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방송 <열린세상오늘 인터뷰> 전문 방송]                                                  

[2009.6.27]

 

전 주교황청대사 성염  





[주요발언]

"번역에 몰두..초청.강연 외에는 지리산 떠나지 않아"

"단테'의 책 '제정론’..속권과 교권이 완전히 동등,소위 종교 분리론을 확립했다고 평가되는 책"

"유럽 연합 헌법 초안 서명, 교황청에게는 아주 씁슬한 날"

"유럽 정상들..유럽이 그리스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문구가 헌법 서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 거부"

"단테의 제정론.. 정치와 종교 영역을 구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사상을 주입한 책으로 평가"

"나머지 여생의 본분으로 여기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번역하겠다"

"호혜주의라는 것은 사실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법과 같다"

"오로지 각을 세우고 북한을 쪼는 그런 외교정책은 적어도 교황청에 상당한 실망
으로 받아들여졌을 것"

"적어도 제가 대사로 있을 적에 교황께서 격려하시던 그 한반도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교회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정책적으로 좀 실천 되다가 거의 폐기된다는 느낌을 많은 분들이 받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언전문]

우리나라에 '단테'는 신곡'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현실정치가이자 사상가로 1300년대 도시국가였던 피렌체의 정치에 깊이 개입한 인물입니다.

이 같은 단테의 정치철학을 보여주는 책이 '제정론'입니다. 최근 노무현 정부에서 교황청 대사를 지낸 성염 전 서강대 교수가 이 책을 번역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보내 드리는 문화라운지,,오늘은 성염 전 교황청 대사 연결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역임하셨고 최근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번역을 주로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근황이 어떤지.. 간략히 말씀해 주시죠?

▶지금 시골에 살면서 아우구수티누스 저서들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에 거의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강연 초청 외에는 지리산 밖으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신곡'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진 '단테'의 책 '제정론’을 번역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발간한 제정론’은 어떤 책입니까?

▶예. 이석우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지난 세기, 제2 바티칸 공의회가 정치 종교를 이렇게 정립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영역에서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이다. 그러나 양자는 동일한 인간들의 개인적, 사회적 소명에 봉사한다." 이게 1965년에 댄 사목헌장 71항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보다 660년 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가 낸 칙서하고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황은 "현세적 권한은 영적 권한에 종속되어야 한다, 현세적 권한이 국왕들의 손에 있지만 교황의 묵인과 용인 속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모든 인간 제도는 로마 교황에게 종속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무슨 신앙 개조처럼 선포를 했습니다. 이렇게 교황권과 황제권이 충돌하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해서 단테는 이 책을 썼던 겁니다. "신자는 본성 상 현세에서 정치에 힘입어서 누리는 자연적인 행복이 있고 또 사후에 누리는 행복이 있다. 두 가지가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양 편을 관장하는 정치가 있고 종교가 있다. 혹은 속권과 교권이 완전히 동등하다."고 해서 소위 종교 분리론을 사변적으로 확립했다고 이렇게 평가되는 책입니다.

-라틴어 자체도 그렇고, ‘제정론’도 굉장히 어려운 내용인데요. 특별히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이 책이 단테가 라틴어로 썼기 때문에, 중세 정치 철학을 공부하는 학도들을 생각해서 제가 번역을 해야 했고요, 둘째는 제 개인적인 사유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대사로 있던 저 2004년 11월 4일이 유럽에는 아주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유럽 연합 28개국 국가 원수들이 퀴리날레 궁에서 유럽 연합 헌법 초안에다 서명을 했거든요. 그날 그 화려한 행사가 교황청에게는 아주 씁슬한 날이었어요. 왜냐하면 유럽 헌법 초안이 만들어질 떄 교황은 "유럽이 그리스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문구가 헌법 서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유럽 정상들이 아주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즉, 그리스교가 인간 존엄성이라든지, 민주, 평등 이런 가치에 영감은 주었는데도, 교회는 거기에 실질적인 보탬을 안줬다는 식의 선언입니다. 이 정치가들이, "그래서 정치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는 그 유럽 크리스찬들의 선언 앞에서 교회가 극히 당황했습니다. 그걸 목격하고서 정말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다룬 저서들을 좀 찾아보고 공부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단테의 ‘제정론’이 유럽 사회를 세속화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 건가요?

▶아까 말씀드린, 중세 내내 교황과 황제가 서로 패권 다툼을 했고, 우리가 잘 아는 카노사의 굴욕같은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럴 경우에 아까 말한 그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가 "모든 권력은 교황에게 있고 정치권력은 교황이 위임한다."고 하게 되면, 정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오를 교회가 뒤집어쓰게 됩니다. 더군다나 성경 구절을 넣어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 이런 구절을 마치 사람들이 무슨 권력의 갈라먹기 식으로 이해한다면, 그 신앙인들 머리 속에 성과 속이 완전히 이원화 돼버리고, 신앙을 가진 정치인들도 신앙 따로, 정치 따로, 이런 행태를 보이게 되죠. 그걸 유럽의 지성인들이 두려워하고 있죠. 2009년 우리 한국 사회도 지금 정계를 잡고 있는 국회의원들, 언론 법조인들 크리스찬이 절반 이상입니다. 그런데도 민주, 통일, 민족 이런 문제에서 거리를 차츰 간격을 넓혀가기 때문에 신앙을 안 가진 사람들은 저렇게 독실하고 청렴한 크리스찬들이 저렇게 비도덕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그런 의혹을 가질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유럽에서 단테의 저서가 신앙을 가진 사람의, 정치와 종교 영역을 구분해서 그 양편에 한 영감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는, 그런 사상을 주입했기 때문에 크게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단테 외에도 교부철학 최고의 사상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원전 번역 작업에 몰입하고 계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현재 어떤 책을 번역하고 있습니까?

▶요즘 제가 번역하고 있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초기에 집필한 대화편들이 있습니다. 철학하던 지성인이 이제 그리스교에 입교 하죠. 그래서 자기가 감행하는 정신적인 이 전향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이론화하는 저서들이거든요. 그래서 회의론을 극복하는 뭐가 있고. 또 하필이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을 그 내면의 스승이나 진리의 계시자로 간주하고 그 분에게 귀의할 때에 이걸 또 설명하는 뭐 교사론 등 해서 한 여덟 편의 저작이 있어서 그것을 지금 마쳐가는 중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삼위일체론>에 이어 <대화록> 번역까지..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일 텐데요. 왜 이렇게 라틴어 원전 번역에 매진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은 우리나라도 전 학문 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어 있고 원서와 사상에 접하는, 그리고 학계에 소개하는 풍조가 아주 넓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라틴어를 전공하는 학자가 워낙 소수이다 보니까, 우리 성경에 거의 맞먹는 게 하나가 성전, 곧 거룩한 전승 아닙니까? 그 교부들이 가르침은 이 성전의 아주 중요한 일부를 이릅니다. 그런데 제가 모처럼 라틴 문학을 전공한 처지라서 이제 나머지 여생의 본분이려니 여기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번역하려고 거기에다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라틴어가 최고로 완벽한 언어다...이런 말이 있습니다. 번역을 하시면서 그런 점은 느끼시는지..그렇다면 왜 그런지 말씀해 주십시오.

▶유럽에서 지금도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5년 내내 라틴어 공부를 합니다. 우리 한자처럼 자기네 문화를 이해하는 바탕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고, "그 언어의 구조와 특성이 워낙 논리적이어서 마치 수학이 젊은이들에게 합리적 사고를 훈련시키듯이 라틴어도 그렇다." 이렇게 학자들이 이야기하더라고요. 사실 그런데 라틴어는 서양 사람들에게도 어려운 말입니다. 제가 번역을 해보면, 즉 라틴어에서 번역을 해보면, 현대어에서 번역하는 것에 비해서 거의 두 배의 시간과 노력을 요합니다.

-지난 2007년 이임 인사차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을 만났을 때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돼 한반도에 평화분위기가 정착되길 기대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한반도 분위기는 당시보다 훨씬 악화돼 있습니다. 최근 남북관계를 보시면서 아쉬운 점은 없습니까?

▶네. 그러니까 교황청이 시사하는 그 얘기는 호혜주의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호혜주의라는 것은 사실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복수법의 다른 이름이거든요. 지난 주일 우리 국내 모든 성당에서 주교님들 뜻에 따라서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미사가 올려졌지 않습니까? 또 모든 신자들은 주교님들이 정해 주신 대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했고요. "한 핏줄 한 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 잘못을 깨우쳐 주소서." 이런 식의 기도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2008년도에 전에 이미 예산으로 책정되어 있던 대북 식량 원조가 폐기되었다거나, 또 요즘처럼 오로지 각을 세우고 북한을 쪼는 그런 외교정책은 적어도 교황청에 상당한 실망으로 받아들여졌으리라고 봅니다. 그 지난 10년, 15년의 정책과 많이 다르니까요. 적어도 제가 대사로 있을 적에 교황께서 격려하시던 그 한반도 정책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지난 주일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하면서 첫째 독서 신명기에 그런 말이 나왔어요. "하느님이 우리 민족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고 우리 민족의 선택을 요하신다."는 그런 말씀이셨거든요. 이게 자꾸 이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대통령께서도 조금 포용 정책으로 해서 북한의 어떤 여유를 주시리라 이렇게 믿습니다마는, 또 그렇게 희망을 갖게 되더라고요.

-책 번역하시면서, 우리 정치 사회 보시면서 어느 정도 소회를 갖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황청에서 대사하시고 유럽 사회를 보신 경험에 비춰 지금 우리 사회를 보시면 혹시 좀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부분들이 있으신가요?

▶예 전 지금 현 교황이 외교단하고 첫 상봉하는 자리에서 "나는 분단으로 많은 고생을 한 나라에서 왔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저도 그분과 개인 인사를 나눌 때에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온 대사입니다." 라고 인사를 드릴 수 있었어요. 사실 우리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데 지금 북한 핵 문제로 이렇게 우리가 경직되어 있는 상황은 전 세계에서 상당히 불안의 시선을 일으키리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이제 지난 10여년, 적어도 서민들 또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정책, 우리 교회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정책적으로 좀 실천 되다가, 지금은 그것이 거의 폐기된다는 느낌을 많은 분들이 받는 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대부분 크리스찬인 정치인들인데요. 국회의원 과반수가, 그 다음에 법조인들의 상당수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들의 우선적인 선택이라든가 민족 통일, 대화 화해 이런 기독교적인 개념에서 멀어져가는 듯한 느낌은 많은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그것이 나아가서는 신, 구교를 막론하고 종교 자체에 파급 효과를 부정적으로 미치지 않나 이렇게 우려가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