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원로원과 로마국민 S.P.Q.R.

 

[외대학보 (명수당) 1990.9.11]

 

"아라비아 카우보이"도 상영이 끝났다. 미국이야 아랍에 군대를 갖다 놓는 것만으로 40년 숙원을 성취했으니 그대로가 좋다. 아라비아 물장수는 이제 누가 주인인지 뻔하다. 전쟁을 하면 하는 수 없이 이라크를 이겨야 하고 이기고 나면 돌아가야 하니까 지금 그대로가 좋을 듯하다. 미합중국 군대는 무슨 명목으로든 한번 진주하면, 격퇴되지 않는 한 돌아가지 않는다.

 

정권이 자주도 공연하는 "통일 파는 처녀"도 끝난 듯하다. 이번 프로는 2막도 있다지만. 그때마다 선량한 국민들, 이북 실향민들 물먹이고서 "거봐요, 통일은 안된다고요. 통일, 통일하는 자들 다 정신 나간 소영웅주의자들이거나 용공분자들이라구요. 꿈깨시라구요."라는 관변언론들의 후속 프로가 따랐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날은 대학인들도 정권의 통일의지를 믿어도 좋다.

 

"진주기생 논개 아씨, 강강수월래! 왜장 안고 물에 들어, 강강수월래!" 야권 통합의 "강강수월래"도 춤사위를 잃었다. 언론들이 왜장으로 분장(扮裝)시키는 김대중씨는 그다지 술에 취하지 않은 듯하고, 논개로 분한 인물은 어느 관아(官衙)에 기적을 둔 기생인지(이것은 꽤 중요한 문제이다) 관객도 고개를 갸우뚱하다 보니 굿판은 파장이 된 듯하다. “사정과 이유야 여하튼 간에 전라도 사람은 안된다”는 심층논리가 판을 잡고 있는 한에는 말이다.

 

그럼 굿거리가 다 떨어졌느냐? 아니다. 국회다!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의사당 속에서 전통적으로 거수기, 야합, 날치기, 독식으로 벌어지는 행사가 올 가을에도 개봉된다.

 

로마를 관광하는 사람들은 길거리 상수도전이나 공공건물 벽에 ‘S.P.Q.R'라는 약호가 눈을 끌어 무슨 뜻인가 궁금해 한다. 로마 공화정시대부터 줄곧 써오던 SENATVS POPVLVSQVE ROMANSVS 의 첫머리 글자들로서 ‘원로원과 로마 국민’(혹은 로마 원로원과 로마국민)이라고 번역된다. 로마가 법률 포고문과 타국과의 조약문서에 기재하였고 공공건물이나 시설에 새겨 놓던, 정식 국호(國號)라고 볼 수 있다.

 

로마의 주권을 나타내는 이 표기는 공화정과 제정 로마의 오랜 정치적 갈등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원로원이 국가의 권력주체로서 그 법률 제정과 행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원로원에 대응하는 최고의 권력 주체 내지 견제 세력으로 ‘로마국민’이라는 개념을 공인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지난 6월에 입법안들의 날치기 통과로 시작된 국회의 공전으로 정당정치가 사실상 중단된 마당에 금년은 국정감사도 없고, 작년비 20퍼센트를 상회하는 팽창예산이 그대로 채택되며, 무슨 괴이한 악법들이 눈깜박할 사이에 통과될지 모르는 사정이라서, 젊은 대학인들의 정치적 식견마저도 기성세대와 관변언론들이 대변해 주는 여당의 논리에 솔깃해질 우려가 있다.

 

더군다나 여당이 작년말의 정치협약을 무시하고 무한정 미루고 있는 지방자치제를 ‘실시할 수도 있을 수가 있을 수 있다’느니, 국회의원 선거구를 조정한다느니 하는 미끼로 평민당을 유인하고 있어 시비의 판단이 더욱 어렵다.

 

요체는 국민 감정, 주권의 최고 주체로서 이 국회를 감독하는 국민의 존재이다. 국민은 4년만에 한번씩만, 금품과 지역감정으로 매수하여 한 표씩 우려먹고는 배신해도 좋은 숙주(宿主)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에 대해서든, 타당의 정치가들에 대해서든 정치적 협약을 지키지 않는 집단들은 협잡군들의 패거리에 불과하다. 보수대연합이 최악의 표본이었고, 야당통합이 지연되는 것이나 평민당이 공약을 어기고 동원한다면 그것도 지탄받아 마땅하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처럼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만) 주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그치면 국민이란 언제나 정치협잡군들의 먹이에 불과하다. 국민은 정치도덕상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 천부적인 저항권이 있다. 이것을 인정치 않으면, 3․1운동, 4․19혁명, 5․18 민주의거, 6월 항쟁이 우스개가 되어 버린다. 야당의 의원직 사퇴나 등원거부나 원외투쟁이라는 것은 소수의 무력한 정치세력이 다수의 행악에 빌라도처럼 ‘손을 씻는’ 고육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회에 대한 국민 감독권 혹은 부도덕한 정권에 대한 국민저항권의 행사라는 차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외대학보 1990.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