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문제에 관한 교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김남수 주교의 "월간조선" 인터뷰에 관해서

                                                                               [아시아공동체 1996..15]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7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임기 초에는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안 받았더니 기업인들이 불안해하고 경제도 잘 안 돌아갔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 돈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을 놓았고 그 뒤 경제도 잘 풀려갔다.”

 

물론 홍콩으로 여행을 가는 이들 가운데에는 100달러 짜리 지폐를 준비해 가는 이들이 있다. 어두운 밤길에 누군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으면 그들이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 들기 전에 지폐를 꺼내 주면 안심이다. 이들은 바로 험난한 우리의 인생길에서 근심과 불안을 덜어주는 수호천사인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씨는 왜 자신이 이 나라를 위한 수호천사였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해서 그렇게 법정에서 당당했을까? 수원교구의 김남수 주교는 "월간조선" 2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최근의 두 전직 대통령 구속과 관련된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 인터뷰는 두 전직 대통령이 임기 중에 저지른 부패와 쿠데타 혐의로 구속된 사건에 대해 교회 일간의 또 다른 의견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김 주교는 인터뷰에서 먼저 자신이 정치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패의 뿌리를 뽑자는 여론의 동향을 비판하면서 “정의를 구실로 민중이 분노하고 있으며, 민중의 분노는 비이성적”이라고 말했다.

 

김 주교는 이에 대한 근거로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죄인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고 “우리는 판관이 아니며 모두가 다 죄인일 뿐”이라고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뇌물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두 사람을 옹호했다.

 

“돈은 인간을 성인으로도 죄인으로도 만든다. 그런 돈이 정치에 필요했다는 것은 아마 박정희 시대부터 내려왔을 것이다. … 그 점에 있어서는 두 분이 잘못했다고 하지만 그 분들은 나라를 이끌고 좋은 정책도 많이 했다. … 그 시대 정치인으로서는 빠지기 힘든 허물 속에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라는 것이다.

 

신학박사인 김 주교는 “크리스천의 원칙에 ‘아무도 자기 허물을 밝힐 의무가 없다’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그는 여론의 동향을 우려하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우리를 5~6년 동안 지배하던 사람들인데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짐짓 꾸짖는다.

 

그래서인지 이 인터뷰를 진행한 월간조선의 이동욱 기자는 인터뷰 끝에서 김 주교를 두고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본 듯하다고 말한다. 위고는 “배고픈 자가 훔치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김 주교의 관점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은 물론이고 최근 교황께서 제3 천년기를 준비하기 위해 중세의 마녀사냥 당시의 잘못을 재조사하도록 한 것에도 대비된다. 그러나 그는 또 “남북대치 상황에서 우리끼리 이렇게 ‘싸워야’겠는가?” 하고 물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한다. 북한이라는 적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인가?

 

김 주교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지난 해 12월 20일 김수환 추기경이 관훈토론회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의 구조악을 치유하고 인간존중의 가치관과 법과 정의가 살아있는 새한국을 만드는 절호의 기회를 의미한다.”고 말한데 대한 반론으로 보인다.

 

전 주교회의 사무총장이자 의장을 지낸 김 주교는 한국 주교의 다수는 과거 사회정의를 외친 김 추기경과 정의구현 사제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나는 그와는 달리 주교회의가 열릴 때의 내부 사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확고한 언조로 밝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상당수의 가톨릭 지도자들이 그러했으리라고 짐작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망국적인 한국 사회의 부패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관점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국 가톨릭교회는 정부의 부패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판한 적이 거의 없다. 김 추기경을 포함한 일부 진보적인 주교나 정의구현 사제단에서도 인권이나 민주화에만 주의를 집중한 나머지 이 문제에는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 한국교회 내의 보수적인 그룹이 진보적인 그룹을 비판하는 관점은 이 인터뷰에 잘 드러나 있다. 김 주교가 인터뷰 뒷부분에 한 말에서 반공주의와 국가안보가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전쟁은 악마적이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공포는 전쟁만큼이나 악마적이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그간 독재자들이 민중을 억압하고 자신의 부패를 옹호하는데 이 공포를 이용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마도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그동안 방공주의와 국가안보 이데올로기의 탈을 쓰고 민중에게 평화를 가져다 주겠다고 약속하는 맘몬을 하느님과 함께 또는 하느님처럼 숭배해 온 것 같다.

 

김 주교는 “젊은 신부들이 그때 그때 생각나는 대로 떠들다 보면 그런 문제가 국민화합의 저해요소로 작용할게 그게 걱정”이라고 말한다. 일부 나이든 사제들은 덕분에 젊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과 악을 판단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아시아공동체 1996.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