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참소중한당신> [바티칸에서 온 편지] 일곱째 꼭지(2005년 7월호 게재예정)로 보낸 글인데 실리지 않았습니다. *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관한 고찰

 

교회는 살아있다!”

 

이탈리아에서는 6월 12일에 실시된 국민투표를 두고 교회와 정부의 한판 승부가 벌어져 교회의 승리로 끝났다. 이탈리아 정부는 배아 연구의 자유, 배아의 자궁이식, 배아의 인간 권리 여부, 혼인외 제삼자에 의한 인공수정 등을 엄금한 생명윤리법을 완화시키는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1974년에는 이혼을 합법화하려던 국민투표에 이탈리아 교회가 총궐기하여 부결시키는데 성공하였지만, 1981년의 낙태 허용에 관한 국민투표에서는 교회의 궐기로도 저지를 못하였다.

 

지난 5월 30일에 이탈리아 주교회의는 국민투표 불참을 신자들에게 지침으로 내렸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주교회의장을 방문하여 “생명을 지키고 가톨릭 신자들과 모든 시민들의 선택을 밝혀주려는 여러분 가까이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주교단 결정을 지지하였다. 이탈리아 주교회의의 이런 지침에는 “생명윤리는 교회의 고유한 영역인데 우리 문명의 기반을 위협하는 윤리 도덕의 문제를 어찌 감히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될) 국민투표에 붙이는가?”라는 불쾌감이 숨어 있었다. 따라서 유권자 25%밖에 참여하지 않은 이번의 이탈리아 국민투표는 “교회는 살아있다!”고 선언한 신임교황의 취임사가 온 국민이 가톨릭신자인 이탈리아인들에게 유효함을 확인한 셈이다.

 

“배아는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

 

지난 5월 20일 서울대학교 황우석 교수가 환자의 체세포로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는 소식이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인간의 배아복제라는 현대사회의 가장 첨예한 윤리문제가 세계적인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인의 노벨의학상 수상을 기대할 만큼 흥분한 국민이 있는가 하면 그 윤리적 부수효과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6월 4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배아는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는 호소력 있는 제목을 내세워 "황 교수의 연구는 인간 생명체인 배아의 복제와 파괴라는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하고 있다“(”반생명적 행위다“고 단정하지 않은 것은 우리 주교님들의 신중한 판단을 보여준다)고 비판하고 "비록 복제된 배아라 할지라도 분명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인간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은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규정하였다.

 

이어서 6월 11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님도 황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일종의 살인과도 같은 인간배아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로 단정하고 "연구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였다. 개신교측에서는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라는 단체가 “황 교수의 체세포 복제연구는 사용하는 기술이 인간복제 기술과 동일하므로 언제든지 복제인간의 탄생으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정작 황 교수 본인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연구과정에서 어떤 생명도 파괴하지 않으며 연구에는 유전적 물질을 갖지 않은 빈 난자만을 사용한다”고 설명하고 “자신의 연구팀은 인간 복제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변명하였다. 줄기세포 연구는 불치병 치료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신성하고 진정한 작업인만큼 이 기술을 모든 인류에게 적용시키고 싶은 것이 자신의 연구 의도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과학은 프로메테우스의 불인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생명윤리연구회”를 만들어 2003년부터 활동해왔고, 국회는 종교계의 반대를 무릅쓰고(신구교를 합하면 현국회의 그리스도신자의원은 과반수에 육박하리라) 작년 12월 29일 “생명윤리법”을 통과시켰다. 필자는 유엔총회가 지난 3월 8일 “치료 목적의 복제를 포함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복제를 금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하기까지의 과정도 살폈고 유엔총회의 그 금지선언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주유엔 교황대사 밀리오레 대주교가 총회에서 낭독한 “인간배아복제에 관한 성좌의 견해”를 주의 깊게 읽었다.

 

생의학적 연구를 포함하여 인간이 하는 행위치고 가치중립적인 것은 없으며 교회는 신자들에게는 교도권으로, 선의의 모든 인간들에게는 도덕적 권위로 호소할 의무가 있다. 적어도 인간 생명을 두고 발생단계, 종말단계 어느 편에도 피조물인 인간이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유산, 낙태, 영아 살해, 불구자 살해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치독일과 코소보의 인종 청소, 이념을 빙자한 소련과 한반도(제주도, 산청 함양, 광주)에서의 학살, 십자군 이래의 서구의 아랍세계 유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살인이 정당화되고 만다.

 

다만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다윈과 샤르댕을 박대한 쓰라린 경험이 있는 교회로서는, 황 교수의 연구가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하고 있다”고 선언하고 “즉각 중단”을 요구한 이상, 다음과 같은 반문에도 수긍할 만한 답변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남녀의 “자연스러운” 성행위에 의해서 난자와 정자가 “자연스럽게” 결합한 수정란이 “인간”이라고 가톨릭교회가 정의해오다 난자로 성숙하기 이전의, 더구나 황 교수의 말대로 “유전적 물질을 갖지 않은” 난세포에 성체의 일반세포의 핵이 합쳐진 배아 역시 인간이라고 확대 해석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물론 돌리양의 경우처럼 그 배아를 자궁에 착상할 경우 복제인간이 탄생하겠지만, 양심적으로 줄기세포의 추출 단계에서 배양을 억제하고 그 세포핵을 기증한 환자에게 그 줄기세포를 주입하여 치료 불가능한 조직을 재건케 만드는 일이 정말 생명의 파괴에 해당하는가? 줄기세포는 굳이 배아복제가 아니어도 성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어느 조직으로도 분화하는 소위 “만능세포”는 현재로서는 난세포와 결합된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던가? 인간은 결코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고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순수하게 타인의 치료를 의도로 할 경우, 여성들의 난세포 기증과 일반적인 장기 기증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문제는 “무엇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면 과학은 언젠가 반드시 실현해낸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지성과 과학적 발견을 응용하는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는 프로메테우스가 하느님에게서 훔쳐낸 불이 아니고 하느님이 당신의 모상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 아니던가? 자연법을 내세우면서, 또 악용 가능성과 부작용 때문에 그토록 애써 저지시키려던 이혼, 피임, 낙태, 안락사, 심지어 동성결혼, 시험관 아기, 복제양 생산이,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교회의 호소로 다소 지연은 될지언정 결국 일반화되어 간다는데 ‘어머니와 교사’로서 교회의 깊은 번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타락한 인류의 본성의 발로이기만 할까? 성숙을 향한 인류의 서툰 발걸음이기도 할까?

 

황 교수는 “정진석 대주교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완곡한 답변으로 종교계와 정면충돌을 피하려고 하지만,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남긴 갈릴레오는 “교회는 어떻게 하늘에 가는가(Come va al cielo)를 궁리하고 과학도들은 어떻게 하늘이 돌아가는가(Come va il cielo)를 연구해야 한다”라는 말로 여전히 신앙인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