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보: 빛과 소금> (1993.7.25)

 

北美 회담과 美北 회담

 

성 염 (서강대 교수)

 

     지금은 온 데 간 데 없어지다 시피했지만 70년대에는 교회일치운동이라는 것이 활발했었다. 개신교 신자들을 “프로테스탄트(= 반항자)”라고 부르지 않고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다시 한 교회를 이루어보자고 노력했다. 만나서 기도도 함께하고 모이기도 하고 사회정의를 위해서 일도 함께 했다. 만일 우리가 "열교도(= 지금의 개신교 신자를 일컫는 말)라고 할지라도 죽기 전에 가톨릭교에 들어오지 않으면 영원한 불에 빠진다."(1442년 플로렌스 공의회)라고 믿는다면 개신교와 일치를 이루겠다는 대화는 그들을 어떻게든 구원하겠다는 서뿌른 열성에서 천주교로 끌어들이겠다는 속임수가 된다. 1962년 바티칸 공의회는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회담을 하면,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의 나라요 상대방을 예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신문에서는 <韓美 정상회담>이라고하지 <美韓 정상회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문제 되면 거의 <美日관계>라고 한다. 우리와 가까운 쪽부터 나라 이름을 앞세워 표기한다. 지난 주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를 두고 회담을 열었다. 그런데 그 만남을 보도하는 기사 제목들을 보면, 보수계 신문들은 <미국-북한 회담>이라고 불렀고, 진보적인 신문들은 <북한-미국 회담>이라고 불렀다.

 

지난 7월 6일자로 발표된 통일원산하 민족통일연구소가 조사한 국민 여론에 의하면 국민의 79.5퍼센트가 북한을 경쟁하고 적대할 세력이 아니라 협력하고 도와야 할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 7월 11일자로 월드리서치가 조사한 바로는, 북한이 설령 핵개발을 하고 있고 북한과 미국의 회담이 실패하더라도, 국민53.2퍼센트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재제를 가하는 것에 반대하였다. 이런 사람들은 38선 너머에 사는 북한인들이 그래도 우리 동포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번 모임을 <북한-미국 회담>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온갖 비리로 쇠고랑을 찬 무리들, 광주에서 국민을 학살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군인들이 나라를 쥐고 흔들 때에는, 여차하면 미군의 핵폭탄이라도 던져서 북한과 그곳 동포를 몰살시켜야 한다는 투의 말들이 간혹 신문지상에 나왔었다. 위의 월드리서치 조사에서 응답자 43퍼센트는 군사재제를 가해서라도 핵무기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대답하여, 군사정권의 암담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 미사에 참예하고 있는 신앙인으로서 나는 이런 정치 사안에 어떻게 처신함이 복음적일까? 개신교인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는 것과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우리의 구원관이 숨어있듯이, <북미회담>이니 <미북회담>이니 하는 간단한 말마디에는 신앙인의 민족관과 통일의지가 숨어 있다. 7.4공동선언 이래로 군사정권의 통일쇼에 여러 번 속은 터라서, 필자는 남한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까지는 그 통일 의지를 믿지 않겠다는 기준을 내심에 정해 두고 있지만, 통일을 바라는 국민의 천심을 굳게 믿으며, 북한의 동포와 그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