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1991.3.9]

양한모 지음, <信徒, 그 하찮은 존재인가?>

(일선기획 1990.8.30 발행 4000원)

 

<신도, 그 하찮은 존재인가?>라는 제목 자체가 그 수사학적 의문문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것이었지만 우선 표지가 은연중에 시선을 끌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잠긴 조선 대문인데, 빗장이 질러져 있고 문고리가 걸려 있다. 그런데 카메라의 앵글을 따르면 이 대문은 안으로 잠긴 문이었다! 우리는 안쪽에 있지만 따로 자물쇠가 채워진 것도 아니라서 우리 손으로 고리를 끌르고 빗장을 열면 문은 열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 한국 교회 평신도 운동의지도자의 한 분으로 만학으로 신학을 시작하여 한국 평신도의 교회론적 위치를 찾고자 부심해 오신 양한모 선생님의 평신도 신학을 한눈에 보여 주는 포토랭귀지이다. 우리 손으로 쓰인 유일한 신도 신학서를 환영한다.  

본서 286쪽에 이 사진을 해설하는 저자의 웅변이 나온다. "사실 신도인 여러분의 흩어짐이야말로 큰 구원입니다. 하느님은 세속적인 세계의 한복판으로 가서 행동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가톨릭교회는 지난날 아니 지금도 신도들의 모임에만 관심을 쏟고 신도들의 흩어짐에 대한 사목을 소홀히 하고 있읍니다." 저자는 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고 우리에게 호소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도사도직 개념을 훨씬 발전시킨 것으로 보이는, 교황 요한 바오로의 2세의 사도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1988년)은 그 문서의 핵심이라 할 15항에서 "평신도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자리는 세속이다"라고 분명하게 자리매김을 해준다. 본서의 저자도 1부와 3부에서 입장을 함께 한다. 교회내의 신심회 활동은 각자의 신앙을 강화하고 공동체화하는 활동이지만 신도 사도직은 아니라고, 사목회 활동은 교회 일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참여하여야 할 의무이지만 그것이 신도 사도직은 아니라고, 성체분배나 교리교사 역할은 성직자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 사목보조활동일 뿐이라고 분명하게 못 박는다. 평신도의 본질은 엄연히 교황 문서에 나와 있듯이 `세속적 성격'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신도 신학의 중요한 전기를 보여 준다.

그 세속이 어디냐는 교황문서 4항에서 7항에 지적된 분야, 세속주의와 종교적 욕구, 침해당하고 고양되는 인간 존엄성, 분쟁과 평화, 그리고 인류의 희망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제4부에서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한때 교회를 성직자들이 목자가 되어 양떼를 치는 `우리'라고 비유하던 시대가 있었다. 죄악과 죽음의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구원의 `방주'라고도 하였다. 이리떼의 울부짖음과 성낸 파도소리를 멀리하여 양우리 속이나 방주 속이 안온하여 신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주님, 여기 있기가 좋습니다" 하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 심경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도들이 거룩한 미신에 젖어 성당에서 소일한다면, 사회와 민족의 정치적 사회적 난제들을 주교단과 사제들이 앞장서서 해결하라고 떠다민다면, 우리는 처자가 있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홀몸이신 목자들께서 일선에 나서서 외치고 투옥되고 희생당하시라고 물러선다면, 신도란 순진하고 유치한 양떼에 불과하며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하찮은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38선 건너편에는 정치체제에 짓눌려 목소리를 앗겨버린 `침묵의 교회'가있고 그 이남에는 체제에 동화되어 스스로 입을 봉한, `침묵하는 교회'가 있다. 정치범이 1500명에 육박해도, 경제 분배가 불의하기 이를 데 없어도, 통일과 화해를 그토록 갈망하는 민중의 갈망이 하늘에 사무쳐도 목자들은 대부분이 굳게 입을 봉하고 신도들은 구경만 하거나 구조악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그래서 뼛속에서 타오르는 성령의 말씀을 견디다 못해 입 밖에 내지르고 행동하는 자는 성직자와 신도를 막론하고 저 문밖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도 천더기일 뿐더러 교회 안에서마저 머리 누일 곳이 없다. 그래서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젊은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노아가 날려 보낸 비들기나 까마귀처럼). 그러나 양한모 선생은 그들을 변호하여 "사회 한복판에서 행동하는 신도야말로 하느님이 선교를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러한 선구자들을 두고 있는 신도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스스로 책의 제목에 대답을 내놓고 있다(292쪽).

(91-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