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 읽기
요즘 로마의 전철이나 기차에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읽는 이들이 곧잘 눈에 띤다. 필자는 ‘천사와 악마’도 마저 읽고 나서 살인의 무대가 되는 피아자 델 포폴로, 바티칸 광장,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나보나 광장의 분수대를 호기심 있게 둘러보았다.

물론 소설은 상상력이 낳은 허구이다. 가톨릭교회의 뼈아픈 과거사를 들추면서 베스트셀러를 지어 내는 문학가의 추리력도 하느님이 주신 능력인 만큼, 소설을 읽고 우리 신앙의 다른 면을 엿보는 눈을 얻는다면 이로움이 없지 않다. 작품 결말에도 악마의 화신은 ‘오푸스데이’의 아링가로사 주교가 아니라 기호학자 티빙이지 않던가!

우선 ‘하느님의 사업’(Opus Dei)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딴 ‘오푸스데이’는 1928년에 스페인에서 창립되어 로마교회가 공인한 성직자단이다. 창립자 에스크리바는 2001년에 현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고, 로마에 산타크로체라는 신학대학을 두고 전 세계에서 모여온 신학생을 해마다 30여 명씩 사제로 서품하여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수도회가 어느 정도 커지면 교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 성좌설립 수도회가 되듯이, 당초부터 교구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성직자단이 교회법에 새로 생겼고 오푸스데이가 처음으로 등록되었다. 오푸스데이는 몇 가지 특징(엘리트위주, 비밀고수, 경건주의) 때문에 소설의 표적이 될 만큼 호기심을 끄는 듯하다.

둘째, 마리아 막달레나니 주님이 성찬에 쓰셨던 성배니 하는 것들이 소설의 주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가 참 하느님이면서 또한 참 사람이라는 교리를 우리가 믿는다면 소설가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동정을 표하여 <예수 그리스도 슈퍼스타>니 카찬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니 하는 글을 쓰더라도 성숙한 신앙으로 웃어넘기면 된다. 책 판매나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언행은 되레 그런 작품을 베스트셀러로 만들 따름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경건함을 중시하지만 보수적 입장으로 교회 내에 근본주의를 조성하여 ‘도덕적 종교인이 비도덕적 정치사회를 건설’하는 결과를 낸다면 우리는 종교가 문학이나 예술을 두려워한다는 저 작가들의 비난에 말려들 염려가 있다.

댄 브라운이 독자에게 깨우쳐 주려는 다빈치의 진짜 코드는, ‘장미의 이름으로’를 쓴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빌리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진리, 이성과 과학에 대한 철없는 두려움, 웃음을 잃은 신앙”에서 악마의 얼굴을 찾는 지혜가 아닐까?

[서울교구 주보 원고 2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