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가톨릭 공격을 보고서

 

“남아도는 쌀, 풍년이 두렵다”

     이 즐거운 비명은 지난 9월 6일자 「주간 한국」의 표제기사 제목이며 금년의 대풍을 앞두고 거의 모든 언론에 비슷한 기사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세계 곡물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의 메이저들이 밀농사가 풍년이면 과잉 생산된 밀을, 수백만 명이 굶어서 죽어가는 비아프라나 르완다에 보내는 대신에 태평양에 쏟아 붓는다는 소문이 참말이라면, 신앙인들의 귀에 쌀 풍년을 탄식하는 말보다 하느님 귀에 저주스러운 소리가 또 있을지 궁금하다. 해마다 유엔과 세계의 식량구호단체가 북한을 방문하여 백 수십만 섬이 부족하다는 발표를 하는 터에 남한이 북한의 굶주린 동포를 먹여 살릴 이보다 좋은 기화가 없거늘 “남아도는 쌀”이 두렵다니!

동해바다에 처넣으면 처넣지 북한 사람에게는 주지 말라는 국민이 설혹 있다면, 그 쌀이 군량미로 쓰일지 모른다느니, 인민은 굶어죽는데 김정일 아들은 몇 만 불을 지니고 다녔다느니, 북한 사람은 쫄쫄 굶어봐야만 봉기하여 공산당을 때려잡을 테니 굶겨야 싸다느니 하는 가톨릭 신자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제발 한 가지만 귀담아 들어주기 바란다. “이 지극히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니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심부름꾼들을 위해서 마련된 영원한 불 속으로 가라!”는 주님의 저주에는, “빨갱이들한테는 예외로 하고”라는 단서가 없다는 사실이다.

1998년 북한의 기아가 한창일 적에 필자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던 이탈리아의 언론들은 아이들이 통통하게 살찌고 여인들이 비만으로 헬스클럽으로 몰리며 일 년에 2조원의 음식쓰레기를 배출하는 남한과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자라지도 못하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대조하는 사진들을 나란히 싣고서 “오형오제(惡兄惡弟)” 못된 형에 못난 동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다투어 실었다.

 

남한에서는 김영삼 장로 대통령이 북한에 쌀을 보냈다가, 천주교에서는 「한마음 한 몸 운동본부」의 주선으로 “국수 한 끼니 나누기” 운동을 전개하다가 “왜 빨갱이들한테 먹을 것을 주느냐?”고 호통 치는 보수언론과 광기어린 신도들의 항의를 많이 받았다. 김대중 가톨릭신자 대통령의 북한 돕기도 야당과 보수를 자처하는 신문들한테는 “퍼주기식 외교”라고 줄곧 욕먹어 왔다. 남북간의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는 “ 햇볓 정책”이 복음에도,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에도 아울리는 것 같은데 임동권 통일부장관의 해임에서 보듯이 보수우익의 “전쟁불사론(戰爭不辭論)”이 예사롭게 터져 나오는 광경을 보면, 특히 사랑과 용서를 배운 그리스도교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한없이 안쓰럽다. 예를 들겠다.

“반공기독교여, 총궐기하라!”

금년도 월간조선 9월호 표지는 「중대 동향! 기독교 보수교단의 반공궐기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굵직굵직한 제목만 보아도 “친북세력에 대항할 세력은 반공기독교뿐”(이근미), “기독교인만 의식화되면 적화 막는다”(차국찬 목사), “살인자 김정일을 환영하면 의(義)가 없는 나라”(김한식 목사) 등으로 이어진다. 몇해 전 「한국논단」이라는 우익잡지에 「반공의 보루 가톨릭에 침투한 공산주의의 망령」(박무식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이태호의 글)이라는 글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욕하고 “서강대 교수 성염”을 친공주의자로 거명하던 일보다 한걸음 더 나갔다.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의 “반공기독교 총궐기론”은 간추리면 “김정일은 사탄이며 기독교의 적이다. 따라서 이들을 돕고 있는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은 보수 기독교단의 투쟁대상이다. 현재 진행 중인 언론개혁이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죽이기 위한 언론탄압이다.”라는 요지이다.

물론 반공운동에 동원되는 그리스도신자들은 “한국기독교협의회”(KNCC)에서 떨어져 나간, 보수교단들로 만들어진 “한국기독교총연맹”의 성직자들이요, 조갑제 사장을 초빙하여 “이 정권의 햇볓 정책이 조국의 운명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면서 이에 반대하여 영적 전쟁을 선포하는 강연회를 여는 교파는 “고신파”에 속하는 교회들로 알려져 있다. 일반 개신교신자들이야 복음에 물들수록 “용서받기보다는 용서하기”를 기도하고 가톨릭신자들 대부분은 주교님들이 지어주신 기도문(“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 가톨릭기도서 99쪽)대로 “한 핏줄 한 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 잘못을 깨우쳐주소서. 분단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은총을 내려주소서.”라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다.

“천주교는 좌익에 친북”(?)

조선일보가 지난 7월 10일과 12일에 독자투고란을 이용하여 가톨릭을 좌익 친북세력으로 공격한 일을 독자들은 다수 기억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신문사마다 독자부장이 따로 있고 투고된 원고들이 사시(社示)에 준하여 얼마나 엄선되는지는 신문에 글을 올려본 사람들은 다 안다. 필자는 대통령을 신자로 둔 “구교”에 대한 반발과 증오를 이용하여 개신교 보수집단에 반공의식 혹은 집권당에 대한 적대감을 대중화하려는 조선일보의 심리전술로 보았다.

6.25 참전호국군인연맹 사무총장의 직함을 내세운 최종태라는 사람은 7월 12일자 조선일보에 “도대체 왜 우리나라 가톨릭은 반미, 친북에 앞장서는 느낌을 주는가? 신부가 북한에 가서 김일성 시신 앞에서 기도를 올렸는가 하면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매향리로 데리고 가서 반미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친북 색채가 짙은 성명에 단골로 들어가시는 추기경님이 있고 구색이라도 맞추려는듯 언론사 세무조사를 찬성하는 성명서에 천주교 이름을 곡 끼워 넣기도 한다.... 천주교가 이념갈등이나 남남분열을 조장하고 국가보안법폐지까지 앞장서서야 되겠는가?”라고 성토하였다. 유식한 가톨릭신자라면 관이나 무덤 앞에 가면 망자(그가 “북괴의 수괴”라고 하더라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사제의 몸에 밴 태도이고, 추기경님은 모든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국의 모습은 죄스러운 상황”이라고 개탄하신 교황님의 뜻대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하고 유엔과 미국도 폐지를 권고하지 않았느냐고 답변할 것이다. 남남분열은 걸핏하면 부산으로 내려가 궐기대회를 하는 야당도 책임이 있고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보수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대답할 것이다.

필자의 말이 의심스럽거든 조선일보 8월 31일자에 실린 류근일 조선일보 논설주간(안타깝지만 그도 가톨릭신자다.)의 칼럼 “선은 그어졌다”를 찾아서 읽어보시라. 8.15 방북단에 끼어 갔다가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라는 정신 나간 글 한 줄을 썼다가 공항에서 수갑을 찬 돌출 분자 한 사람의 말마디를 무려 세 번이나 인용하면서, 화해와 평화를 동경하는 모든 국민, 교황이나 주교회의나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등의 모든 활동, 남북화해를 도모하는 정부 전부가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라는 한쪽 당사자“라고 몰아세워지고 있다. 그들이 시도하는 ”통일. 화해 = 변혁적 통일전선론에 의한 남쪽 주류세력 무력화작전“으로, “개혁 = 남쪽 미운X 타도작전”으로 해석되었다. 끝으로 “침묵해온 종교지도자들이여 나서라!”고 조갑제와 이중창을 부르며 글을 맺는다. 이 나라 다수 종교인들과 언론인들이 집단으로 마귀들린 듯한 느낌이 우리를 불길하게 만든다. 김구를 살해한 안두희의 배후에 미국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드러나는 요즈음, 6.25직전의 이념갈등이 한국전쟁으로 폭발하고만 사실이 두렵다.

[대구교구 주보 "빛" 원고 20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