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2000.1]

 

 

대희년에 건너야 할 강

 

 

때가 찼을 때...

     1999라는 숫자에 하나를 더하니 정말 때가 2000이라는 숫자로 가득 찼다. 시계로 가는 시간이야 1999년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9초와 2000년 1월 1일 0시는 단지 1초의 간격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이에 금을 긋고 제야의 종을 울리면서 새해, 21세기, 아니 새 천년기(Tertium Millennium)로 훌쩍 건너뛰었다. 우주에서 아마도 "시간을 아는 유일한 존재"(아우구스티누스)들이 그날밤 지구의 자전을 따라 돌면서 어두운 밤하늘에 수놓은 불꽃놀이는 프로메테우스의 자손들이 핵무기로 벌일지도 모를 인류 최후의 불꽃놀이(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하시라!)보다 훨씬 동화적인 축제여서 하느님 눈에도 어여뻤으리라.

영원 속에 계시는 하느님도 "때가 찼을 때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셨고"(갈라 4,4), 하느님이 채우신 이 `시간의 충만'을 인류는 `서기(西紀)' 또는 크리스천들의 표현대로 구주강생(救主降生: post Christum natum 혹은 Anno Domini)이라는 영호를 붙여 그 2000년을 맞고 경축하였다.

단기 4333년을 맞은 한겨레마저 스스럼없이 쓰는, 서기(西紀)라는 책력의 주인공 나자렛사람이 행한 최초의 설교(루가 4,16-30)를 보면 그는 자신의 사명이 "대희년(大稀年)을 선포하는데" 있다고 의식하였던 것 같다. 자기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리고 하느님이 자기를 그리스도로 세우신 까닭을 일컬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는 해방을, 소경들에게는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들을 풀어내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루가 4,18-19)이라고 단정하는 까닭이다.


야누스의 얼굴

서양사람들은 정월을 `야누스의 달(January)'이라고 부른다. 로마인들이 섬기던 야누스신은 머리 하나에 얼굴 둘을 지닌 형상을 하고 있다. 본래는 대문(janua)을 지키는 문신(門神)으로서 집안과 집밖을 한꺼번에 바라본다. 그러다가 한 해의 경계에서 지나가는 해와 다가오는 해를 바라보는 신으로도 숭상 받았다. 종교인들의 안목으로는, 작년에 인류와 한겨레가 이루고 저지른 일과 금년에 새로 이룩하고 저질러 놓을 모든 일이 한결같이 심판과 구원이라는 양면성을 띠는 것과 흡사하다.

성탄절 아침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어 알듯이, 로마 가톨릭은 금년을 `대희년(大稀年)'으로 정하고서 5년 전부터 준비해 온 터이므로 올해는 전세계 가톨릭신도들이 로마로 순례하는 대대적인 행렬이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보러 로마로 가는가? 웅대한 성베드로 성당이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명작들을 감상하고 하얀 비단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갈 것이다. 원래 순례는 굶주리고 노숙하는 고행 중에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 도보여행으로 속죄의 길을 가는 것이었지만, 현대의 순례는 특별전세기로 날아가 고급호텔에 묵으면서 교황도 보고 관광도 하고 이탈리아제 쇼핑도 하는 다목적 여행이어서 풍요롭다. 단지 볼 눈이 있는 사람은 이번 순례의 지정코스인 로마의 4대성당과 3성당(예루살렘 성십자가성당, 성세바스티아노성당, 성밖의 성로렌죠성당)을 돌면서도 화려하게 새로 단청한 곳곳이 더 이상 거룩한 하느님의 전이 아니고 역사적 관광명소로 변한 데 마음 아플 테고, 현대인에게서 사라져 버린 죄의식은 사죄도 은사도 보속도 아귀워하지 않음을 탄식할지 모르겠다.

이 점이 꺼림칙하여 교황은 분명하게 다짐하였다. "교회에 있어서 희년은 정확히 `주님의 은총의 해'이며, 죄와 그에 따르는 벌을 사해주는 용서의 해, 상반된 집단 사이의 화해의 해, 다양한 회개와 성사적 성사외적 참회의 해이다."(제삼천년기 14항). 바른 순서로 말하자면 참회의 해, 용서의 해, 화해의 해라야 한다. 참회하는 뜻에서 교황은 "지난 10세기 동안 교회에 일어났던 것을 분명히 의식하면서… 과거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정화하도록 격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제삼천년기 33항)고 선언한다. 교황문서의 33항부터 36항에서는 지난 천년동안 로마 가톨릭이 저질러 온 죄상을 용기 있게 지적하고 신자 모두의 참회를 요구하고 있다. 가톨릭신도들에게 참회 없는 고해성사가 하느님을 모독하는 `모고해(冒告解)'이듯이, 과거를 참회하지 않는 희년행사는 신앙을 희롱하는 허세라는 경고이다. 대희년이 갖는 야누스적 측면이 여기 있다.


`마녀 재판'이라는 납덩어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자녀들이 참회의 정신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고통스러운 장"으로 "특히 어떤 세기들에서, 진리에 봉사한다는 미명 아래 교회가 불용과 폭력 사용마저 묵인하였던 부분"(제삼천년기 35항)을 지목한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보편종교(Christentum)로 확립된 후에 저지른 이단자 박해와 처형, 과학자들에 대한 처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녀 재판을 언급하는 구절이다. 이단이라던가 과학이론에 대해서는 미미하나마 양비론의 여지가 있지만, 종교인들의 집단적 광기와 고문으로만 이루어진 마녀재판과 학살은 무슨 이론으로도 변명이 안되기 때문에 계몽주의 이래로 로마 가톨릭의 양심을 내리누르는 가장 무거운 납덩어리가 되고 있다. 그래서 교황은 대희년을 맞아서 교회사의 가장 묵직한 짐 하나를 벗겨내겠다고 공언하고서 15∼17세기의 종교재판 문제를 연구 검토하여 만에 하나라도 과오가 있었다면 단죄 받은 희생자를 사면하는 대신 중상모략에는 단호하겠다는 입장이다. 작년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바티칸에서 전문교회사가들의 간담회도 있었고, 전문서적들도 출간되기 시작하였다(예: George Cottier, Memoire et repentance. Pourquoi l'Eglise demande pardon? Paris, 1998).


300여 년에 걸쳐 가톨릭 교회의 마녀사냥을 두고는 희생자의 숫자는 물론이려니와("7만 여명이 될까 말까 한 것을 누구는 30만 명으로, 반교회인사들은 무려 1,000만 명으로까지 과장하는데" 대해서 교회인사들은 "우리가 유럽 여자들을 모조리 화형 했다는 말이냐?"라고 분개하는 듯하다.) 그런 재판이 과연 실제로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피고의 이름과 자백한 죄목과 처형날짜가 문서로 보존된 수천 사례 가운데 두셋만 열거한다.

· 1546년 쥬리히 // 성명 Agatha Stoudlerin. 죄목: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고 숫자 미상의 사내들을 독약으로 죽였고 많은 사내들에게 발기불능을 초래하였음. 화형만은 면하게 해 달라는 조건하에 모든 죄목을 인정. 2월 27일 익살에 처함.(고문을 못 견뎌 자살을 기도하여 창문으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지자 악마에게 업혀 공중을 날려했다는 죄목이 추가되었음).

· 1571년 쥬리히 // 성명: Verena Keretzin. 죄목: 악마와 교접하여 그 신통력으로 괴력을 얻어 몽둥이를 들고 돌아다니며 소와 돼지를 두들겨 패 죽였고, 숫자 미상의 사내에게 죽을병을 내리고, 우박을 내리게 하여 인근지방 농사를 모조리 망쳤음을 (고문 끝에) 자백. 9월 10일 화형.

· 1600년 유라 // 성명: Rolanda di Vernois, Laudia. 죄목: 두 여인은 악마와 교접했고 푸른 청솔가지에 오줌을 누어 인근 지방에 우박을 내리게 하여 농사를 망쳤음을 (고문 끝에) 자백. 9월 7일 화형.(화형장에 소낙비가 내려 장작불이 꺼지자 정부를 살려내려는 악마의 술책이라 하여 여자를 다시 고문하고서 화형)

악마는 신령체이니 악마와 성교하는 일은 신학적으로 불가능하고, 여자가 오줌이나 저주로 우박을 내려 일년농사를 망치는 일도 기상학적으로 불가능하고, 마술로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죽이는 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지금은 누구나 안다. 그러면 혹독한 고문을 못 견뎌 자백서에 서명하고서 화형당한 수만 명의 불쌍한 여인들에게 로마 가톨릭은 무어라고 해명할까? 교회를 사랑하는 지성인들을 당혹케 만드는 것은 아직도 일부 인사들이 교회의 이름으로 인류와 하느님 앞에서 가슴을 치기보다는 마녀재판에 관한 암울한 인류의 기억에서 교회를 변호하는데 초점을 둔다는 사실이다.


종교재판관들을 위한 대사면(?)

문: 당대 우민들의 집단적 광신을 교회도 어쩔 수 없지 않았겠어요?

답: 시대를 선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특히 유식한 도미니코회원들과 그래도 당대 지식인에 속하는 성직자들의 임무가 아니었을까? 집단적 광신을 선동하고 악용한 잘못은 누가 질 것인가?

문: 거룩한 도미니코회 수사님들이 차마 여자를 고문했을라구요?

답: "피고의 발언과 고발자의 발언 사이에 상충이 있거든 피고를 고문할 수 있다. 고문 끝에 고백한 내용은 사흘 후에 다시 심문하여 본인의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피고가 그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시 고문을 시작할 수 있다."(스페인의 도미니코회 종교재판관 Tomas de Torquemada (1420∼1498)가 1484년 10월 29일 공포한 종교재판 헌장(Codex) 15조)

문: 열성이 과도한 도미니코 수사들의 개인적 행악이었거나 스페인 같은 나라의 정치권력의 남용이었지 교황청에서는 아무 것도 몰랐겠지요?

답: "슬프게도 본인은 근자에 독일 북부의 여러 지역에서 많은 남녀 인간들이 악마에게 홀리고 사로잡혀 참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심히 괴로운 마음입니다. 그들은 요술을 부리고 주문을 외우고 음모를 꾸며서 타인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있으니, 구체적으로는 여인들에게 유산을 초래하고, 가축들의 태아를 죽게 만들거나 불임으로 만들며, 땅의 소출을 망치고, 포도나무의 포도를 망치고, 나무 열매를 박하게 하고, 남자와 여자, 집짐승과 길짐승에 해를 끼치며, 그밖에도 온갖 짐승과 들짐승과 농작물 전체를 망치며 포도나무, 과실수, 채소밭과 밀밭, 목초지와 곡식과 모든 채소들을 망치고 있습니다."(교황 인노첸스 8세의 1484년 칙서(Summis desiderantes affectibus). 그리고 종교재판은 반드시 "교황의 직접 위임으로만" 이루어졌다! 심지어 교황 바울로 4세는 1559년 칙서(Cum ex Apostolatus officio)를 내려, 모든 고백사제는 고백성사 중에 고백자가 이단자나 마술사나 마귀 들린 사람인가를 질문하도록 규정하였고, 그런 생각을 했거나 그런 사실을 듣거나 알고 있는지 물어야 하며, 만일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경우 고백성사를 중단하고, 본인이 종교재판관 앞에 출두하여 자백하거나 아는 사람을 고발하기까지 사죄경을 보류하도록 조처한 바 있었다. 가장 내밀한 양심의 법원에까지 종교재판이 미쳤던 것이다.

문: 교회는 구원을 위임받았으니 가라지와 밀을 분간하고 가라지를 뽑아 없앨 본분이 있지 않았는가?

답: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마태 13,29-30)라는 말씀도 있다.

작년 말부터 유럽을 떠들썩하게 만든 피노체트 사건을 두고 영국 대법원이 내린 판결대로 "고문과 학살은 통치행위로 볼 수 없다."는 상식을 모두가 수긍하는 시점이 왔다. 계몽주의 이후 다섯 세기가 걸렸는데도 마녀사냥 같은 종교재판을 인류에 대한 범죄로 인정하기 힘들어하는 맹목의 신앙인들을 교황은 용기 있게 타이른다.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유혹과 도전에 직면하도록 우리를 각성시키고 이를 극복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제삼천년기 33항). 따라서 학살과 고문, 처형과 재산몰수를 당한 희생자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만큼, 2000년 대희년은 종교재판을 명령한 교황들과 집행한 추기경들과 도미니코회 수사들과 형리들에게만 반가운 대사면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 공동선 20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