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1995.9]

 

희년은 하릴없이 저물어 가는데

 

 

     태양이야 어제도 솟고 내일도 여일하게 솟지만 사람들은 시간에 금을 그어 광복절이니 6·25니 생일이니 이름지어 세월을 기억한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씩 돌 때마다 햇수를 매기고 금년은 해방과 분단 50주년이라 하여 희년(禧年)이라는 성서적 명칭까지 붙여서 겨레와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사를 바라보는 마음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하지만 광복절 '대사면' 명단을 보더라도, 대통령의 경축사를 듣더라도, 박용길 할머니를 잡아넣고 판문점을 향하는 대학생들을 때려잡는 경찰진압을 구경하더라도 희년은 여전히 권력자들이 서로 즐거운 한 해로 저물어 가는 느낌이다.

우리나라 지도자들 가운데 가장 신뢰받는 어른으로 꼽히는 김수환 추기경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특별한 감회를 안고' 지난 8월 1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라는 문서를 발표하였다. 그는 1995년을 일컬어 "이 은총의 해인 희년은…… 인류에게 새로운 역사를 열어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고 천명하여 통일을 희구하는 진보인사들과 뜻을 함께 하였다.

한국천주교회를 대표하여 김 추기경은 분단의 상황을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규정하였다. "우리 민족이 체험하고 있는 분단은 사랑과 평화와 일치를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뜻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요…… 분단의 상황이 반세기에 걸쳐서 지속되어 온 것은 분명 우리 겨레가 하느님이 명하신 화해와 일치의 가르침을 거역하였거나 소홀히 한 결과입니다. 분단의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남북의 겨레는 그 잘못을 겸허하게 참회해야 합니다." 필자는 천주교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화해와 일치와 사랑의 정신을 겨레에게 심어주는 사도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하는 호소에 따라서 적어도 통일을 바라보는 종교인의 시각 하나를 반성해 보고 싶다.

통일을 위한 영성(靈性)

남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북한선교의 전략이 아니라 통일에 관한 영성일 것 같다. 거시적으로 민족통일을 내다보는 천주교회라면, 서울교구장의 입장을 넘어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 전체의 이름으로 국민과 정부로 하여금 통일과 민족화해를 적극 추진하도록 사회적 양심을 일깨우고, 신자들에게는 분단과 증오와 반공이라는 반복음적이고 죄스러운 상황을 타개하도록 사목함이 우선 과제일 것이다.

"북한교회가 1950년 이후 목자 없는 평신도로 이어져 온 신앙의 공동체로서 지난 1988년 6월 이후 '조선천주교인협회'로 그 모습을 드러낸 사실에 유의한다"는 '북한선교위원회'의 1989년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성직자들이 "북한의 종교는 완전히 말살되었다! 조선기독교연맹이니 조선천주교인협회니 하는 것은 공산당의 기만적인 역이용이요 정치극이다! 장충성당이니 봉수교회니 하는 것은 다 선전용 세트다! 장충성당 벽화에 그려 넣어진 저 태양(민족의 수령)을 보라! 그 곳 신자들의 성직자연 하는 태도를 보라!……"라고 매도하는 말투는 사람들을 믿고 사랑하는 신앙인들의 말씨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먼저 북녘의 겨레에게 따뜻한 사랑과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특히 가톨릭 신앙을 같이하는 북녘의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기원합니다"고 한 추기경의 인사에서는 신앙의 온기가 느껴졌다. 남쪽에서 펼만한 화합의 첫걸음은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의 극복이다. "우리 겨레는 상호질시와 증오의 마음 때문에 50년간의 분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 분단의 슬픈 유산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됩니다"는 김 추기경의 단언에 공감하면서 성직자 신도를 막론하고 천주교인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은 반공교(反共敎)를 극복함이 시급하다.

그 첫번 이유는 반공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느님과 그 계명보다 앞세운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다. 공산주의자들을 무신론자라고, 종교 자유를 안 준다고, 사유재산과 자유를 빼앗는다고 증오하는 신자들이지만, 흔히는 그 본심이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을 안전하게 보전하려는 욕심, 못 가진 자들과 약자들로부터 기득권을 보호하는 폭력에 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마태 6, 24)고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맘몬은 시대마다 가면을 바꾸어 쓴다. 교회사를 보면, 맘몬은 이단을 분쇄한 다는 정통신앙으로, 교계적 일치를 강화한다는 성직주의로, 천부적 사유재산권을 옹호한다는 자본주의로, 반공의 보루를 자처하는 유신론으로 가면을 바꾸어 써 왔다. 아무리 나쁜 독재집단이라도 공산당보다 낫다던가 사회가 아무리 비뚤어지고 부패해도 전쟁 터지는 것보다 낫다는 논리는, 하느님 위에 안보를 섬기는 우상숭배다.

둘째 이유는 반공이 반(反)신앙이기 때문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에 못지 않게 반공도 증오와 분열과 안보제일의 맹목을 가져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골자는 인간이다. "인간이야말로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한길이다"(요한 바오로 2세). 공산사회든 반공사회든,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유린당하고 죽임 당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근본에 반대되는 죄스러운 사회다. 민족사회라는 공간은 범죄의 공간이거나 아니면 은총의 공간이 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사상이 다르다는 명분으로 남을 죽이며, 국가보안법과 군대와 경찰로 약자들을 억누르는 분열은 악마에게서 온다. 민족의 분단, 광주 시민학살, 국가보안법, 수백 명의 시국사범을 두고 신앙인들이 마음 편히 지낸다는 것은 천주교회가 집단적으로 마귀 들린 현상으로 비칠 수 있다. 북한선교와 민족통일을 운운하는 교회단체들이 일반국민의 눈에 멸공사목(滅共司牧)이 아닌 통일사목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공언이 있어야 한다.

김 추기경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한 인간의 편의적 잣대로 인간을 처벌하여 수감하거나 사형에 처하는 반생명적 일은 지양되어야 합니다"는 말씀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완곡하게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기까지는 별의별 문서합의와 쌀 제공과 남북대화가 있어도 남한정부의 통일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통일사목을 위한 몇 가지 전제

필자는 이 기회에 '북한선교'를 구상하고 있을 한국천주교회에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민족문제에 둔감한 종교인들에게도 선교의 열성이 통일을 추진하는 동기가 되는 까닭이다.

첫째, 북한교회의 실체를 인정하자. 1989년의 '북한선교위원회' 메시지에서 남한교회는 "북한교회의 참모습이 구원의 신비 속에 뚜렷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을 바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교회 공식입장은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해서 성인뿐 아니라 학생 또는 아동들의 의식으로 보편화되어 야 한다. 그런데 북한교회가 북한에 사는 하느님 백성으로 자립하도록 실제로 돕고 싶다면, 김수환 추기경의 평양교구장 서리, 이동호 아빠스의 함흥 교구장 서리, 덕원 면속구장 서리의 직책은 무슨 의의를 갖는가? 그것이 남한의 이북 5도청과 어떻게 다른가? 교황청이 직접 그 곳에 교구장이나 서리를 파견하거나, 임시나마 왕래와 통신이 가능한 중국 교구장들에게 소임을 맡기면 실제로 북한 신자들에게 최소한의 사목적 배려가 가능하지 않을까?

둘째, 북한교회는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 남한교회가 북한교회를 상대로 겨냥하는 '선교'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상호 민간교류가 가능해질 만큼 북한이 유화될 때에, 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파견하여 성당을 세우고 전교하고 성사를 집행하고 성직자를 양성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교회 차원의 흡수통합 아닌가? 남한교회가 너무나 서양식이고 자본주의적인 모습으로 북한 신자들 눈에 비친다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들이 과연 그것을 수용할까? 북한정부와 교회가 자본과 금전을 필요로 할 테니까 달러라는 맘몬을 내세워서 밀고 들어가겠다면, 우리가 전하려는 것은 하느님인가, 자본주의라는 맘몬인가? 북한교회는 교계든 전교든 성당이든 스스로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셋째, 남북대화와 북한선교에서 주체는 누구인가? 제도교회인가, 하느님의 백성인가? 문규현 신부 방북사건의 처리를 지켜본다면, 적어도 남한천주교회에서 나타낸 주교단과 (교황대사의 발언을 통한) 교황청의 입장은 교계주도와 창구단일화였다. 민족화해라는 선행을 하는데 굳이 목자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더군다나 창구독점을 주장하는 목자들이 뒷짐지고 침묵하면서 과감한 성직자와 신자들의 행동마저 제한한다면 어찌되는가?

넷째, 북한교회의 실상을 알자. 지난 45년간 북한사회 안에서 천주교회가 갖고 있던 위치는? 해방 후 북한정권과 교회는 어떤 관계였을까? 안기부나 교황청이나 미국무성이나 미중앙정보부에는 유관자료가 전혀 없을까? 또 북한의 주체사상은 무엇인가? 김일성 사망 후에도 김정일에게 정권이 승계되면서 주체사상은 연속되고 있다. 북한국민에게 종교에 가까운, 주체사상을 신학생들과 평신도 지도자들과 교회 청년들이 필히 연구할 과제가 아닐까? 북한신자들은 주체사상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50년에 가까운 이질적인 역사(그들의 구세사)를 살아온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그들의 방법으로 교회를 일으키도록 도울 만큼 인내로운 북한선교를 행할 자세가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 공동선 199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