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라는 신앙인의 걸림돌

- 안병영 교수의 "평화신문 특별기고문"에 붙여 -

 

                                                                                   [생활성서 1995.10]

 

 

지난 7월 23일자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평화신문>에 "김대중씨는 권력욕의 化身인가?"라는 제하에 연세대학교 안병영 교수의 특별기고문이 실렸다. 제목이야 천주교가 발행하는 언론지답지도 못하지만 지식인이 차마 그렇게 붙였을까 싶어 그냥 넘어가겠다.

 

다만 함세웅 사장 퇴진 이후 그 신문에는 김대중(토마스 모어)씨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었는데 차제에 그 침묵의 본뜻이 드러난 듯하다.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도 김대중씨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상당수일 텐데 어떤 한 정치인에게 저처럼 극단적 도덕적 단죄를 가하는 기사와 기고문이 얼마나 현명하고 복음적이었는지 앞으로 나올 평가가 우려된다.

 

어쩌면 김대중씨는 한국 천주교도들에게 정치적 양심을 가름하는 걸림돌이다. 정치적 입장을 핑계로 극단의 증오와 극단의 기대를 그에게 쏟으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할 것 없이 속마음을 못 숨기고 드러내고 마는 까닭이다. 무턱댄 사랑이야 어리석음으로 그치지만 까닭 없는 미움은 죄라는 점만이 다르다. 하느님이 간혹 정치를 이용하셔서 우리 본색을 밝히시는 듯하여 부끄럽다.

 

평화신문에 실린 교우 안병영 교수의 글은 지난 87년 6․29선언 이후 평민당이 만들어지고 우리 모두가 꿈꾸던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면서 정치개혁과 영호남을 합봉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던 그 낙담과 분노를 표현한 선의로 우선 해석하고 싶다.

 

먼저 안교수는 김대중씨를 ‘큰 그릇의 정치가’, ‘나라의 큰 어른’, ‘정치의 원로’, ‘철학과 경륜을 담은’ 분, ‘국민적 경외와 존경’을 받을 만한 분, 특히나 “척박한 한국 정치사에서 어렵사리 일구어 온 金大中이라는 기념비적 큰 인물”로 칭송하고 있다. 추측컨대 김대중씨가 일찍이 그 어느 열성 지지자에게서도 이러한 송덕문을 들어보지 못했으리라.

 

13대 대선 직전에 감행한 그의 평민당 창당과 입후보를 안교수가 목격하였고 후보 단일화를 그토록 적극 주장하여 실패하고도, 안교수 본인의 말대로 “그의 정치적 인격, 특히 정치적 신뢰성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못미더워했다.”면서도, 그의 정계은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고 간파하고 있었으면서도 우리나라 대표적인 정치평론가 안병영 교수만 “김대중 신화와 전설”에서 깨어나지 못했노라는 고백 같아서 의아스러웠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치평론가 안 교수가 건국 이래 한 정치가에게 바친 최고의 찬사가 비아냥이 아니라고 믿고 싶은 필자로서는, “어떻든 그 사람은 안 돼!”라는 단정은 미숙하게도 보이려니와 게다가 우리가 함께 섬기는 주님의 가르침과도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서 감히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안 교수는 김대중씨를 가리켜 “민주화를 위한 불퇴전의 용기를 가진 정치가이며 정치에 대한 투철한 비전과 함께 세계사의 흐름을 꿰뚫는 조예와 식견이 있는 큰 그릇의 정치가”라고 칭송하였다. 그러나 안 교수는 김대중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내가 대통령이 되어 그러한 경륜을 펴보겠소.”와 같은 의미의 정계 복귀선언을 하자마자, “국민의 가슴에 치유하기 어려운 깊은 상처를 남겼고, …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실낱 같은 믿음이 완전히 허물어졌다.”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안 교수는 그 선언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 인물의 정견을 “찌들은 보수주의의 고인 물”로 전락시킨다. 그처럼 도덕적으로 탁월하여 안 교수가 ‘큰 어른’으로 받드는 인물의 정치적 결단이 그처럼 경멸되는 저변은 무엇인가.

 

안 교수는 온갖 수식어를 구사하여 지고한 도덕군자로 교우 김 토마스씨를 시성(諡聖)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김대중씨가 정치만 안하면, 대권만 탐하지 않으면, 대통령만 되지 않으면 그 모든 칭송을 그에게 바치겠다는 조건부 선물 같아 씁쓸하다.

 

지난 30년간 언론과 지식인들이 김영삼씨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정치적 잣대로 관대하게 평가해왔다. “그는 죽어도 후보를 양보 안 할 사람이니 김대중씨가 양보하라!” “오죽 했으면 3당 야합까지 했을까?” “개혁이라지만 한술 밥에 배부르랴?” “5․6공 세력과 함께하거늘 오죽 고생이랴?” 그렇다면 안 교수에게 ‘김대중’이라는 인물은 무엇인가. 성직자? 정치가? 어느 지식인의 지적대로 우리는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에 관한 한 관념주의와 김영삼 이데올로기에 너무 휘둘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의 정계복귀로 지역주의가 다시 무섭게 불붙게 되었다.”라는 안 교수의 평대로라면, 정․관․재계를 영남인들이 독식하는 일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지난 대선 때 “삼이가 남이가?”라는 경북․대구 지역의 분위기는 납득이 가는 ‘지역정서’이고, 조선왕조, 농민전쟁, 여순사건, 5․18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오직 호남인들의 운명적인 한(恨)일 뿐이던가? 이번 지자제 선거에서 나타난 수도권의 여당 배척을 ‘지역 할거주의’라고 주장하는 집권자들의 표현을 안 교수는 어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안 교수의 말대로 “그는 일생일대의 (사실은 두 번째로) 패착(敗着)을 했다.” 그럼 불계패가 뻔한 상대를 굳이 욕할게 뭔가? 국민이 벌써 등 돌렸다고, 모든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아 침몰한다고 평가받는다는 신당에 왜 사정당국이 저처럼 치졸한 표적수사를 벌이는가? 안 교수의 기대대로 국민에게는 민주당이 있고, 구당파가 있고, 시민연합도 정개련도 있다! 청년선언도 있고 X세대도 있다!

 

그들은 안 교수의 소망대로 세 김씨의 “지역주의와 보스주의의 멍에에서 자유로이 훨훨 날개짓을 하여”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양식과 한국 정치의 선진화에 힘입어 대승을 거두도록 빌고 싶다. 안 교수가 대변하는 “유망한 차세대 정치인들”만은 세 김씨를 흉내내어 “울며 겨자먹기로 줄서기를 하거나” “부지런히 헤쳐 모이거나 민주당, 민자당, 국민연합을 떠도는 짓은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단지 “만일 세대교체만 된다면 차기대권이 민자당(물론 민주계를 염두에 두겠지만)에 가더라도 DJ에게 가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그들의 지론은 성급하다는 느낌이다. 차선이 미흡하여 차라리 최악을 택하겠다는 새 정치 세대의 작심은 정치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감정적 언사처럼 들린다.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은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겨냥해왔지 세대교체를 목표로 싸워오지 않았던 것 같고, “그의 신화와 전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듯하다는 안 교수의 예감대로, 수차례 쿠데타와 광주시민 학살을 서슴지 않는 집단이 호남인에게 대권이 넘어가게 살려둘 성싶지 않은데 굳이 그런 작심까지야….

(생활성서 199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