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우익’

 

                                                                                     [서강학보 1996.10.2]

 

나의 부친은 일제하부터 기독교 청년회 간부를 역임하셨으므로 인공치하에서는 수배된 인사에 들어 있었는데 기어이 빨치산의 손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으셨다. 청년 하나가 일본도를 들고 형을 집행하러 끌고 나갔다. 어둔 밤이었다. 무릎을 꿇린 채 목에 칼을 기다리던 부친은 청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고 목숨을 건져 지금 구순을 바라보고 계시다. “어서 달아나십시오. 저는 중학교 다닐 적에 선생님 수업을 받았습니다.”

 

지난 35년 한국사에서 군사정권과 기득권 사회의 가장 두려운 비판 세력으로 활동해 온 학생운동권을 상대로 김영삼 대통령이 ‘연세대첩’을 거둔 뒤 대학마다 한총련 가담학생에 대한 징계의 회오리가 부는 듯했다. 연세대에서 체포되고 검찰에 기소된 5천명 학생들은 물론 운동권 학생이라면 모조리 대학에서 추방하는 살풍경이 벌어지는 듯했다. 대학마다 경찰로부터 명단을 통보받았을 법하고, 정부는 과거의 군사정권이 하던 짓 그래도 스승들의 손을 빌려 제자들의 목을 베는 희극을 즐기고 싶었으리라. 그럴 때마다 신명나게 칼춤을 추는 휘강이들은 어느 대학에든 존재해 왔으니까.

 

사법적 판단을 받을 때까지는 혐의자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형사법상의 원칙도 안중에 없었던가 보다. 검찰에 기소된 학생들이 징계위에서 자기변호를 하는 여지는 허락되지 않던 것이 관례였으니까. 필자가 길지 않은 교수생활에서 경함한 바로는, 학생들이 등장하는 ‘시국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긴급 소집되는 교수회의는 스승들이 제자들의 교육을 논의하는 마당이라기보다는 우익인사들이 좌익을 성토하는 분위기 같아서 씁쓸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극우정권과 극우언론의 바람몰이는 다행스럽게 서울대학교에서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였다. 사직당국의 조처를 우선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 사법처리에다가 학사징계는 이중처벌이라는 법이론, 그리고 대학사회마저 정권의 이데올로기 선풍에 말려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교육론이 일단 교수들의 지성을 일깨웠다. “한총련 학생들은 단순한 좌익이 아니라 도시 게릴라”라면서 중형을 외치던 기독교 장로 대통령보다는 아무리 극렬한 활동을 한 것처럼 비치더라도 “저들은 우리 국민이요.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이다”라던 이수성 국무총리의 얼굴이 국민에게도 더 인간다웠으리라.

 

부총장이 몸소 학생들 대자보 철거에 나서던 연세대에서는 학생회장단 3명을 제적하는 결단을 보였지만 그런 처사가 다른 대학에 어떻게 확산될런지는 지켜볼 일이다. 학생들은 과거에도 학교로 돌아왔고 앞으로도 돌아올텐데 말이다. 군정 30년간 학생운동에 ‘좌익용공’이나 ‘친북’이라는 딱지가 안 붙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는데 말이다. 대학교와 그 교수들이 역사에서 무엇하나 배우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 ….

 

피어나는 꽃을 보고

그대는 꽃이 진다 하고

나는 꽃이 핀다 하네 - 시인 홍해리

 

일찍이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이 진리를 알게 해준다"(CHARITAS NOVIT VERITATEM)는 명언을 남겼다. 스승이 제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들의 고뇌와 투신을 이해할 것이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이라던가 급진성 때문에 비록 동조를 못하더라도 청년다운 나라사랑과 민족애를 인정하기에 이를 것이다. 제자들이 품게 되는 정치적 이념을 초월하여 스승으로서 충고하고 훈계하면서 그들의 번뇌와 슬픔, 희망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에 이를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시 스승들더러 제자들을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 하고 싶은 대로 하라!”(AMA! ET QUOD VIS, FAC!)라고 하였다.

(서강학보 1996.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