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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 읽기 8]

(경향잡지 2017년 9월)

 

하느님의 승부욕

 

1981513일 바티칸 광장에서 울린 두 방의 총성! 그 총상으로 1년 넘게 사경을 헤매던 교황은 병상에서 어째서 세상에 악이 있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보다 세계에서부터 인간에게로 오는 데도, 인간은 악에 대한 물음을 세계를 향하여 묻지 않고, 왜 하느님께 묻는가?”(요한 바오로 2, 구원에 이르는 고통9)라는 의문에 더 시달렸다. 인류역사에서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천착한 아우구스티누스가 평생을 두고 씨름하여 얻어낸 몇 가닥 해답.


첫째, “악은 인간에서 유래하였다, 그것도 개인적 집단적 의지에서!” 이 해답이 우리 귀에 아무리 억울하게 들리더라도 한 가지는 가능해졌다, 적어도 인류의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악을 청산하는 일이! 선과 더불어 악이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라면 인간은 무슨 수로도 악을 못 이긴다. , 넘어지기야 제멋대로지만 무르팍이 깨지고 갈비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면 자기 힘만으로 못 일어난다. 넘어진 자는 구세주라는 분의 덕을 봐야 한다는 은총론이다.


둘째, 온갖 과일나무가 밀림을 이루는 낙원에서 딱 한 그루만 따먹지 말라는 금령은 왜 내리셨을까, 따먹지 말라 말리실수록 걸음마를 하고 무등을 탈 줄 안다면 기어이 그 나무를 서리해 먹고서 모조리 울타리 밖으로 내뺄 게 뻔한데? 어려서 배서리를 해본 심보(2)로 미루어, 교부가 어림잡은 풀이는 이렇다. 선과 악은 하느님이 정하시고 피조물은 따라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라며 성삼위께서 머리를 짜서 지어내신 종족이 하느님을 거슬러 하느님을 본뜨는”(2.6.14) 짓이 참 대견키만 하셨으리라. “달려가거라, 얼마든지! 내가 안고 데려오리라!”(6.16.26) 하시는 하느님의 자신감! 인간에게 그 위험한 자유의지를 주시고 세상에 악이 창궐하게 허락하신 모험심! 고백록8권에 이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삶에서 얻어낸 세 번째 답이 나온다. '하느님의 승부욕'이다. 


소박한 서민 라틴어로 옮겨진 불가타 성경을 펼치자마자 코웃음 치며 내던지던(3.5.9) 젊은 시절의 호기와 달리,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성경 구절들도 변호의 여지가 있다고 보이고, 마니교도로서 자기가 능멸하던 가톨릭 교리도 함부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더니 아하, 가톨릭에도 나름대로 논변가들이 있구나!’ 하였단다.


또 암브로시우스가 나봇 이야기(최원오 역주, 분도출판사 2012)에서처럼, 사회 불의를 과감하게 지탄하거나, 이단논쟁의 와중에 황후 유스티나 황후가 밀라노 포르키아나 성당을 아리우스파에게 인도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가톨릭신자들과 함께 성당에 농성하여 명령을 철회하게 만든다든가(9.7.15),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테살로니카 양민들을 학살하자 황제의 성당 입장을 저지하고 속죄행위를 하게 만드는(390) 결단에서 복음에 담긴 사회적 사랑을 파악하였다.


그 무렵의 심경은 이렇게 쓰여 있다. “저로 말하자면 속세에서 제가 해오던 바가 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정욕마저도 평소처럼 타오르지도 않은데다, 명에나 돈에 대한 희망으로 속세의 저토록 무거운 종살이를 견뎌내는 일이 제게 무척 짐이 되던 참이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여자에게만은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귀한 보석을 저는 이미 발견했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그 보석을 사야 했건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8.1.2) 그를 번뇌케 하는 것은 이제 논리적 사변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을 요하는 실존의 문제였음을 제가 간절히 바라던 바는 당신께 관해서 더욱 확실해지는 것보다는 당신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는 것이었습니다.”(8.1.1)라고 실토한다.

 

저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금방은 말고


저를 꼼작 못하게 묶어 놓았던, 성애의 욕망이란 사슬과 속세 업무의 예속으로부터 당신께서 저를 어떻게 풀어주셨는지 얘기하겠습니다.”(8.6.13) 먼저 그는 암브로시우스가 멘토로 삼아왔다고 소문난 심플리키아누스라는 노인을 찾아갔다.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죽자 고령에 그 주교직을 계승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인은 그 젊은 카르타고인의 영혼 속에 몰아치는 노도광풍이 그리스도교 사상사에 얼마나 위대한 화재를 일으킬지 꿰뚫어보았다. 빅토리누스라는 인물의 일화를 들려주며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야할 길을 손가락질해 보였다. 당대 제국 최고의 웅변가로서 그리스도교를 냉소하고 조상전래의 이교문화를 재건하는데 혼신을 다하던 지성인 빅토리누스가 돌연히 가톨릭교회로 입교한 실화(8.2.3-4.9)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오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속으로 저도 불현 듯 그를 본받아야겠다는 열망이 불타올랐습니다(8,5,10) 하면서도, 천둥벌거숭이 인간들에게 자비를 한없이 투자하시다 외아들마저 서슴없이 담보로 내놓으시는 하느님의 승부욕을 간파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기에, 절망한 영혼의 구원을 두고, 보다 큰 위험에서 구출된 영혼의 구원을 두고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까?”(8.3.6) “적이 어떤 사람을 보다 철저히 장악하고 있고 그 어떤 사람을 내세워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는 터에 그 어떤 사람이 패하고 만다면 적의 패배가 그만큼 큰 법인가요?”(8.4.9) 이런 힐문에는 신자들 체포영장을 들고 다마스쿠스로 달려가던 사울을 걷어찬 발길이 머지않아 자기한테 떨어지리라는 예감을 담고 있다.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그런 심경을 짐작했었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민족들 사이로 흩어져 가 거기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다.”(에제 36,22)


뒤이어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읽었고, 지인 폰티키아누스가 찾아와 황실 근위대 무관 둘이 최근 갑자기 출세가도를 포기하고 밀라노 교외의 수도원에 은둔해버린 사건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자신의 달콤한 권태감이 한스럽기만 했다. 저는 묶인 채, 그것도 딴 사람의 쇠사슬이 아니고 쇠사슬이 된 제 의지에 묶인 채였습니다. 그렇게 거꾸로 뒤집힌 의지에서 육욕이 생겼고, 육욕을 섬기는 가운데 관습이 생겼고, 관습에 저항하지 않다 보니 필연이 되고 말았습니다. 두 의지가 저희끼리 맞부딪치고 어긋나며 저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 놓았습니다.”(8.5.10)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 직전 불만스럽고 죄스러운 처지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면서도 한사코 미적거리던 심경은 현실인간으로서 하고 싶다할 수 있다’(velle et posse)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실감케 하고, 인간이라는 심연 속에서 일어나는, 죄의 율법과 하느님의 율법의 투쟁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미세레레 시편으로 읽혀오고 있다. 입으로는 주님, 어서 하십시오! 몰아세우십시오! 불러주십시오! 타오르게 만드시고 끌어당겨 주십시오! 달구어 주시고 애무해 주십시오!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치닫게 해 주십시오!”(8.4.9)라고 호소하면서 내심의 기도는 저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금방은 말고(8.7.17)였다. 주님께서 기도를 당장 들어주실까 두려웠단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잠꼬대처럼 느릿한 말로 금방’, ‘, 금방’, ‘조금만 놔두십시오.’였습니다. 하지만 그놈의 금방 또 금방은 아예 대중이 없었고 조금만 놔두십시오.’는 오래도 갔습니다.’”(8.5.12)

 

집어라, 읽어라!


그러다 그 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하늘 사냥개한테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음을 절감했다. “저의 가련함을 저 깊은 밑바닥에서 통째로 끄집어내더니 제 마음의 눈앞에다 턱하니 쌓아놓았습니다. 그러자 거대한 폭풍이 일어 거대한 눈물의 소나기를 싣고 왔습니다.”(8.12.28) “저는 얼빠진 듯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한없이 끓어오르는 분개심에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8.8.19) 어느 무화과나무 밑에 주저앉았고 제 눈의 강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당신께 부르짖었습니다. ‘도대체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주님, 언제까지 끝끝내 진노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입니까? 왜 지금은 아닙니까? 어째서 바로 이 시각에 저의 추접을 끝장내지 않으십니까?’”(8.12.28) 아마 난생 처음 진정으로 살려주십쇼!’ 외쳤다.


그리고... “난데없이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집어 들었습니다. 폈습니다. 그리고 읽었습니다. 제 눈이 가서 꽂힌 첫 대목: ‘술상과 만취에도 말고, 잠자리와 음탕에도 말고, 다툼과 시비에도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시오. 그리고 욕망에 빠져 육신을 돌보지 마시오.’ 더 읽을 마음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구절의 끝에 이르자 마치 확신의 빛이 저의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홀연히 흩어져버렸습니다.” (8.12.29) 서기 386년 초가을 밀라노 정원의 어느 날 밤, 그에게 돈오의 경지를 열어준 홀연히라는 한 마디는 이후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비신학과 은총론을 푸는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