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1997.5]

 

정치적 대공황을 두고

 

 

"장로님, 장로님, 우리 김장로님"

92년 대통령 선거때였다. 개신교 신도라면 남녀노소할 것 없이 "김장로님, 김장로님" 노래를 부르다시피 김영삼씨의 출마를 반기고 성원을 아끼지 않던 모습을 많이도 목격하였다. 군인정치 30년에 황폐된 우리 국민의 정신을 회복하려면 족히 100년은 걸리겠지만, 그래도 철학을 공부하여 정치철학이 있고 종교를 신봉하여 정치신학이 있는 인물이라면 그 치유의 기간이 그만큼 짧아 지려니 하는 여망이 그 유권자들에게서 보였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던 3당 통합의 변도, 과연 전두환과 노태후씨에게 무기징역과 17년형이 선고된 지금 부분적으로 입증되었고, 4.19로 달성했다가 박정희란 자의 총칼로 무산되었으며 25년뒤 노태후씨의 오리발로 연기되기만 하던 지방 자치제가 94년도 단체장 선거와 지방의회 구성으로 일부 실현을 보았으니 김영삼씨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의 여망은 헛되지 않았으리라. 아울러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의 시행 및 보완약속 역시 경제정의상으로 그의 치적에 해당함에 틀림없다.

그런데 김영삼씨에게 지난해 성탄절 다음날 새벽부터 닥치고 있는 정국은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기계가 멎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어서 혹자의 말마따나 <대통령 무책임제하의 대공황>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이다. 97년 2.4분기에 전국민이 절감하는 통치의 부재, 법치의 부재, 정치의 부재가 이 장로님으로 하여금 지난 4년간의 자기 정치를 여태와는 다른 눈으로 성찰하고 임기를 지혜롭게 마무리하도록 하늘이 주는 기회였으면 한다.

통치의 부재

언론이 성역의 금기를 깨고서 금년초부터 몰아쳐 보도하는 김현철씨의 놀라운 활약상을 본다면,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은 38세의 젊은이에 의해서 통치되어온 듯하다. 인사는 만사라면서 대통령 혼자서 챙겨왔다는데 결국 그 인사권이 저 아들 손에 있었다면, 또 아버지는 날마다 칼국수로 점심을 드는데 아들은 수조원의 특혜대출을 주선하고 수천억의 커미션을 챙기면서 비뇨기과를 드나들었다는 혐의를 받는다면, 사람들에게는 부자중 어느 편이 소산이고 어느 편이 거산인지 분간하기 힘들리라. 지난 2월 대국민사과를 발표했고 마침내 사랑하는 둘째아들이 사법처리되는 정국을 바라보는 노인대통령의 참담한 표정을 보면서, 김대통령이 작년 8월에 거둔 <연세대첩>에서 아들딸을 여위어 감옥에 보낸 수천의 학부모들, 지금 1천명이 넘는 양심수들을 감옥에 둔 가족들은 어떤 심경일까?

군부가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전쟁뿐이어서인지, 이 땅에 팽배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부를 축적하고 대기업이 확장되는 것을 볼 적마다 내 몫을 가로채이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농어민과 노동자, 도시서민들과 중소기업인, 그리고 이태조 이래로 차별받아온 호남인들, 5.18로 억장이 무너진 광주시민들의 마음에 너무도 깊은 상처를 누적시켜 왔다. 그래서 가난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편들어 구세주로 온 분을 주님으로 섬기는 김영삼 장로의 통치에서는 국가적 상흔이 아물기를 기대했으리라.

그러나 군부에서 경북세의 하나회가 제거된 자리에 공평한 군인사보다는 경남세의 만남회가 자리잡았을 따름이다. 김대통령의 인사정책, 국영기업의 민간화, 대기업의 지역 배치, 국제경기 유치, 심지어 수해나 가믐이나 대형사고에 대한 국가보조와 구호사업에 이르기까지도 철두철미하게 영남위주였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느 국회의원 조사에 의하면 이 나라 군관경은 온통 경남고 동창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요, 최근의 과도내각을 빼놓고는 그의 내각은 지난 30년 영남인 정권에서도 가장 호남인의 참여가 적었다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국경일 제정이나 5.18묘역의 국립공원지정 하나도 딱잘라 거절할 정도로 그는 <싸나이>답게 통치하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기독교적 공동선 개념은커녕 사회적 체면에 입각한 최소한의 정치적 형평마저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동선이란 한반도의 모든 집단이나 구성원이 자기 완성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들을 총칭하는 것이므로 영남인들만의 번영을 위한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는 정치는 권력을 이용한 정치적 절도에 불과하다.

법치의 부재

<문민정부>로서 그의 통치는 수십년간 흐트러졌던 법정의를 확립함으로써 민간정권 정통성을 확립하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집권초기의 사정정국에 국민들은 참으로 많은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결과는 자기 정적들에게만 표적이 가는 복수극이었고 그 뒤의 크고 작은 정치사건에서 똑같은 복수극이 되풀이되었다. 기독교 장로에게서는 아무도 예상 못했던 행적이었다.

그러다보니 그가 이룩한 사법정의들마저도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여론과 정국에 떠밀려서 자기 살 궁리나 차기 영남정권 창출의도에서 단행했으리라는 의혹을 사게 되었다. 노태후씨 4천억 부정축재가 폭로되고서도 폭로자 장관을 갈아치우는 대통령의 의중대로 검찰은 그 거액이 <해프닝>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다가 5.18 정국에 몰리고 5.6공 정당의 출현이 가시화하자 부랴부랴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고 그제서야 검찰도 노태후씨를 잡아넣었다. 5.18 문제에서도 줄기차게 <역사의 평가>로 미루자고 외치면서 검찰로 하여금 <공소권없음>이라는 직무유기와 피고발자 전원 불기소처분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노태후씨의 비자금이 자신을 당선시킨 대선 자금임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돌연히 <역사청산>을 선언하고 5.18 특별법을 제정하게 조처하였다. 더군다나 12.12와 5.18의 수사와 기소 및 재판에서 5.18 발포명령자를 밝히지 않은 점이라던가, 광주시민들의 희생이라던가 5.18의 정치적 피해자 김대중씨와 그 일행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묵살한 점 때문에 많은 국민은 그가 오로지 정치적 술책에서 과거청산을 했다고 평가절하한다.

최근의 한보철강의 부도나 한보그룹 특혜융자에 대한 아들 김현철씨 관련 문제를 두고도, 대통령의 권하에 있는 검찰은 충실하게 대통령의 의중을 따라서 수사하고 있다는 의혹은 이 나라 국민 그 누구도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현철이를 구속시킨다면 대통령이 하야할 수밖에 없고 그리 되면 헌정중단을 피할 수 없다"는 협박이 검찰에서 흘러나왔을 지경이다. 온 국민은 한보철강에서 사라진 1조 2천억의 행방인데도, PK인사들로 짜여진 검찰은 "정태수의 머슴 정치인들"만 불러대면서 4월 한달을 온통 허송하였고(신앙인이니까 알아듣겠지만 "그럼 너는 안 먹었냐?"라는 욕설과 "내 탓이오!"라는 고백은 사뭇 다른 말이다), 김현철씨를 구속하면서도 나라를 망친 죄상은 덮어두고 뇌물 몇 억으로 끝마칠 수작인지라 공정한 사법처리는 결국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것임에 틀림없다. 또 김영삼 정부는 국가보안법의 개악을 비롯해서 아마도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률이 가장 많은 정권으로 기억되리라.

정치의 부재

5.16 쿠데타, 12.12 군사반란, 5.18 내란, 반란군의 광주시민학살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 영남 권력자들의 전쟁이 아니었던가? 야당인사의 대권장악은 그가 영남인으로서 민족사의 이 엄청난 범죄를 해결하고 사죄하고 화해시킬 은혜로운 기회였다. 하지만 국민이 4년간 보아온 것은, 정치보다는 정략에 능란한 9단 정치인의 뒤집기 깜짝쇼들뿐이어서 한보사태를 기화로 보수언론이 그의 측근 민주계의 몰살시키고 있음을 보면서도 국민의 동정심을 사지 못하는 것이 대통령의 처지다. 미친개가 아닌 한, 개는 주인을 물지 않는다. 만일 문다면 진짜 주인이나 새 주인이 누군지 알기 때문이리라. 어정쩡한 개혁이 보수세력을 건재하게 만들었다가 지금 사정없는 반격을 당하는 중이며, 아마도 임기종료후에는 거의 치욕적인 보복을 당할 것이 뻔한데도 그는 한사코 영남세와 보수세에만 목을 걸고 있어 안타깝기 짝이없다.

국제정치도 부재하다. 그가 외교순방길에 오를 적마다 국내에서 사건들이 터진 일이야 우연이라고 치자. 간신히 북한핵 위기를 넘기고서 남북정상회담이 결정되었을 적에 국민들은 얼마나 마음이 부풀었는지 모른다. 단지 노익장 김일성 주석의 거구와 소익장 김영삼 대통령의 체소한 체구가 포옹할 장면을 상상하며 국민들이 쑥스러워 하던 판에 김일성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노익장 김영삼 대통령과 체소한 김정일이 포옹할 장면으로 역전되어 천우신조인가들 했었다. 그러나 초상난 집을 향하여 문상 대신에 전군경계령이라는 총뿌리를 들이댐으로써 김대통령은 민족화해의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고, 즉각 조문한 클린턴은 북미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의 식량난을 보고 쌀 20만톤을 주는 용단을 내리길래 대화의 기선을 되잡았나 싶었더니 인공기 사건 하나로 180도 정책전환을 행하여 지금은 전세계로부터 한국민과 그 정부는 동포가 굶어 죽는데도 쌀한톨 안 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야만처럼 욕먹고 있다. 하늘은 남북화해의 승기를 잡을 기회를 거듭거듭 베풀어주건만 시대의 표징을 읽지 못하는 맹목은 늘상 호기를 놓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 오뉴월에 북한에서는 1천7백만이 굶어죽으리라고 예고하면서도 쌀 한 톨 주지 말라는 보수언론에 휘둘리는 장로라면, 퇴임후 대선자금과 김현철 비리어 얽혀 수백 수천억의 추징금을 물고 스스로 굶주릴 처지도 상상해 볼 만하지 않을까?

설상가상인지 체감상으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날개없이 추락하는" 현실이어서 누구는 한국이 멕시코 같은 국가적 파산을 당할까 우려한다. WTO의 묵직한 구두소리에 우리네 담장이란 담장은 모조리 무너지고 있다. 파렴치할 정도로 집요한 미국의 무역정책 앞에서 우리네 부뚜막 숫가락이라도 과연 남아날성싶지 않다(KEDO 자금은 우리나라가 모조리 대고 생색은 미국이 내고 있지 않은가? 미사일 구매에 관한 최근의 협박과 압력을 보라!).

국민에게 희망을

정세가 험악하고 어려울수록 영도자는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군인들이야 일방적 명령과 복종에만 훈련받았으므로 대화를 할 줄 몰랐던 사람들이지만 건실한 그리스도인이자 정치 9단의 경륜을 가진 김영삼씨는 정치적 대화에서도 그만큼 고단수이기를 국민들은 기대한다. 야당을 상대로, 국가 원로들을 상대로, 전문가들을 상대로 겸허하게 대화한다면 시국을 수습의 지혜를 얼마든지 찾아내리리라. (필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4년 정치가 이토록 피폐된 까닭이 혹시 김대중씨에 대한 지나친 라이벌 의식이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남정권을 재창출해야겠다는 집념 때문이 아닌가 의심한다.)

토인비는 인류사의 위업을 이룬 민족들에게서 "굳건한 단결력", "왕성한 활동력" 그리고 "거짓없는 국민성"을 꼽았다. 김영삼 대통령의 극단적 영남주의, 흡수통일의 망상에서 온 대북정책은 국민의 "굳건한 단결력"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단돈 1-2억을 융자받지 못해 날마다 수 백개의 건실한 중소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는가 하면 5조원을 빌려다가 부도낸 한보그룹 회장이 국회청문회에서도 큰소리치는 세태에서 사회가 무슨 흥에 왕성하게 활동하며 단결하겠는가? 악마야 거짓말을 할 때는 자기 근성대로 한다지만, 본인의 성격에 비해서 김대통령은 그간 신의를 너무 많이 잃었고, 따라서 토인비가 말하는 "거짓없는 국민성"을 복원하는데 우리는 다시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할 것같다. 지역이기심이나 보수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들도 그의 통치 과오에 대해서는 역사적 책임을 함께 져야 마땅하리라.

김영삼씨는 지금이라도 아들 김현철의 죄상을 철저히 가려냄으로써 혈육의 정보다는 국가의 기강을 염려하는 정치가로서의 입지를 회복하고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 문민정부의 첫번 주자답게 공직을 마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선거가 가까와지면 TK표를 계산하고는 "국민화해의 차원"에서 김대통령은 전두환 노태후씨를 사면할 것에 틀림없는데, 필자가 기억하기로 여태까지 그가 취해온 화해는 언제나 5.6공의 기득권자들과의 화해였지 민주화 투쟁을 함께 해온 동지들과의 화해가 아니었다. 하느님의 심판을 믿는다는 사람이 정권을 버리고 가는 마당에서까지 양심수들과 대학생들을 석방하고 사면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차기 정권의 손아귀에서 김영삼씨 부자가 당할 적에 그를 진정으로 감싸줄 집단은 민주화의 동지들뿐일텐데 말이다.

[공동선 1997.5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