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1993.9.26)

 

박해자의 후손들

 

성 염 (서강대 교수)

 

     "너희는 순교자들의 무덤을 단장하고 성자들의 기념비를 장식해 놓고는 '우리 조상들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조상들이 순교자들을 죽이는 데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떠들어 댄다. 이것은 너희가 순교자들을 죽인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것을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일을 마저 하여라. 이 뱀 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마태 23,29-33). (주의: 필자가 불순한 의도에서, 예수님 말씀 중 "예언자"를 "순교자"로 살짝 바꿔놓았다.)

 

<순교자 성월>을 마쳐가는 인천교구 신자 중에 이 구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 엄청난 저주가 자기한테 해당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 천주교신자가 되어 있으니까 순교자의 후손이지 박해자의 후손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박해자들과 그 후손은 온데간데없고 순교자와 그들을 받드는 영예로운 후손만 남은 셈이다.

 

과연 대원군 시대에 선량한 백성들은 우리의 순교선열을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국가보안법보다 두려운) 상감마마의 뜻을 어기고 서학을 믿는 대역죄인들,(오대양교 같은 사교를 믿는) 사학죄인들, (쏘련이나 중국 같은) 오랑캐의 패거리, 제사를 거부하고 신주를 불사르는 불효막심한 패덕자들로 여겼음에 틀림없다. 천주학쟁이들을 죄도 없이 억울하게 학살당하는 희생자라고 보는 백성이 얼마나 있었을까? 백성들 눈에는 죽일 놈들이 죄 값으로 죽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교우들은 묵묵히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고 자기들도 그 길을 따라갔다.

 

토마스 안중근 형제가 민족적 거사를 하였을 적에 "불측한 조선인"이라고 욕하던 우리나라 신문들이 지금은 그를 "안중근 의사"라고 부른다. 그런 살인자는 "천주교신자가 아니다."고 우겼고 최후의 고백성사마저 거절한 경성천주교가 80 여년만에 그를 추도하는 미사를 올렸고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의로운 신앙인의 귀감으로 칭송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조심스러워진다. 70년대의 암울한 시대에 억압받는 국민을 편들어 외치고 투쟁하다가 많은 사제들이 투옥당하고 박해받을 때였다. 보수적인 성직자들이 참다 참다 못해"정의를 운운하는 신부들은 싹 쓸어 없애시오!"라는 말투의 성명서를 신문에 내고 서명들 했다. 10.26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분들이 하루만 더 참았더라면 자기 이름들이 영구히 신문에 새겨지지는 않았을 텐데....

 

누구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다고 말한다. 교구 차원 본당 차원의 자선도 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아예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되는가? 그런 식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은 권력자들한테서 제거당해 왔을 뿐더러 대개 교회로부터 저주받았다. 빈민운동, 노동운동, 민주운동을 하는 성직자와 신자들은 비웃음 당해 왔고 돈을 내더라도 교회 건물에 세 들지 못했다. 전교조 선생님들을 교회 학교들이 먼저 쫓아냈다. 남북통일을 바라고 '침묵의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면서도 정작 침묵의 교회를 찾아간 사제와 교우들(문규현, 서경원, 임수경)을 주교님들이 형리들의 손에 넘겨주었다!

 

순교성인들과 안중근 의사처럼 이 사람들이 몇 해 후에 순교자와 의인으로 받들어질 때에, 여지껏 그들을 욕해온 우리는 어찌되는가? 앞에 읽은 주님의 저주가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