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아파트병풍' 막아야지요"

북한산 지키는 사람들 성염-차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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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명산 북한산이가쁜 숨을 내쉬고 있다. 산짐승은 인간을 피해 사라졌고 숲은 개발에 짓밟혀 줄어들고 있다.

고층 아파트가 경쟁적으로 들어서 북한산을 포위하고 있는가운데 이제는 그마나 산의 경관을 지켜주던 고도제한마저 풀릴 위기에 놓여있다.

북한산을 바라보며 살고싶다는 소망 하나로 25년째 북한산 자락에둥지를 틀고 있는 철학자와 북한산 생태계 보호를 위해 단식도 마다 않던 환경 운동가가 만났다.

 

● 성 염

1942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가톨릭대 신학과를 나와 로마가톨릭 살레시안대학에서 라틴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철학과교수로 재직중이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 우리사상연구소 소장으로 활동중이다. 북한산ㆍ도봉산 생명평화연대 상임 대표를맡고있다.

 

● 차준엽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인창고를 졸업하고 84년 북한산 종합개발계획 저지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북한산 환경운동가로변신했다.

아시아 자연보전연맹 한국대표를 지냈고 90년부터 환경단체인 자연의 친구들 대표로 활동중이다. 97년에는 유엔 환경상을 수상했다.

 

- 한국일보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만, 최근 문제가 된 우이동길 층고 제한 해제 움직임은 어떤 것입니까.

▲ 성 염 = 우이동 길, 도봉로, 쌍문동길 등 주변이 4층 이하 건물만 지을 수 있는 4종 미관지구였는데 최근 높이 제한이 없는 일반미관지구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이들 도로 주변은 북한산과 도봉산을 한 눈에볼 수 있는 곳인데요, 규제개혁 완화를 명분으로 산 앞에 아파트 병풍을 치겠다는 겁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도봉구 등 관할 자치구와 서울시, 서울시의회 등으로 뛰어가 일단 시의회 심의에 상정되는 것은 보류시켰습니다.

기자들에게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지요. 하지만 폐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죠.

▲ 차준엽 = 북한산이 좋아 일부러 이 곳으로 찾아온 사람이 한둘 아닌데 왜 있는 건축 규제마저 풀어버리려는 지 이해할 수 없어요. 쓰레기야 치우면 되지만,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 성 염 = 그럼요. 우이동길 말고도 은평구, 종로구, 성북구 등 북한산을 에워싸고 있는 동네에 고층 아파트가 이미 빼곡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우이동길 부근의 고도 제한을 풀겠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 하지만 주민들은 층고 제한이 사라지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환영하지 않을까요.

▲ 성 염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전에도 우이동 부근 고층아파트 건축 반대 운동을 했었는데 그 때 제게 협박한 사람도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지지해준 주민들도 많았습니다.

이번 미관지구 건도 마찬가지에요. 주민들 중 일반미관지구로 전환하는 것을 반대하고 저를 격려해 주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 차준엽 = 내년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구청장들이 표를 의식, 건축제한을 막 풀어주지나 않을 지 걱정입니다.

▲ 성 염 = 김수환추기경이 가끔 제가 다니는 수유동 성당에 오시면 “이곳은 왜 이렇게 신도들이 바뀌지 않습니까”하고 물어봅니다. 이곳이 좋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30~40년 산 사람이 한 둘 아닙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북한산 보는 재미에 산다”고 말합니다. 문화인도 많아요.

이생진, 임 보, 박희진 시인도 이곳에서 삽니다. 제주 성산포를노래한 이생진 시인은 강남으로 이사갔다가 북한산을 못 잊어 다시 옮겨오기도 했습니다.

 

- 두 분이 층고 제한 완화 반대 운동에 뛰어든 것은 그만큼 북한산과의 인연이 깊기 때문 아닙니까.

▲ 차준엽 =저는 어렸을 때 북한산 자락인 자하문 밖에 살았어요. 지금은 고급 주택이 즐비하지만 그때는 완전히 시골이었습니다.

과수원에서 앵두, 능금을 따먹었지요. 계곡으로 그런 과일들이 떠내려 오면 그냥 줍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84년 초가을 북한산에 케이블카와 궤도열차를 놓고 골프장을 짓겠다는 개발계획이 발표됐어요.

북한산 기슭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그냥 두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 혼자서 공청회도 뛰어가고 언론사도 찾아 부당함을 알렸어요.

홍익대에서 열린 대학 산악반 모임에 찾아가 “당신들 친구인 북한산이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가만히들 있을거냐”고 호소하기도 했지요.

홍익대 가기 위해 택시 탄 일도 잊기 어렵습니다. 제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는데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산악반 학생들에게 북한산 살리기 운동을 호소하려 가는데 돈이 없다”고 했더니 공짜로 태워주었어요.

참 고마웠습니다. 중앙대 앞에서 복사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뛰어다니느라 수염도 못 깎았습니다. 제게 ‘북한산 털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그 무렵부터입니다. 결국 그 계획은 백지화됐지요.

▲ 성 염 = 차선생님은 91년 봄 방학동에서 800년된 은행나무가 고층 아파트에 에워 싸이게 되자 그를 막기위해 15일 동안 텐트에서 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차선생님을 찾아갔었지요.

▲ 차준엽 = 그렇네요. 그때 성선생님이 제게 큰 격려를 해주었지요.

▲ 성 염 = 25년째 쌍문동에서 살고 있는데요, 정말 잊을 수 없는 인연이 있습니다. 원래 저는 가톨릭 사제가 되려고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북한산 우이동 자락에서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등 종교 대학의 학생 대표들이 만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거기서 한신대 대표로 온 지금의 제 처를 만났습니다. 72년 봄이지요. 북한산이 아니었으면 저는 결혼을 못했을 지 모르지요. 그때 만난 제 처가 이번에 미관지구 해제에 반대하는서명운동에 앞장섰습니다.

 

_ 지금의 북한산과 옛날의 북한산을 비교해주시겠습니까.

▲ 성 염 =옛날에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 대지극장에만 닿아도 공기가 달랐어요. 지금은 산과 훨씬 가까운 4ㆍ19 묘지까지 와야 겨우 좋은 공기를 맛볼 수 있지요.

북한산은 계절에 따라 연록색, 진초록으로 변하는데 색이 퇴색했어요. 뻐꾸기 소리도 골짜기마다 들렸는데 요즘은 가끔씩 들려요.

임 보, 이생진 같은 우이동 시인들은 봄마다 산에서 ‘진달래 축제’를 여는데 지금은 진달래가 줄어들어 적당한 장소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시인들은 “ 꽃이 사라지고 새도 울지 않는다”고 탄식할 뿐이지요.

▲ 차준엽= 초등학교 다닐 땐데 호랑이가 잡혔다고 동네 사람들이 웅성웅성 했습니다. 거적에 덮여있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어쨌든 그때는 호랑이 이야기를 믿을 정도였지요.

지금이라면 아무리 아이들이라도 북한산에서 호랑이 잡았다면 믿겠습니까. 몇 년전까지만 해도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에 이끼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가 않아요.

산성비와 대기 오염때문이지요. 7~8년 전만해도 소귀천 계곡에 물뱀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흔적도 없습니다. 계곡의 수량도 크게 줄었지요.

 

-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차준엽 = 서울시나 관할 자치구들은 북한산을 서울시의 대표적 명소로 인정하고 그 명소를 살리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든 자연을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를 짓누를 수 없습니다. “내 땅에 내 집 짓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인식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한 거죠.

▲ 성 염 = 북한산국립공원 바깥의 일정 면적을 완충지역으로 묶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도제한이나 건축 제한을 두어야 하지요.

동양화에서도 여백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북한산국립공원이 동양화 속의 그림이라면 완충지역은 여백이 되는거죠. 그런 여백을 살려줘야 북한산이 시민 전체의 것이 되는 거에요.

▲ 차준엽= 차량 통행도 막았으면 합니다. 우이동만 해도 도선사까지 차가 다니는데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배기가스가 많이 나옵니다. 승용차나 택시 등도 입구까지만 들어오게 하고 나머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도록 해야지요.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정리=이왕구 기자 fab4@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