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추모글]                    (가톨릭신문 2009.3.1)

 

인권신장 민주화 운동에 열정 쏟아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

 

40만이 넘는 조문객과 평화방송에 버금가는 대중매체의 방영, 가톨릭신문을 연상시키는 일간신문의 보도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국민으로부터 받아온 존경과 신뢰를 웅변적으로 드러냈으며, 저희가 믿는 종교 신앙에 한결 자긍심을 돋아 주었습니다.

 

2005년 4월,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에 400만명의 청년들이 로마로 운집한 현상에 세계 언론이 놀랐습니다. 추기경님도 기억하시겠지만, 그 당시 사회학자들의 해석은 이러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두 도성’ 이론이 유럽인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데,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혼자 남은 슈퍼파워가 전 세계에 불의한 전쟁을 일삼자 유럽의 지성들은 바티칸 언덕으로 눈을 돌리면서 ‘하느님의 도성’의 표상을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네 위대한 목자 한 분의 용단 있는 예언자 직분이, 지난 40년간 군부독재에 맞서 키워온 진보세력의 인권신장과 민주화의 노력을 추기경님께 수렴시킬 만큼, 국민에게 크나큰 감동으로 기억되었다는 현실은 우리 국민이 지금 무엇을 찾아 어디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지 시사하는 듯합니다.

 

오로지 ‘경제성장’ 하나를 기치로 탄생한 정권에 기대던 국민의 꿈이 미국발 경제위기로 무참히 짓밟히고 주가폭락과 기업도산, 청년들의 취업난과 가장들의 대량실직,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로 이어지면서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는 주님 말씀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역설해 오신 추기경님의 음성이 되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추기경님이 사랑하시던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가 표명한 아쉬움에는 진중권씨가 나름대로 답변하였습니다. 소위 ‘5.18 광주사태’에 대한 기억이든 ‘사제단’에 대한 기억이든 남북대화나 보안법을 두고 안타까워했던 이들에게, 추기경님의 이상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우러난 인간 연민이었지 이데올로기는 아니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강론 시작 3분이면 모든 청중을 빨아들이던 추기경님의 음성에 담겼던 ‘사회교리’는, 안경 너머로 비치던 무구한 미소와, 또 언론들이 요새 지어낸 추기경님의 ‘바보 정신’과 더불어, 이 시점에 한국 가톨릭교회와 저희 평신도가 걸어갈 좌표라고 느껴집니다. 주님의 안전에서 저희와 이 겨레를 이끌어 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