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검찰 불기소에 대한 신앙인의 고민

 

                                                                                    [생활성서 1995.9월호]

 

 

“수도원 안에서 뭔가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신같이 예리하고 지혜로운 인물의 관찰과 의견이 필요합니다. 캐내는 데는 예리하고 필요하다면 덮어두는 데는 지혜로운 인물 말입니다. … 그런데 … 목자가 오류를 범하면 양떼에게서 격리되어야 하지만 양떼가 목자를 불신하기 시작하면 끝장입니다”(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에서)

 

지난 7월 중순, 대한민국 검찰의 “5․18 광주시민학살사건에 대해서는, 학살주역들이 현정권의 사실상 투자자들이기 때문에 검찰은 죽어도 공소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라는 요지의 발표를 듣고서 한국 천주교 지도자들과 신자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이 글을 읽는 신앙상의 교우(敎友)로서 필자의 말이 귀에 거슬리거든 이번에 무고한 시민 수백 명이 압사한 삼풍백화점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눈여겨보시라. 백화점 주인들은 ‘사람 죽일 생각은 털끝 만큼도 없었고, 돈 몇 푼 벌려다 어쩔 수 없이 수백 명쯤 죽인’ 과실치사(過失致死)로 기소되고, 그 부실공사와 탈법 허가를 주도한 공무원들에게는 집행유예가 떨어질 정도의 혐의와 뇌물 액수만 걸렸다.

 

또 집권 후 정적들에게 철저히 복수를 해온 김 장로님의 하수인들답게, 정적의 정계복귀와 신당 창당이 선언되는 날을 택일하여 5․18에 대한 검찰의 발표를 내보냄으로써, 호남인들과 6․27의 반대투표자들에게 가한, 통쾌했을 복수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80년 5월과 6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암울한 사건인 광주시민학살과 전두환 군사정권의 등장을 기억하면서 필자는 당시에 직접 겪은 한두 가지 일화를 떠올림으로써 신앙인으로서 그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고 싶을 따름이다.

 

사건 발생시부터 온갖 고초와 증오를 받으면서 광주시민들의 운명과 상처를 함께 겪어오는 광주대교구의 성직자와 신자들께는 경의를 표한다. 타지역에서도 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사건을 국민들에게 알렸으며, 군부의 시민학살을 규탄하였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5․18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가 의장이었다)는 “군부도 시민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라!”라는 성명서를 냈다.

 

그러나 민족의 고난을 함께하는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군부와 보조를 같이 한 이들도 있었다. 당시 외신기자 한 사람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교구 모 성직자가 “호남지역은 워낙 좌익들이 많아서 이번 소요는 그들이 일으킨 것으로 본다” 라고 한 말을 들었다면서 필자의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이 교구는 사제 한명을 군사정권의 모 위원으로 참여시키기로 하였다.

 

또 상임위의 비상대책이 있고 나서 전체 주교회의는 ‘광주 사태’에 관하여 끝내 전체 입장을 표명치 않았다. 국민들은 바로 전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여자들과 벌인 주연석에서 총 맞아 죽었을 때, 불교신자인 그를 위해 천주교 모든 주교들이 명동성당에 모여서 미사를 드린 일을 기억하고 있다. 동작동 묘지에는 스님이 분향하고 목사가 기도하고 사제가 성수를 뿌렸다. 역시 세도 있는 분은 극락이든 천당이든 천국이든 가게 되어 있구나 여겼으리라.

 

민주화되었다는 지금까지도 광주대교구를 빼면, 한국 천주교가 전체 태도를 표명하거나 광주 5․18 희생자들을 위한 공동미사를 올린 기록이 없다. 광주 학살 직후 어느 독지가의 미사예물로 명동성당에서 광주 희생자들을 위한 연미사가 한 달 동안 계속 바쳐졌다. 그러나 한두 사제를 빼면 미사지향도 제대로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80년 가을, 명동 여학생관에서의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젊은이들에게 어떤 강연을 마치신 다음 대학생의 질문을 받았다. “광주의 무고한 학생 시민들이 학살당할 때에 추기경님은 왜 잠자코 계셨습니까?” 대답은 짤막하였다. “한국이 월남처럼 될 수는 없지 않느냐?” 우리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극히 일반적인 심경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여겨진다. 물론 상당히 고뇌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담화문에서 5․18사건과 관련해 엄정수사를 촉고하신 것은 늦게나마 광주문제에 관한 교회의 양심을 대변하신 말씀 같아 퍽 다행스럽다.

 

“침묵하는 자는 동조한다!”라는 로마인들의 속담이 있다. ‘87년 6월 항쟁의 도가니에서 한국 평신도협의회가 내세운 “내 탓이오!” 표어대로라면, 광주에서 저질러진 학살은 우선 우리 모두의 살인이리라.

 

해마다 9월이면 순교자들을 기리면서 성월로 지내는데, 이상하게도 “내 탓이오!”하는 박해자의 후손은 한 명도 없다. 이조시대 대역죄인들을 욕하거나 밀고하거나 고문하고 사형하거나 구경하던 사람들과 그 후손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훗날 4․19국립묘지처럼 5․18묘역이 국립묘역이 되고 그 희생자들에게 훈장이 추서되고 5․18이 이 나라 역사의 찬란한 장으로 떠오를 때 쯤이면 한국 천주교도 기념미사를 드리고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행사도 가지리라.

 

하지만 예수님의 다음 말씀이 자꾸만 뇌리에 떠오름을 어찌하랴. “불행하도다, 너희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묘비를 만들고 있으나 바로 너희 조상들이 그들을 죽였던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그 증인들이며 너희 조상들의 행실에 동조하는 것이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묘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루가 11, 47~48).

(생활성서 199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