, 돈으로 떼워 주지 뭘 그래. 나 돈 좀 있다구...." 한 마디로 그런 운전자는, 유식한 말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범이다. 난폭운전 중에, 음주운전 중에 아직 살인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누구든지 치어 죽일 속셈으로 자동차라는 흉기를 몰고 다니는 살인범이다! 그래서 트럭을 운전하는 살인범을 만나면 자기가 죽는 것이다. 온 가족을 태운 채로!

 

사람 죽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지난 30년간 나라를 "총체적 부정"으로 만들어버린 영남 땅 군인들만이 아니다. 페리호에 탄 300명을 죽인 사람들은 선주나 선장이나 항만청 직원들만 아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페리호가 들어있다. 어느 신문 제목이 잊히지 않는다. 바다 속에서 인양해내고 보니 “페리호는 거대한 관(棺)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