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가는 자와 끌고가는 자

 

                                                                                                      [외대학보 (명수당) 1990.10.30]

 

은주야, 어차피 사람은 딱 한번 살고 간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두 동아리로 나뉘게 마련이다. 수렁에 박힌 민족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느라 진창에 발벗고 나섰다 부러지고 깨어지고 상하고 죽어 없어지는 이들이 있고, 그 수레 위에 거드럭거리고 누워가거나 위에서 이러쿵 저러쿵 시부렁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역사는 관람객들이 태반이고 소수만 주역을 선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너희들이 창조하는 그 역사의 수혜자들일 따름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

너희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은, 너희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정의, 평화, 민주, 통일 같은 고귀한 언어들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의 체제에서 살림의 차원으로 건너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랑은 자기를 찢고 나감인데 사람들은 보통으로 자기 속에 갇혀 있고 싶고 갇혀 있으면 안전은 하단다. 그 대신에 민족의 어머니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 질긴 목숨을 부지해 왔기에, 어수룩한 아들 딸을 추켜 세워서 내보낸다. 셈을 할 줄 모르고, 앞뒤를 가릴 줄 모르고, 무턱대고 뛰어 드는 젊음들 말이다.

 

내가 너희들은 좋아하는 것은 너희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인간이야말로 일체의 철학과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옳고 그름을 재는 기준이다. 인간을 살리는 것이면 그것은 옳고 인간을 유린하는 것이면 상표가 무엇이든 그것은 악이요 폐기하여야 할 것이다. 고르비의 페레스트로이카, 챠우세스쿠의 처형, 북한의 주체사상 모두가 ‘인간 살림’에 근거해야만 납득이 가리라 본다.

 

그 인간들 중에 너희는 ‘민중’에게 정을 쏟는다. 그리스도교는 그것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득권자들이 너희를 미워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동포를 위하는 자는, 특히 가진 것 없고 짓눌리는 겨레를, 민중을 사랑하는 자는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너희의 투신이 그자들의 수탈과 억압과 살인죄를 폭로하기 때문에 그자들은 분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표적

은주야, 너희가 걷는 길이 올바르다는 심증을 어디서 얻는지 아느냐? 너희가 형극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표현을 쓴다면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말이다, 뾰족탑 위에 쳐두는 거미줄이 아니다. 성직자들 법의에 거는 무공훈장이 아니다. 영양 좋은 아낙네들의 가슴에서 시선을 끄는 액세서리는 더더욱 아니다.

 

십자가는 통나무나 철근콘크리트 덩어리요 그 위에 매달려, 그 밑에 깔려서 무죄한 자들이 피흘리며 죽어가는 형틀이다. 그래서 십자가는 삶 전체의 종국을 보여 준다. ‘사랑하는 삶의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다.

 

너희 관대한 양심들이 어리숙하게도 민족혼에 씌어서 민중이 주인되고 겨레가 하나되는 저 언덕에 오르려 한다면, 당연히 수난을 당한다. 그리고 너희가 당할 시련은 상상보다 훨씬 가혹할 것이다. 작년만 해도 너는 목격하지 않았느냐? 문익환, 문규현 하는 성직자들이, 그들이 섬기노라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들이 몸바치노라는 교회의 이름으로 온갖 돌팔매질을 당하는 것을! 더군다나 너희가 헌신하노라는 민중의 이름으로 너희가 처단당하는 날에야….

 

선생님들이나 학우들이야 기껏 소리 안나게 박수를 치거나 학생회 선거에 한 표를 던지거나 죽어간 벗들의 묘비를 세우는 외에 무엇을 하겠니? 혹독한 말 같지만, 어차피 너희는 사라지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역사악의 엄청난 저항력 앞에서 찬란하게 산화하게 되어 있다. 역사의 종국에 민족사의 파란만장한 민중대승도를 볼 수 있다면, 거기 핏빛 루비로 군데군데 반짝이는 너희의 자태를 보련마는….

 

그 유치장에 창문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통일의 꽃 수경이, 석양의 무법자, 그리고 이름이 잊혀져 가는 수 천의 젊은 눈들이 오늘 저녁에도 감옥의 저 육중한 창살을 바라보겠지.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들 젊은 혼, 무엇인가를 미치게 사랑할 줄 아는 눈에는 창살 틈에 반짝이는 별들이 보일 게다.

(외대학보 1990.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