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두레(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  2008.10.15(열린교회로 가는 길)]

 

북한 선교의 날이 오면

 

최근 10년 동안 필자를 감동시킨 최고의 장면 셋을 꼽는다면 2000년 6.15성명을 위해 남북정상이 포옹하던 장면, 작년 초 아들 내외가 로마에 와서 내 팔에 손자를 안겨주던 기쁨, 그리고 지난 9월 23일 드맑은 가을하늘 아래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와 장백산맥을 굽어보던 감격이었다. .

고려항공 전세기로 22일에 서울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여 장충성당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56명의 사제가 남한신자 40명, 북한신자 200여명과 더불어 미사를 올렸다. 이 날의 미사는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구세사적 사건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앞으로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 주교회의 민화위가 장충성당 공동체를 북한의 가톨릭공동체로 공인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장충성당 교우들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남한신자들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지천에 깔린 돌에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일으키시는 능력의 주님이시다. 성령은 정권의 종교자유허용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일하신다.

백두고원 초원의 따스한 햇살과 점심시간, 널따란 대동강이 가운데로 흐르는 평양, 6.25의 잿더미에서 일으켜진 계획도시, 묘향산 보현사의 풍경과 계곡의 도시락도 오래 기억에 남아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학생소년궁 아이들의 재롱잔치와 더불어.

닮은 꼴

독일 신학자 한스 큉은 마르크스가 등장한 19세기말 만일 가톨릭교회(개인의 변화를 도모한다.)가 마르크스주의 혹은 현실사회주의(사회구조의 개혁을 시도한다.)와 동맹을 맺었더라면 각각 개인과 사회를 도맡아 변혁함으로써 인류의 역사를 바꿔 놓았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그런데 당초부터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 이유로 한스 큉은 둘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 글을 읽어선지 이번 방문은 한 마디로 성지 순례였다. 가는 곳마다 거창하게 성역화 되어 있었다. 우리네 기도가 모두 성호경으로 시작하듯이 성지의 어여쁜 강사선생들의 신앙선포는 “위대하신 수령님과 공경하올 장군님”으로 시작했고, “통일된 조국을 위해 헌신해 달라.”는 그들의 격려사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를 연상시켰다. 그곳을 찾은 젊은이들과 군인들과 인민들의 표정은 우리 신자들이 성지를 방문하며 품는 경외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 일행이 강사들의 말보다 강사의 예쁜 얼굴과 사진촬영에 더 흥미를 보이고 자꾸만 손가락으로 ‘총질’을 하는 통에 안내원들의 표정은 자주 일그러졌다.

요한바오로 2세가 교황재위 26년 간 받은 예물이 하도 많아서(필자도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하면서 조각가 백용규 선생의 청동 작품 ‘예수좌상’을 선사하였다.) 고향 폴란드에 전시관을 만든다고 들었는데, 북한은 묘향산에 김일성 주석이 50여 년의 통치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받은 예물을 모아서 (인간에게는 영원한 것이 없으므로) 후손들을 위해 현대적이고 우아한 박물관을 마련하는 중이었다(루브르나 베르사이유를 생각해 보라). 한 마디로 인류의 역사와 구원이 그리스도 한 분에게 총괄(recapitulatio)된다는 우리네 믿음과 흡사하게 38선 이북에서는 60여년의 치적과 문화가 수령 한 사람에게 총괄되고 있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던 우리의 과대망상을 연상시키는 구호는 또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우리가 군부독재 40년간 체험했듯이 요란한 구호와 거대한 기념비들은 취약하면서도 억압적인 체제 때문에 미소를 잃어버린 민중의 팍팍한 삶을 가리고 있기 십상이다.

동유럽과 북한의 다른 사회주의

이미 스무 세기 동안 뿌리내린 그리스도교 토양에 현실사회주의를 정착시켜야 했던 동유럽의 경우 종교를 아예 젖혀놓고 이데올로기로 승부를 걸었다. 즉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어법으로 접근하였으므로 페레스트로이카로 논쟁이 종식되자마자 그리스도교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러나 북한사회에는 맹아기의 개신교가 고작이어서 그랬는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종교적 형태로 정착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들 고유의 ‘신앙’을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기도문처럼 매일 염송케 하며, 성지순례로 다시 강화하고, 거기에 두려움까지 곁들인다면, 그곳의 미래는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한 동구권의 붕괴 때와는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시민들의 굳은 얼굴과 그 곤핍한 시골풍경에도 불구하고 북한 동포가 기아에 가까운 내핍생활을 참고 견디는 바탕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통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우리가 목격한 ‘신앙심’에다 자존심을 더한 까닭이요. 식량이 그런대로 공평하게 배급되어 상대적 빈곤감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신앙심이 고통을 감수하게 만든다.”는 명제는 우리 순교선열이 본을 보였을 뿐더러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진리다.

선교와 문화순응

통일 3대원칙을 형상화한 탑에 그들은 쌍둥이 여성을 세워 6.15 선언에 나타난 ‘느슨한 연방제’를 표방하고 있었다. 북핵문제로 정부의 ‘햇볕정책’이나 ‘포용정책’이 한참 구석으로 몰리던 시점에 필자는 교황청 인사들과 타국 대사들에게 ‘샴쌍둥이’ 비유를 내세운 적 있다. 한반도는 예쁘고 건강한 미녀였는데 외세에 의해서 억지로 샴쌍둥이가 되고 말았노라고, 그것도 몸이 둘이고 머리만 붙은 쌍둥이가 아니고 몸통과 사지가 멀쩡한 사람인데 머리만 (미쏘의 칼질로) 둘로 쪼개진 모습이라고, 따라서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열강의 분리수술이 아니라 머리를 하나로 꿰매는 봉합수술이라고 설득하였다. 6.15 선언에서 남한이 제안한 ‘연합제’에 알맞은 설명이겠다.

연방제든 연합제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북한에 선교사가 파견되는 은혜로운 날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방북 중 그 점을 곰곰이 헤아렸다. 그리스도교 역사는 문화순응의 활달한 작업으로 점철된다. 그리스철학으로 신앙의 교리를 이론화했고 로마의 법과 행정으로 교구와 법제를 갖추었다. 중세 봉건제는 교구장의 권한을 정착시켰다. 지중해의 영웅숭배와 황제숭배는 교회의 성인공경으로 굳어졌다. 동지가 지나고 해가 길어지면서 행해지던 아폴로 축제는 그리스도의 성탄으로 대체되었다.

15세기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의 선동으로 오만한 교황청이 중국의 조상제사를 문제 삼은 것은 동양선교를 망친 대실수였고 조선에는 어처구니없는 박해를 불러왔다. 그 여파로 오늘까지 아시아는 그리스도교 신자율 3%라는 빈곤을 초래하였다. 북한 정권이 무신론에 근본을 두어서였는지 몰라도 필자가 목격한 북녘동포들의 예배는 ‘공경지례(恭敬之禮)’나 ‘상경지례(上敬之禮)’와 흡사했지만 ‘흠숭지례(欽崇之禮)’까지는 가지 않은 듯했다. 만일 저들이 그리스도교 교리를 수령숭배에 차용하였다면 먼 훗날 교회는 그 위에 다시 세례를 주면 그것으로 족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교의 그날까지 수령과 그 후계자들이 북한 인민에게 끼친 민족사적 공적과 위업을 인정하면서 그 위에 그리스도의 초월적 총괄적 위치가 소개되고 정립된다면 자연스러운 문화순응이 초래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번 방문을 주선한 사제단의 선교학 연구가 긴요하다. 다른 성직자들은 북한이 저절로 붕괴되기만 기다리고 그 붕괴가 오면 자기들이 점령군이 되어 ‘그리스도의 적들’을 분쇄하러 쳐들어갈 선교전략(“칼이냐 성경이냐?”)을 세우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구권이 무너졌어도 폴란드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가톨릭교회는 발도 내딛지 못하게 만든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의 정책도 염두에 두어야 할 텐데….

하염없는 사랑이라야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 찬가 첫 구절이 생생히 와 닿는다. 그 까닭은 북한 정권과 인민을 한겨레의 애잔한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못 배운 성직자들이 선교사랍시고 점령군처럼 쳐들어가는 날이 오히려 두렵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못된 짓을 하거나 어리광을 부리면 어머니는 나한테 “썩을 놈!”이라는 욕을 곧잘 하셨다. 전라도에서만 듣는 이 욕설에는 적잖은 실망, 짠한 동정, 그래도 핏줄을 보듬어 안는 애정이 한데 녹아있다. 방북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그 씩씩한 ‘빵기엄마’가 몸살감기로 사흘을 앓아누웠다. 백두산 찬바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리한 여정 때문이었을까? 그보다는 자기네 인민에게도 찾아온 손님들에게도 웃음의 여유를 전혀 선사 못하는 저들의 각박함 때문에 생긴 마음의 감기가 아닐지 모르겠다. 문정현, 함세웅 신부님을 위시한 사제단을 예우하고 신뢰하기보다는 자기네 성지를 모조리 참관시키려는 조급함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썩을 놈들’이라는 원망 반 애정 반의 한 마디가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