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 1995.1]

 

 

북한선교를 위한 영성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몰고온 엄청난 세계정치의 지각변동으로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동유럽국가들이 현실사회주의를 포기하고 공산당을 해산시키는 기적이 왔다. 그런가 하면 북한마저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하였고, 남북한이 함께 민족화해의 문서를 만들었으며, 남한은 핵부재를 선언하고 북한은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서명함에 따라서 통일사목을 계획하는 한국 교회로서는 희망의 서광이 어느 때보다 밝다고 느낄 것이다. 서울대교구가 통일사목을 내다보며 기금적립을 시작한 것이 구체적인 예라고 하겠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기까지는 벼라별 문서합의와 남북대화가 있어도 남한 정부의 통일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고, 수천 명의 양심범이 철창에 갇히는 공안통치하에서 지방자치단체까지 석권하여 기고만장해진 지금의 권력집단에게 전혀 기대를 품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세계정세에 따른 대국적 변화는 모두의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기회에 적어도 통일을 바라보는 신앙인 자세와 시각을 반성해 보고자 한다.


1. 통일을 위한 영성(靈性) 교육

① 신뢰하는 대화

아다시피 대화하는 첫째 조건은 상대방이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나오든 간에 일단 우리 측에서 믿음을 보이는 일이다. 남북대화를 주도하는 정부와 정치가들은 실리위주라서 대화의 방식이 사뭇 다르겠지만, 북한 국민 또는 북한 교회와 대화하려는 종교인들은 일단 상대방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서 이야기를 시작함이 바람직하다. "북한은 공산주의 체제 가운데서도 세계 최악의 폐쇄사회다! 북한은 오로지 반종교정책을 일방적으로 관철시켜왔고 따라서 북한의 종교는 완전히 말살되었다! 조선기독교연맹이니 조선천주교인협회니 하는 것은 공산당의 기만적인 역이용이요 정치극이다! 장충성당이니 봉수교회니 하는 것은 다 선전용 셋트다! 장충성당 벽화에 그려넣어진 저 태양(민족의 수령)을 보라!" 이런 말은 안보를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해온 정치가들의 상투적 어법이지 사람들을 믿고 사랑하는 신앙인들의 말씨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북한교회가 1950년 이후 목자 없는 평신도로 이어져온 신앙의 공동체로서 지난 1988년 6월 이후 <조선천주교인협회>로 그 모습을 드러낸 사실에 유의한다"는 <북한선교위원회>의 1989년 메시지는 괄목할 만한 진전이다. 북한의 45년 역사를 붉은 악마가 지배한 악의 역사로 매도하는 이데올로기적 사관에서 배달겨레의 하느님이 이끌어오신 신비로운 섭리로 파악하는 신앙인다운 사관으로 바뀐 증거로 보인다.


② 화합의 첫걸음은 반공의 극복

두번째로 그 대화는 화합적인 것이어야 하고, 따라서 남한 천주교신자들이 갖추어야 할 통일 영성의 첫걸음은 반공교(극복함이다. 그 첫번 이유는 반공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하느님과 그 계명보다 앞세운다면 그것은 우상숭배다. 공산주의자들을 무신론자라고, 종교자유를 안 준다고, 사유재산과 자유를 빼앗는다고 증오하는 신자들이지만, 흔히는 그 본심이 자기 손아귀에 있는 것을 안전하게 보전하려는 욕심, 못 가진 자들과 약자들로부터 기득권을 보호하는 폭력에 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는 없읍니다."(마태 6,24)고 하셨는데 신기하게도 맘몬은 시대마다 가면을 바꾸어 쓴다. 교회사를 보면, 맘몬은 이단을 분쇄한다는 정통신앙으로, 교계적 일치를 강화한다는 성직주의로, 천부적 사유재산권을 옹호한다는 자본주의로, 반공의 보루를 자처하는 유신론으로 가면을 바꾸어 써 왔다. 아무리 나쁜 독재집단이라도 공산당보다 낫다던가 사회가 아무리 비뚤어지고 부패해도 전쟁터지는 것보다 낫다는 논리는, 하느님 위에 안보를 섬기는 우상숭배다.

둘째 이유는 반공이 반(堅� 때문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에 못지 않게 반공도 증오와 분열과 안보제일의 맹목을 가져왔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골자는 인간이다. "인간이야말로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한길이다."(요한 바오로 2세) 공산사회든 반공사회든,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유린당하고 죽임당한다면 그것은 신앙의 근본에 반대되는 죄스러운 사회다. 민족사회라는 공간은 범죄의 공간이거나 아니면 은총의 공간이 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사상이 다르다는 명분으로 남을 죽이며, 국가보안법과 군대와 경찰로 약자들을 억누르는 분열은 악마에게서 온다. 민족의 분단과 동족간의 학살과 1991년 현재 천 오백명의 양심수를 두고 신앙인들이 마음 편히 지낸다는 것은 천주교가 집단적으로 마귀들린 현상으로 비칠 수 있다. 공산주의 정권들이 저렇게 몰락한 지금도 국내에서 가난한 이들을 편들다 스스로 십자가를 지거나 자기가 죽어 남을 살리는 사람들, 진리와 정의를 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좌익이라고 매도당하거나 공연히 미움받는 교회내 풍조에서는 악령의 냄새가 풍긴다. 북한 선교와 민족통일을 운운하는 교회단체들이 일반국민의 눈에 멸공사목( 아닌 통일사목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공언이 있어야 한다.


③ 분단의 죄를 속죄함

따라서 반공사상을 극복함은 회개하고 속죄하는 표시다. 멀리서나마 남북화해 속에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리가 들리거든, 먼저 "회개하고나서" 즉 우리 골수에 박힌 반공을 극복하고 난 다음에 통일의 복음을 믿어야 한다. 전쟁으로 원수진 한 민족의 두 집단이 화해하려면 신앙인들의 영성적이고 사상적인 전향(요구된다. 해방 이래로 적어도 남한을 덮고 흐르는 피의 강들이며, 대한민국에서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수십만 동포를 학살하고 투옥하고 수백만명에게 사회적 억압을 가한 모든 범죄들을 누가 하느님 앞에서 뉘우치고 보속할 것인가? 신앙만이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와 증오를 초월하여 하느님의 눈과 마음으로 민족사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안목을 부여한다.

무죄한 이들이 그리스도신자라는 이유만으로 북한에서 학살당하고 숙청되었음을 강조하는 신자들이 있다면, 남한의 군부가 이데올로기의 명분으로 제주와 지리산 일대와 광주에서 그 많은 죄악을 저질러오는 동안, 천주교가 그 범죄에 침묵하거나 동조해왔고 무수한 신자들이 그런 범행에 적극 가담한 사실을 상기하기 바란다. 필자의 호소는 '우리'가 하느님 대전에 저지른 죄악을 고백하고 보속하자는 것뿐이다.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서와 고백실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지 남의 죄를 고발하여 자기 죄를 변명하지 않는다. 저들은 인민의 적이라고 하여 무고한 양민을 죽였고 우리는 빨갱이라고 하여 동포들을 죽여 왔다. 개신교는 글리온선언 이래로 이런 엄청난 민족적 범죄에 "우리 탓이로소이다!"라고 가슴을 쳤지만 천주교는 아직 고백하지 않았다. "그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이 책임지겠읍니다!"(마태 27,25)는 대담한 오만에서일까?


2. 통일사목을 위한 전제들

① 북한교회를 실제로 인정하는가? 1989년의 메시지에서 남한교회는 "북한교회의 참모습이 구원의 신비 속에 뚜렷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와 희생을 바치겠다고 공언하였다. 이러한 교회 공식 입장은 강론과 교리교육을 통해서 성인 및 학생 또는 아동들의 의식으로 보편화되어야 한다. 정말 북한교회가 북한에 사는 하느님 백성으로 자립하도록 실제로 돕고 싶다면, 김수환 추기경의 평양 교구장 서리, 이동호 아빠스의 함흥 교구장 서리, 덕원 면속구장 서리의 직책은 무슨 의의를 갖는가? 그것이 남한의 이북 5도청과 어떻게 다른가? 그 지역소속 신자와 성직자들로 남한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수복후 내 땅 되찾겠다는 예비인가? 교황청이 직접 그곳에 교구장이나 서리를 파견하거나, 차라리 왕래와 통신이 가능한 중국 교구장들에게 소임을 맡기면 실제로도 북한 신자들에게 최소한의 사목적 배려가 가능하지 않을까?

② 남한교회가 북한교회를 상대로 겨냥하는 선교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상호민간 교류가 가능해질만큼 북한이 유화될 때에, 남한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파견하여 성당을 세우고 전교하고 성사를 집행하고 성직자를 양성하겠다는 것인가? 이것은 교회 차원의 흡수통합 아닌가? 남한교회가 너무나 서양식이고 자본주의적인 모습으로 북한 신자들 눈에 비친다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들이 과연 그것을 수용할까? 북한 정부와 교회가 자본과 금전을 필요로 할 테니까 미국 달러라는 맘몬을 내세워서 밀고 들어가자고 생각했다가, 만약 북한이 중국 교회식의 삼자(칙을 고수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또 우리가 전하려는 것은 하느님인가, 자본주의라는 맘몬인가? 북한교회는 교계든 전교든 성당이든 스스로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③ 남북대화와 북한선교에서 주체는 누구인가? 제도교회인가, 하느님의 백성인가? 문규현신부의 방북사건의 처리를 지켜본다면, 적어도 남한천주교에서 나타낸 주교단과 (교황대사의 발언을 통한) 교황청의 입장은 교계주도와 창구단일화였다. 민족화해라는 선행을 하는데 굳이 목자들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더군다나 창구독점을 주장하는 목자들이 뒷짐지고 침묵하면서 과감한 성직자와 신자들의 행동마저 제한한다면 어찌되는가?

④ 남북양측의 종교적인 대화나 방문이 두 정치사회의 진보적 변혁을 추진하는가 보수화에 악용되는가? 남북교회의 만남이 남한내의 진보적 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엇인가? 또 스위스나 미국이나 일본 등지에서 이루어지는 개신교 남북한의 모임들이 북한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일까? 남한 정권은 문목사, 문신부, 서의원, 임수경양, 홍목사의 경우에서 오히려 공안통치를 자행하는 빌미로 삼았다! 그렇다면 남북한 정부가 '허가하는' 방북이나 만남들이 정말 얼마나 순수한 종교적 성격을 띠는지, 두 정권의 공작이요 정치쇼가 아닌지 예의주시해야 하지 않을까?

⑤ 북한교회의 실상은 어떠한가? 지난 45년간 북한 사회 안에서 천주교가 갖고 있던 위치는? 해방후에 북한 정권과 교회가 어떤 관계였을까? 토지분배나 국유화 등에 있어서 북한의 반제반봉건 정책에 천주교는 어떤 식으로 호응하였던가? 해방전후 천주교가 북한에서 차지하고 있던 사회경제적 여건이나 위치가 어떠 했길래 그러한 충돌이 초래되었을까? 만일 지금 <조선천주교인협회>가 조작단체가 아니라면 그들이 다시 일어선 바탕은 무엇인가? 완전히 말살되었어야 할 천주교신자들이 왜 북한 사회의 정치적 요소로 등장한 것일까? 그 단체가 (일부의 우려대로) 대외 선전용의 의미 외에도 대내적 요소가 전혀 없을까? 남한 사회의 종교집단들과의 대응으로 보인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안기부나 교황청이나 미국무성이나 미중앙정보부에는 유관 자료가 전혀 없을까?

⑥ 북한의 주체사상은 무엇인가? 스탈린이나 모택동의 전례를 보아서 김일성 우상화는 당사자의 죽음과 더불어 우스꽝스러운 신화임을 스스로 드러낼 것이다(유신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왔고 자본과 안보라는 우상을 섬겨온 자들은 김일성 우상화를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문제는 이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사찰 지연을 빌미로, 소련의 양해하에, 미국이 북한을 이락처럼 침략 공격하고(북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러한 최악의 가상이라고들 한다.) 그 덕분에 북진통일을 이루고 공산주의자들을 섬멸하는 날이 오리라고 망상하는 남한 천주교신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북한 국민에게 종교에 가까운, 주체사상을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신학생들과 평신도 지도자들과 교회 청년들이 필히 연구할 과제가 아닐까? 북한 신자들은 주체사상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50년에 가까운 이질적인 역사(그들의 구세사)를 살아온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그들의 방법으로 교회를 일으키도록 도울만큼 인내로운 북한선교를 행할 자세가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 공동선 199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