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열린 세상” (2003.7.31)

 

“평화는 정의의 열매”

한반도에 건네는 교황의 충언

 

(성염: 서강대교수/ 주교황청 한국대사)

 

상아탑에 갇혀 살던 필자에게 난데없이 대사(大使)라는 새로운 소임이 주어져 교황청에 파견 받았다. 현지에 부임하여 7월 4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장을 제정하였는데 필자의 제정사(提呈辭)에 대한 교황의 답변서(둘은 라틴어로 문서를 주고 받았다)에는 한반도 주변에 일고 있는 국제정치의 풍랑을 지켜보는 종교지도자의 혜안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1984년에 한반도를 찾아온 교황은 “단일 민족이 사는 반도가 강제로 쓰라린 분할을 겪고 있음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눈여겨보게 되었다”면서 그나마 다행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대화를 통해서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간에 대면하려는 공고한 의지”를 보이는데 희망의 실마리를 본다고 하였다. 휴전선을 사이에 둔 분쟁은 “동등한 군사력을 과시하는 데서가 아니라 오로지 상호신뢰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원칙하에 교황은 남북한의 “인내롭고 과감하고 항구하며 사려깊게 지속되는 대화”만 이 겨레에게 항속적 안정을 가져다 주고 “그것은 단지 두 나라의 화합만이 아니라 한반도가 위치한 주변지역 전체의 공고한 안정을 가져다 주리라”고 평가하였다.

 

창경궁만한 넓이의 초미니 국가이지만 전세계 12억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모체인 교황청은 그 일간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7월 한달에만도 이틀이 멀다하고 한반도의 정치상황을 외신으로 전하고 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및 중동, 곧 지중해 연안을 떠나서는 좀처럼 외신(미국 소식은 예외)을 싣지 않는 이탈리아 일간지들과 사뭇 다른 태도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필자에게 북핵문제를 언급하면서 “대량살상무기 특히 핵무기가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한다”는 세 마디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였다.

 

서기 5세기에 로마 제국이 붕괴되던 시대를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평화(平和)는 정의(正義)의 열매”라고 설파하였다. 개인간에도 사회에도 국가간에도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 표면적 평화는 패자의 죽음과 한시적 침묵을 의미할 따름이라는 말이다. 지금 유럽의 지성인들은 아프간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아니 아랍 세계 전체에서 들려오는 이 “침묵의 외침”에 괴로워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현자들이 정의를 “각자에게 자기 몫을 돌려 줌”이라고 단언했음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정치가나 외교관의 귀라면 북핵문제에 관한 교황의 발언에서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점진적으로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한다”는 구절 사이에 끼어 있는 “평등하게”라는 단어를 놓치기 쉽다. 세계의 현안문제에 중립적인 공평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교황은 한편은 강대국의 핵우산 밑에 앉아 있고 한편은 같은 강대국의 반세기 넘는 경제봉쇄에 온 국민이 아사지경인 처지를 지적하여 이 단어를 쓴 듯하다.

 

비록 그 정신적 지도력과 특사파견으로도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막지는 못했지만 20세기의 언론으로부터 “평화의 사도”로 칭송받는 교황의 발언은 누구보다도 남한 인구 30퍼센트에 이르는 크리스챤, 특히 인구 9퍼센트에 도달한 가톨릭 신자들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성프란치스코의 기도대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심겠다는 종교인들에게 교황은 “지나간 시대의 고통이 보다 나은 시대를 내다보는 자신감을 감소시켜서는 안 된다. 인간에 대한 존중, 정의와 평화의 항구한 추구라는 굳건한 바탕에서 한국의 현시대와 미래를 정위시키라”고 호소한다.

 

물론 교황은 정치인으로서 아니고 종교인으로서 발언하고 있으며, 인류와 민족의 역사는 인간과 하느님의 두 의지가 밀고 당기면서 수행해나간다는 신학을 갖추고 있다. 인류사의 지평선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83세의 노인은 한반도의 운명이 미국의 핵우산과 남한의 군사력에만 달려 있지 않고, 한겨레가 국제정의를 구현하고 북한의 빈곤과 기아문제를 해결하는데 남한의 잉여가치를 내놓겠다는 도덕심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는 가르침을 건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네가 믿는 하느님을 “역사(歷史)의 주님”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