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1997.1]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

 

 

     "어떻게 `공동선`이란 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선은 이웃이 그것을 입에 올리게 될 때 더 이상 선이 아니다. 공동선, 그것은 용어 자체가 모순이다. 보편적인 것은 항시 무가치하다. 결국 지금 있는대로, 항상 있어온대로 있어야 마땅하다." 한국 여당의 극우인사가 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19세기의 가장 신랄한 예언자 니체가 던지는 철학적 조롱이다(선악의 피안, 43). 그의 말대로는, 공동선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모든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이제까지의 낡은 사회형태의 탓으로 돌리려는 근본성향을 가졌다는 점에서 왜곡된 정신을 지녔고 어리석고 피상적이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두 가지 노래와 구호는 <권리의 평등>과 <모든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다."(동, 44항). 니체의 생각에 의하면, 병들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고 양심적으로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일체의 가치를 전도시키는 것이요 인간을 엄청난 불구로 만드는 짓이다. 그 탓으로 보다 왜소하고 어리석은 타입의 인간, 짐승과 같은 무리, 쾌락추구적이고 병적이며 범용한 존재가 육성되어 왔다."(동 62-64항) 철학자가 여기서 조롱하는 바는 시련 앞에서 절망하기 쉬운 지성인들의 의협심이 아닌가 한다.

과연, 김경호씨 일가족 17명의 집단탈출을 전국민이 환영하고, 북한에서는 날마다 기아로 40여명씩 굶어죽어간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접하면서도, 북한에 식량 원조만은 절대로 안된다는 기독교 장로 대통령의 정치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국민은 불행하다. 주간조선(96.12.19)이 <북, 내년 2월 1천만명 아사 직면>이라는 `충격보고`에다 <6백 50만명 집단 탈출 가능성>까지 점치면서 "북한의 최후를 알리는 적신호가 마침내 깜박거리기 시작한다"고 신나하는데, 아사직전의 1천만 북한 동포에게 인도적인 식량보급만은 결사반대하는 보수층의 작태를 바라보는 겨레의 눈은 불행하다. 저러한 증오와 복수심에 차 있는 권력층이라면, 만에 하나라도 북한의 붕괴로 한반도에 통일이 닥쳤을 때, 르완다만큼의 대학살을 저지르고도 남으리라는 우려 때문이다.

손바닥만한 땅에서 영남이 모든 것을 여전히 독차지해야 한다는 35년 패권주의가 여전하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군사 쿠데타, 광주시민학살, 학생들과 재야인사들에 대한 허위 재판, 컴퓨터 부정선거를 감행해온 집단이 득세하고, 대통령 선거철마다 <김대중에게 대권을 주느니 차라리 김일성(지금은 김정일로 대체되었으리라)에게 주겠다>는 마타도어를 뿌리고 다니는 무리를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지성인들의 눈은 불행하다. 대한민국 통치권의 정통성이 여전히 의문에 붙여져 있는 까닭이다.

성수대교에서, 삼풍백화점에서, 대구지하철 공사장을 지나다, 아현동을 지나다 사랑하는 이와 영이별한 사람들이 어찌 새해를 기뻐하겠는가? 한총련 학부모를 비롯하여 1천 여명 양심수와 그 가족들이 무슨 수로 <謹賀新年>의 인사를 반가워하겠는가? 15년 한많은 세월을 보내고도, 학살자들이 재판정에 선 오늘도, 광주와 그 피해는 사법부에 의해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대신에 학살자들에게는 대사면의 잔치상이 마련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광주시민들이 어떻게 말띠해를 <선구자>의 희망으로 맞겠는가? 이 모든 비리를 바라보아야 하는 시민들의 눈은 불행하다.

지존파의 사형 언도와 집행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던 언론들, 사형에 관한 헌법소원에 대하여 한 줄 보도마저 인색하고 합헌 판결에 대하여 아무런 비판도 가하지 않던 언론들이, 종교인들과 인권운동 단체에 전화 인터뷰를 요청하고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비추어, 전두환씨에 대한 사형언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져 오는 세태를 구경해야 하는 눈은 불행하다.


차리리 종교화가 루오의 명언,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하였다"는 구절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저 거창하고 어처구니없는 비인간성과 몰상식과 불의 앞에서 자칫하면 무모한 자포자기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운 사람들로 서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굉장한 도전이다." 그래서인지 독설가 니체는 절망하기 쉬운 지성인의 허약한 정신세계를 날카롭게 간파하였다. "현존하는 적과 가상 적들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심과 끊임없는 두려움이 얼마나 사람을 편협하게 만드는가! 이같이 사회에서 추방된 사람들, 오랫 동안 몰리고 지독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가장 숭고한 체 하지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결국에 가서는 항시 교묘한 복수추구자, 독살자가 되고 만다. 그들의 도덕적 분노의 치졸함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도 없다."(선악의 피안, 25)

섣뿌른 의협심이 좌절되자마자 오히려 적진으로 항복하고 들어가 변절자가 되려는 유혹도 우리에게는 없지 않으리라. 현대 사회의 비판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성인을 정의하여 "그 어떤 압력으로부터 상대적 독립성을 모색하는, 추방자요 주변인이요, 아마추어이며, 그리고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려는 언어의 저술가"(권력과 지성인)라고 하였다. 지난 30년간의 매춘 지성들로 부족해서 벼라별 궤변을 부리며 실절하는 지성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과연 우리에게는 웃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현대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유명한 철학소설에서 우리를 타이른다. "아마도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사명은 사람들이 진리를 향해 웃도록, (진리가 웃도록) 만드는데 있을 거야. 진리에 대한 광적인 정열 앞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길을 배우는데 유일한 진리가 있기 때문이지."(움베르토 에코[이동진 역], <장미의 이름으로>492면)


그래서인지 몰라도 신을 역사의 주님으로 받들고 자기는 아마도 민족사의 들러리임을 아는 사람은 절망의 허방을 비껴가기가 남보다 수월할 듯하다. 인생에서 남의 들러리를 서기는 속상하지만 장가가는 친구의 들러리는 즐겁기만 하다. 정의로운 한국사회, 하나되는 배달겨레, 평화로이 공존하는 인류를 신부로 취하는 이는 역사의 주인이고 인간은 역사의 들러리일 따름이라는, 여유있는 시각을 갖추고 있을 테니까.

이스라엘의 전설적 군주 다윗은 젊은 시절 이역땅으로 망명하는 시련 속에서 절규하였다. "그러나 저는 믿나이다. 산 이들의 땅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보리라는 것을!"(시편 27.13) 구약의 인물 욥은 사탄과 하느님 사이에 벌어진 내기 때문에 일순간에 가족과 재산과 명예를 모조리 상실하고서 문둥이가 되어 잿더미에 나앉아 사금파리로 고름을 짜는 신세가 되었지만 버티었다.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정의의]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 내 쪽으로 돌아서신 그를 뵙고야 말리라."(욥기 19.26-27). 물론 욥의 입에서도 "그러나 젖먹던 힘마저 다 빠지고 말았구나"라는 탄식이 그 뒤를 따른다.

그렇다. 절망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여지껏 `공동선'을 주창할 명분과 여력이 있다. 금년에는 좋든 싫든 잠수함 사건의 스캔들을 딛고 한국 정부가 대승의 자세로 북한의 기아 구제와 제네바 협정 준수에 나섬으로써 남북공존과 화해를 도모하게 될 것이다. 주변 열강이 자국의 안보 때문에라도 한반도의 통일을 결사적으로 저지할 터이므로 북한의 경제 붕괴에 의한 흡수통일의 꿈은 일찌감치 깨는 게 좋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적 공동선을 모색할 만하다.

또 금년에는 어쩌면 역사의 또다른 전환점이 될, 대통령 선거가 있다. 집권자들이 영남패권주의를 한국 정치의 기본 틀로 운영하면서 지역감정 청산이나 세대교체를 외친다면, 국민에게는 지역등권론이 훨씬 솔직해 보일런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의 권력분점과 이합집산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거국적 차원에서 지역이기주의를 이겨내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OECD 가입을 구실로 작년에 시늉한 노동관계법 개정이 결국 무산되었지만, 경영자든 노동자든 전부 독식하던가 아니면 아예 안 먹겠다는 유치한 태도를 청산하고 노사 양편의 공동선을 도모하게 조언할 여지가 있으리라(그런 뜻에서 민주노총이나 전교조가 자기네의 합법화를 희생한 것은 바람직한 자세였다). 청년 학생들에게도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을 벗어날 만한 공동선의 폭을 심어주어야 할 것 같다(연세대 사태는 역사의 평가로 미룰 가치가 있지만, 4.11 총선 전날에 서울 교통을 마비시킨 노수석군의 장례는 많은 이의 의혹을 사고 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김현희의 KAL기 폭파, 청와대 밀가루 비밀 배급과 DMZ의 군사행진, 그리고 이번의 잠수함 좌초는 기성 세대로 하여금 이북의 통일의지를 순수하다고 믿지 못하게 만든다).

여하튼 무엇에 대한 사랑이든, 사랑으로 살아가는 신념만이 위대한 결단과 더불어 역사를 앞으로 밀고 나아가는 듯하다. "나는 보리라!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공동선을 이룩해가는 세월을! 이 땅에 정의가 서는 날을! 이 민족이 남북으로 한 누리를 이루는 해를!"

[ 공동선 창, 1997.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