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1993.5.30)

 

누가 누구를 용서합니까?

 

성 염 (서강대 교수)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는 체험이 하나 있다. 80년 광주항쟁이 불붙던 무렵이었다. 성당에서 살다시피 열심한 교우 한 사람이 이웃에 있었는데 광주에서 전화로 들려온 얘기를 필자가 들려주자 이렇게 대꾸하였다. "에이, 무슨 터무니 없는 얘기를 그렇게 하세요. 사실을 알아야지 교우로서 그런 거짓말을함부로 퍼뜨리실 수 있나요? 계엄사의 발표나 텔레비젼 뉴스를 보시라구요!"

이듬해 사제단이 성명을 발표하고 독일에서 만들어졌다는 비데오도 성당에 나돌기 시작했다. 그 교우는 필자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아이구 참, 빨갱이들이 제작해서 좌익들을 통해서 돌리는 선전물을 다 믿으시나요? 신부님들이 순진해서 속는 거라구요." 십년 후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고 <어머니의 눈물>이 방영되었다. 소감을 묻자 교우는 필자를 노려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게 사실이라 합시다. 그러니 어쩌자는 겁니까?" 그 뒤 그 형제는 나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1980년 5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하다는 대한민국 군대, 그 군대의 최정예부대 공수특전단이 맨주먹의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장교 사병 할 것 없이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그 군인들 속에는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있었다. 어떤 교우들은 광주 시민들을 죽이면서 "그런 일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린다."(요한 16,2)고, 국가를 방위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필자와 인터뷰한 어느 외국인 기자가, 모모한 교구의 성직자들이 말하기를 "호남은 본래 좌익들이 많은 곳이라 이번 사태도 그 빨갱이들이 일으켰다."라고 하는데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일도 기억난다. 13년이 지나자 그 군인 교우, 그 성직자들이 앞장서서 "용서하자!"라고 외치고 다닌다. 광주 시민들이 바라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한풀이"요 "보복"이란다.

 

10.26 때, 여자들을 거느리고 술 마시다 총 맞아 죽은 불교신도를 위해서 한국 교회의 모든 주교님들이 합동으로 미사를 올렸지만, 광주의 학살된 동포들을 위해서 모든 주교님들이 합동으로 미사를 올린 적은 여지껏 없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사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23,34)라는 예수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본시오 빌라도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으며..." 이렇게 전 세계 15억 그리스도신자들이 매주일 외운다. 2천년이 지나도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자기네 무죄한 주님을 죽였는지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