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서평 2002.10.16] 

김용규, 『데칼로그: 십계, 키에슬로프스키 그리고 자유에 대한 성찰』

       ( 바다출판사 2002.9.25/ 국판양장 450명)


세실 감독의 영화 『십계』(19....)는 모세(챨톤 헤스톤)의 거구 앞에 검푸른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 스펙터클과 더불어 20세기 영화사의 가장 숭고한 영어판 이행시(二行時)를 남겼다. 세계최강의 전차부대를 홍해에 수장하고 돌아온 이집트 파라오(율 부리너)가 내뱉던 한 마디, “그의 신이 진짜 신이야”(His God/ Is God)라는 글귀가 그것이다.  

그 영화에서 작열하는 불꽃이 돌판에 새기던 열 편의 계명이 스크린의 오락을 떠나 현대인의 마음에도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데칼로그』의 저자 김용규씨의 확신이다. 평자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은 이래로 가장 흡족한 마음으로 이 철학적 저작을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글감으로는 현대영화와 중세신학과 고대철학을 능란하게 융화시켰고, 독자들에게는 그리스도교를 정말로 아는 사람, 그 종교의 신학과 철학을 제대로 소화한 사람의 글솜씨를 보여준다. 특히 고대의 플라톤, 근대의 칸트와 더불어 “근원에서 사유하는 철학자”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적 신학을 따라갔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도 만족시킬만한  깊이를 담았다.

히브리인들이 인류에게 이바지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안식일(일요휴무)과 죄의식이라지만, 함무라비법전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는 십계(十戒)에서 히브리인들은 선악이라는 도덕의 문제를 구원이라는 종교적 과제로 전환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데칼로그를 부자연스럽고 거북한  타율적 계명의 문제가 아닌 현대인들의 존재 문제라고 주장하며 논리정연하게 설득한다. 살인은 살해당하는 자보다 살해하는 자를 파괴하며, 존재근거인 신을 등짐은 인간을 비로소 자유로운 초인(超人)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무화(無化)할 따름이란다.

저자 김용규는 『영화관 옆 철학카페』를 쓴 사람답게 폴란드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1941-1996)의 연작영화 『십계』(1987-88년: 국내에서는 오래 전에 분도출판사에서 출시하였다)를 대본으로 삼아 독자들에게 친근한 해설을 시도하고 있다. 예컨데, 컴퓨터와 계산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우상숭배에 기울던 크르지스토프교수에게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죽음이 이성과 과학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라던가(제1계명: “하느님을 유일한 신으로 공경하라”), 아버지를 성적으로 소유하려는 여대생 앙카가 “사람을 물건처럼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존재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키에슬로프스키의 메시지에 도달하는 장면(제4계명: “너의 부모를 공경하라”) 등은 현대 지식인들에게도 머리를 끄덕이게 한다. 벌써 주변의 상당수 철학, 신학 교수들에게서 다음 학기 보조교재로 이 책을 꼽았다는 말을 들었다.


                                서평자: 성 염(서강대철학과. 중세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