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성역’을 지키고 싶다면

 

                                                                                 [생활성서 1995.8월호]

 

“경찰이 어때서요? 성전을 유린한 것은 신성한 성당을 정치집회장으로 만든 노조가 아니던가요?”

“모모한 고위층 인사의 말인데… 한통 노조의 임원들이 내게 자백한 얘긴데… 한통 노조 배후에는 불순세력이 있답디다!”

“성역이 어디 있어요? 법 앞에 평등이지… 모든 언론이 어떻게 몰아치나 보세요! 양식 있는 지성인들은 모조리 천주교를 욕한다구요. …”

“주교님들이 순진하게 노조와 일부 사제들에게 놀아나고 있지요. … 저건 가톨릭교회의 태도가 아닙니다 …”

 

혹자는 이 몇 마디를 읽으면서, 지난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명동성당 구내 공권력 투입을 평가하는 당정회의 석상에서 나온 발언들이려니 하리라. 천만의 말씀! 김옥균 주교를 위원장으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시국대책위원회’가 결성되고, 6월 13일과 20일에 3만 명의 신자와 7백 명의 성직자들이 명동에 운집하여 시국미사를 거행하고, 사제와 신도들이 농성에 들어가 있던 그 무렵, 서울의 지식인 신자들로 이루어진 어떤 단체의 회의석상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우리 단체가 이런 문제에까지 태도를 표명하려 들만큼 정치적 색깔이 심한 줄 알았더라면 난 가입하지 않았습니다!”라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교우도 있었단다. 그 신자 단체는 역사의 중대한 고비에서 결국 입을 다물었다. 하느님 앞의 표정 관리는 여간 힘든가 보다. 그토록 유식하고 그토록 선량한 교우들이지만 하느님께서 정치 플래카드를 들고 나타나시기만 하면 여지없이 속을 보이고 만다.

 

성서와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신자라면 ‘성역이 있다’라고 단언할 수는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는 비록 범법자들이라고 하더라도 복수나 공권력을 두려워하여 목숨을 구하여 달아날 도읍과 성전을 레위 지파 영토에 지정해두었다(출애 21, 12~14; 민수 35, 11~29; 신명 19, 1~13). 정치적 망명지라고 하더라도 계략을 써서 성역 밖으로 유인해서 죽였지 군대가 안으로 들어가는 짓은 삼갔다(2마카 4, 33). 국왕의 세금추징을 피해서 성전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1마카 10, 43).

 

비슷한 관습이 이집트와 그리스와 로마(Tacitus 3, 60; Strabo 16, 2, 6)에서 시행되어 왔다.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성당이 이러한 피신처의 역할을 해왔으며(교황 그레고리오 14세; 1591년 Cum atias 참조), 1982년에 개정되기 전의 교회법에도 이 권리가 명기되어 있었다(구 교회법 1160~1179).

 

그런데 이 권리는 결코 천주교가 대한민국 국법으로부터 자기의 권익을 지키려고 치외법권을 요구하는 이기적인 특전이 아니다. 오히려 복수적이고 편향적인 공권력으로부터 마지막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억울하고 힘없는 이들과 연대하는 애덕의 특권이었다.

 

사회의 약자와 억울한 이들과 맺는 이러한 연대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따라서 명동성당 침탈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에 대한 침해로 간주될 만한다. 이를 분개하지 못한다면 자기가 강자와 함께하는 까닭이리라. 그래서 “야훼께서는 당신께 몸을 숨기는 사람을 돌보아주시지만 당신께 맞서는 자는 없애버리신다” (나훔 1, 8)라는 말씀이 두렵다.

 

‘법 앞에 평등?’ 물론이다. 공법은 예외 없이 존중되고 준수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또한 실정법도 나름대로 존중해야 할 영역이 있다. ‘성역 없는 법’이라는 생각은 유신시대의 긴급조치에나 해당하고, 그런 법은 개정도 폐지도 비판도 불가능하다는 위험한 논리에 빠지고 만다. 더군다나 한국의 천주교는 천주교를 금하는 국법을 어기면서 한 세기 동안 박해를 견뎌내고 승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교회는 언제나 법 정의와 질서 있는 평화를 추구하지만, 양편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할 경우에,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서 교회는 약한 자를 편든다. 노조에 좌익이 있으니까 교회가 그들을 편들어서는 안된다고 우기고 싶을 때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인지 맘몬(한국 땅에서는 50년 내내 반공의 가면을 쓰고 있다)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인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천주교는 이번의 사태를 맞아서,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 이 땅의 모든 성역들이 무너지면서 어디서나 언제나 짓밟히고 고통받아온 이들의 운명과 함께 동참하고 이 민족의 역사에 육화되는 은총의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실 6․29 이후 한국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인정받아오던 성역을 명동성당이 스스로 무너뜨린 행태가 여러 번 있었다. 종교활동에 장애가 된다면서 일반 농성자들에게 그만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젊은 사제들이나 신도들이 단식농성을 할 적마다 교구 당국자들이 찾아와 철수를 요구한 적이 몇 번이던가!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명동으로 달려온 신도들이 어느 무리였는지 교계는 돌이켜보기 바란다. 시국미사에 단기를 들고 참석한 수만 명 ‘레지오 마리애군단’의 위용은 대단하였다. 그러나 교회와 교계를 위해 생명도 아끼지 않을 것 같던 저 평신도 지도자들은 다 어디로 갔던가!

 

또한 중산층화된 교회 탓인지 종현 언덕의 싸움은 사병 없는 장교들만의 전투처럼 안타까워보였다.

(생활성서 199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