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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읽기

(경향잡지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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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바다를 상상하던...

 

소싯적부터 조그만 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


1600년 전에는 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타가스테라는 마을(지금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라카스)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소년이 살았다. 너무 조숙했다. 비록 내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조그만 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서간 3,6)


중년 나이에는 히포의 주교가 되어 어느 날 바닷가를 거닐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심오한 신비 삼위일체를 궁리하고 싶었다. 모래톱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놓고 조개껍질로 부지런히 바닷물을 퍼 나르는 아이가 헛보였다. “얘야, 뭐 하러 물을 퍼 나르니?” “저 바닷물 모조리 퍼 담으려구요.” “예끼, 요 작은 구멍에 저 많은 바닷물을 어떻게 퍼 담는다는 말이냐?” “그럼, 아저씨 작은 머리로 삼위일체 하느님을 어떻게 알아들으려구요?” 이 말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아이는 교부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창조주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이기에 저 무한자를 머리와 마음에 담을 역량이 있으리라는 신념은 20여년 걸려, 후대 모든 삼위일체 신학의 교본이 되는 삼위일체론(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2015)을 집필해냈다.


끝으로, 서기 430, 서양사의 기적이라고 전해오는 로마제국이 무너지는 굉음을 들으면서 인류사의 지평선을 내다보는 역사신학서 신국론(성염 역주, 분도출판사 2004)을 마친 얼마 뒤, 북아프리카를 초토화한 반달족에 포위된 히포에서 바울로 사도 다음가는 위대한 사상가는 76세 나이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어리석게도 나는 모든 것을 머리로 알아듣고 싶었어.”


젊어서부터 , 진리여, 진리여! 저 사람들이 그렇게도 흔하게 그렇게도 다채롭게, 때로는 소리로만 때로는 많고도 커다란 책자로 당신을 말소리로 드러낼 때에, 내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당신을 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까!”(고백록 3,6,10)라던 그는 자기가 장차 발견할 진리에 일찌감치 내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호칭을 붙여두었다.

 

"내 작품 중 어느 것이 고백록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까?"


8세기 이전의 그리스도교 학자들을 교부(敎父)’라고 통칭한다. 그들 가운데 중세는 물론 현대에 와서도 저서가 부단히 읽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다. 생전에 100책이 넘는 저작을 남기고서도 "내 작품 중의 그 어느 것이 고백록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까?" 하며 본인이 자기 대표작으로 여긴 책이다. 우리말로도 개신교에서 30여종의 중역본이 나올 만큼 인기가 있고 가톨릭에서는 시인 최민순 신부님의 감칠맛 나는 번역본 고백록, 님 기림의 찬가(바오로딸 1965)가 반세기 넘게 읽혀왔다.


필자의 은사인 최신부님의 훌륭한 번역본이 있음에도 필자가 라틴어 원문 역주본(경세원 2016)을 새로 낸 것은, ‘세계문학전집에 필수로 들어가는 이 명저에 크리스천 아닌 독자들도 무난히 접근하게 돕는 주해가 필요하고, 학술용 원문번역본이 나올 시기가 되었다는(특히 후반부 시간론과 창조론을 이해하려면 좀 담담한 직역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전체 13()으로 엮어진 이 책의 전반부(1-10)는 자기 생애를 돌이켜 보면서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구원 은총에 바치는 찬미의 고백이고, 후반부(11-13)는 창조주께 드리는 우주찬가. 특히 제9권은 성인이 당신 어머니 모니카에게 바치는 사모곡(思母曲)에 해당한다.


첫 권부터 독자들과 함께 읽어가자면, 그 맨 앞(1,1~5,6)고백록전부를 다듬은 간추림에 해당하므로 차근차근 읽어둘 만하다. 첫줄부터 탄성이 나온다. 주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그리고 인간, 당신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 합니다.”(1,1,1) 신앙인이 자기 살아온 얘기를 하자면 저지른 죄를 돌이켜보면서 하느님 자비가 자기 인생 무대에서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찬탄하는 고백이자 찬미일 수밖에.


의도는 간결하다. 제가 당신 자비 앞에서 말씀을 드리게 해 주십시오. 흙이요 먼지인 제가 말씀을 드리게 잠자코 두십시오.”(1,6,7) 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제가 누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까? 저의 하느님, 당신 앞에서 저의 족속에게, 이 글을 접하게 될 인간 족속에게 이야기하는 중입니다.”(2,3,5)라고 아뢴다. 독자들이 "내 선업을 두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 악업을 두고는 탄식의 한숨을 쉬라고, 나의 선업은 당신의 업적이자 당신의 선물이며 나의 악업은 내 죄악이자 당신의 심판이라고, 그토록 많은 내 죄에서 내가 누구 덕분에 빠져나왔는지 보았을 테니까 자기들도 바로 그분 덕분에 그 많은 죄의 질병에 시달리지 않았음을 보리라(2,7,15)는 기대에서다.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 주님!”


소싯적부터 목마름을 덜어주는 한 모금 물에서 끝없는 바다를 떠올렸듯이, 배고파 맛있는 음식을 먹는 포만감, 눈앞에 잔 꽃송이 하나의 경이, 여인을 포옹하는 도취, 순간순간 감지하고 깨닫는 모든 지식에서 그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어떤 것이 함께 인지되고’ ‘함께 욕구되고’ ‘함께 사랑받고 있다는 감촉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매순간 욕심내는 대상과, 일평생을 걸고 사랑할 만한 대상 사이의 엄청난 거리, 연인의 포옹 중에도 엄습하는 고독과 불안은 저 절대지평(絶對地平)’으로 그의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태생적으로 갈망하고 찾아 헤매는 대상을 기어이 손에 넣어 향유해야만 인간은 행복해지리라고 절감하였다. 막연하면서도 처절하게 그리운 그 대상에게 교부는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1,1,1)라고 실토하였다. 고백록의 주제가 되는 명문이다.


저주스러워라, 저주스러워라! 얼마나 숱한 층층대를 밟아 지옥의 밑바닥까지 끌려갔던 것입니까! 그러면서도 진리에 허덕이며 맘 조리고 애태우면서, 저의 하느님, 당신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3,6,11) 하느님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인간의 부족함을 채우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신념이 평생 그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점성술로, 마니교로, 회의론으로 흐르던 방랑, 여성 탐닉과 황실교수직과 출세를 만끽하던 욕망에서도 그는 자기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하늘 사냥개의 추격을 늘 뒷덜미에서 느껴 당신 말씀이 제 폐부에 박혀 있어서 저는 어디로나 당신께 에워싸여 있었습니다.”(8,1,1)라고 자백할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면 무엇을 알고 싶은가?” “하느님과 영혼을 알고 싶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가?” “전혀, 아무것도 없다.”(독백 1,2,7)는 대담처럼, 우구스티누스는 저 판관시대의 거인 삼손처럼 하느님과 인간이라는 두 기둥에 묶여 한평생 사색의 연자방아를 돌렸다. 하느님은 늘 숨어계시고 인간은 자신에게도 늘 수수께끼였다. 당신께서는 제게 무엇이 되십니까? 제가 당신께 무엇이기에 저 같은 것에게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하십니까? 또 그렇게 아니 하면 저에게 진노하시고, 엄청난 비참을 내리시겠다고 으르십니까?” (1,5,5)


이 두 존재가 씨름하는 모습을 교황 프란치스코는 자비와 비참이 마주섰다고 형용하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진리이신 분에게 듣고 싶었던 답변은 이랬다. 아아! , 저의 하느님,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저에게 당신 무엇이 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의 영혼에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너의 구원이다!’하고.”(1,5,5)


서문이 끝나면 하늘과 땅의 주님, 당신께 고백합니다. 제가 기억도 못하는 저의 시초와 갓난아이 시절을 들어 당신을 기리렵니다.”(1,6,10)라며 유아기와 소년기 얘기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