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2007.12. 30-35면]  [경향초대석]

 

교회라는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바티칸에 파견되었다가 지난 9월에 귀국한 성염 요한 보스코 대사(66세). 퇴임은 했지만 아직은 ‘대사’라고 부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이를 신학도로서 번역가로서 전직 대사로만 소개하기에는 너무 아쉽습니다. 경향잡지 홈페이지에서 2002년 1월부터 9월호까지 ‘야곱의 사다리’를 검색하시면 성 대사가 직접 쓴 맛깔스런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신부님 수녀님들도 우리 주교회의가 나를 파견했거나 교황청에서 뽑아서 데려간 줄로 알아요. 바깥에서도 ‘대사님 월급이 교황청에서 나옵니까, 한국 천주교회에서 나옵니까?’ 하고 묻는 분들도 있고요.” 성 대사가 웃으며 한 말대로 교황청의 외교관계를 잘 모르는 이가 많을 듯해 경향 초대석에 모셨습니다. 요즘 유행가처럼 “텔미, 텔미, 테테테테테텔미” 하고 곳곳에서 요청하여 거듭한 이야기가 많을 텐데도 묻는 말마다 성심껏 답변해 주었습니다.

 

진보신학자가 교황청 대사로

교황청은 전 세계 180여 개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고, 80여 개 나라가 주교황청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3년 교황청과 공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1974년부터는 로마에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여 초대 대사로 신현준 씨가 부임하였습니다. 10대 성염 대사 후임으로는 김지영 프란치스코 대사가 부임하였습니다. 
근황을 묻고 이어 우리 사회의 현안인 대선 정국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가톨릭교회는 진중한데, 조용한 모습이 신뢰를 주지만 정말 필요할 때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도 신뢰를 준다.”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표현한 대로 선거를 ‘정치적 사랑’(caritas politca)을 발휘하는 기회로 삼자는 주교님들의 권유가 곧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4년 전 그이의 교황청 대사 임명 소식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1977년 「해방신학」을 번역하여 소개하고, 우리신학연구소 초대 소장과 이사장을 지내는 등 ‘진보신학자’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직업 외교관이 아닌 그이는 대통령이 임명한 특무대사로서 교황청에 한국민들의 요청을 전달하고 남북화해와 일치에 도움이 되어달라는 교회 안팎의 기대를 안고 떠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대북 문제가 나올 때마다 그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방해나 제어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교황청에도 은연중에 그런 경향이 있어 우리가 대북 정책을 포용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드렸지요. 햇볕정책, 포용정책이 복음적인 것이니까 받아들이셨겠지만, 북한의 핵실험 때도 교황님은 대화로 푸는 방법을 강조하시고, 일본대사에게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끊어서는 안 된다고 해주셨어요.”
교황님이 한반도 문제와 한국 국민에게 해주신 말씀이 여덟 번 이상이나 되었고, 발언을 청하면 언제나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올해 11월 교황님의 기도 지향에도 “한반도에서 화해와 평화의 정신이 증대되도록 기도합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것과 한국교회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겠지만, 신학교 출신에다 로마에서 공부를 했기에 신임장 제정 때도 교황님과 라틴어로 대화할 정도로 언어 장애가 없어 더 친밀감을 갖게 된 것도 도움이 된 듯하다며 성 대사는 웃습니다.

 

교황님은 참 따뜻한 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서거와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출을 지켜본 그이에게 현 교황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물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따뜻하신 분이에요. 교의적인 입장에서는 22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을 하셔서 그렇겠지만, 교황선거인 콘클라베에 들어가시기 전에 한 미사 강론에서도 진리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상대주의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셨어요. 이런 점에서 본다면 보수적으로 느낄 수가 있지요.”
그분이 교황이 되면 타종교보다는 그리스도교간의 일치에 초점을 둘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첫 행정조처로 종교간대화평의회를 문화평의회에 귀속시켜 버리자 주변에서 걱정스러워했다고 성 대사는 전합니다. 그러나 레겐스부르그 대학에서 한 강연 파문 이후 종교간대화평의회를 부활시키고 이슬람의 지도자들을 만나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이혼이나 동성애, 낙태 문제 같은 것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가져온 고유한 기본 입장을 현 교황님이 다시 천명한 것일 뿐 새롭거나 보수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고, 라틴전례 부활 문제도 그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 폭넓게 허락해 준 것이라며 성 대사는 유럽의 상황을 들려줍니다.
“유럽에서 미사를 하면 대개 오륙십대 사람들만 와요. 그분들은 라틴 미사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라틴어를 배우니까 알아듣는 이들이 많고요. 이전에는 라틴어 미사를 하려면 교구장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지금은 그게 아니에요. 신자들이 원하기만 하면 미사를 드릴 수 있다고 폭넓게 허락해 준 거지요.” 
“계시의 완전한 형태가 가톨릭교회 안에 있다.”고 한 교황님 말씀도, 여러 번 질의 형태로 교황청에 올라왔던 문제를 오랫동안 미루다가 새 교황님이 답변서에 서명을 한 것인데 마치 새로운 것처럼 본다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비하면 지금 교황님이 좀 차갑게 보이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만난 분들은 현 교황님이 얼마나 따뜻한 분인지를 압니다.”

 

하느님의 도성과 가톨릭교회

교회 안팎으로 권위가 무너지고 있는 마당에 교황님이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굳이 젊은이들만 아니더라도 일반 알현객들이 배로 늘었다는 것은 로마 관광이 활발해졌다는 것만 가지고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교부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풀이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신국론」에서 하느님의 도성과 지상의 도성을 비교합니다. 이런 구조가 오랫동안 쓰였지요. 박해시대에는 박해자와 교회, 이단시대에는 이단자와 정통교회, 이교도와 가톨릭교회, 냉전시대에는 공산세계와 민주세계를 대립해서 보는 구조가 있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그런 구도가 성립이 안 되고 미국이라는 헤게모니만 남았거든요. 유럽의 지성들과 젊은이들은 혼자 남은 패권국가가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날카롭게 보면서, 거기에 대응할 하느님의 도성으로 가톨릭교회와 교황님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그래서 교황님이 세계 문제, 인류도덕 문제를 발표할 때 그것을 들으려 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전 인류에게 권위 있게 끝까지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이 교황님이라고 성 대사는 말합니다. 바티칸 방송국이 일반 알현 온 이들을 위해 한국의 지상파 DMB 기술을 채택한 것도 젊은이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 아니겠냐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지적합니다.

 

교회의 사회적 책임

일반인들이 가톨릭교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절감하며,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한국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교회에 갖는 기대는 크지요. 종교를 갖게 되면 가톨릭을 갖겠다는 사람도 많고요. 우리 사회 민주화를 위해 가톨릭교회가 해온 역할을 인정하기에 그렇다고 봅니다. 삼성비리를 알린 김용철 변호사도 여러 곳을 찾아다녔는데 다 막혀있었고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이 가톨릭의 사제단이었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마지막 기댈 곳이 이곳이라는 것은 상당히 뜻 깊게 들렸습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신앙인들이 실질적으로 하는 역할이 중요하다며 성 대사는 복음의 힘을 믿는 사목자들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복음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분열보다는 화해가 더 복음적이라는 것,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등이 신부님의 주일 강론, 주교님들의 가르침에서 끊임없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신앙인들이 정치적인 애덕과 자기 신앙생활을 잘 조화시키면서 행동할 수 있지요. 개인 신심에만 치중하면 신앙 차원 다르고 사회적인 책임 다르다는 생각에 사회적인 영역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식으로 되어버릴 뿐 아니라, 사제가 성사 주는 일 외에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사목 영역도 줄어듭니다.”
성 대사는 교회의 사회교리 안에 들어있는 풍부한 가르침을 이야기하며, 해방신학을 단죄하다시피 하고 난 뒤 개신교의 성령운동이 들어온 라틴아메리카 상황을 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톨릭교회가 신뢰를 받고 있는 것도 지난 몇 십 년 동안 사회적인 책임감을 보여왔기 때문인데, 남북이 하나 되어 한반도가 동북아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 교회가 역기능을 하면 곤란하지 않겠냐고 거듭 강조합니다.
교부들도 현세의 문제를 두고 무척 고심을 했는데, 교부들처럼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자연스레 눈이 넓어진다며 다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저작을 보기로 듭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느 시대에도 읽을 수 있는 분입니다. 사사로운 사랑을 하는 사람은 지상의 도성에서 살고, 사랑의 폭을 넓히는 사람은 하느님의 도성에서 산다고 한 말씀은 누구한테나 해당합니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떼라는 말씀은 깜짝 놀랄 만한 현대적인 말씀이지요.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말씀도 설득력 있는 말씀이고요. 「고백록」은 최민순 신부님이 완역했고, 제가 「신국론」에 이어 「삼위일체론」을 번역했는데 곧 나올 겁니다. 아우구스티노의 3부작이 완성된 거지요.”

 

모든 것이 은총

함양에 있는 시골집에 내려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초기 철학적인 대화, 논쟁 부분을 번역할까 한다는 성 대사에게 여담 삼아 몇 가지 더 물었습니다.
“큰아들은 스위스에서 국제정치학으로 학위를 받았는데, 지난해 성탄 전야에 손자가 태어나 흡족합니다. 살레시오 수도회에 들어간 작은아들은 사제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향잡지에도 썼던 제 개인적인 이야기는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묶어주신 「님의 이름을 불러두고」에 다 들어있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총이지요. 그간 받은 사랑과 기대에 보답해야 할 텐데….” 하며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교황청 대사로 갈 때 천주교 여성 단체에서 “준비된 대사 부인과 준비 안 된 대사가 바티칸에 간다.”고 표현했다며 한바탕 웃고는 개신교 여성신학자인 아내 덕에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송년의 소회를 묻자 “시간처럼 귀한 은총은 없다.”고 한 성 대사는 교회라는 어머니의 치마폭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며, 경향잡지에 쓴 대로 교회에 대해 함부로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 안에서 살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교회의 점잖은 인사들의 귀에 껄끄러운 소리를 곧잘 하는 나의 글투도 내가 교회라는 어머니 손에 막돼먹게 키워져서 생긴지도 모르겠고, 그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여 그 얼굴에 검댕이 묻거나 주름이 지는 모양을 도시 못 견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경향잡지 2002년 2월호 참조).

한 해를 마감하며 성 대사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다가 「어느 시골 본당신부의 일기」 주인공의 독백을 떠올립니다. “그게 무슨 대수인가? 모든 것이 은총인 걸!” D

 

글 배봉한 편집장 ipse@cbck.or.kr 사진 김은영 기자 rgb3@cbc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