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읽기 제4권]
(경향잡지 2017년 5월)
“내가 내 자신에게 커다란 수수께끼”
‘자네 뒤만 따라가노라면...’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제일가는 행복으로 여기던 아우구스티누스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다. “육체적 쾌락이 제아무리 넘치더라도 친구들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던 기분... 친구들만은 무작정 사랑했고 아울러 그들에게서 제가 무작정 사랑받는다고 느꼈습니다”(고백록 6,16,26)는 고백처럼, 그가 주고받은 서신 중 300편 넘게 지금까지 간수될 정도다. “우정에는 이성으로도 확실하게 밝힐 수 없는 신비로운 무엇이 있었다.”(믿음의 유익 10) 그래도 일평생 속을 터놓고 지낸 고향친구 알리피우스가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카르타고에서 여자와 동거하면서 훈장 노릇을 할 적에 그의 강의를 한번 들어보고서는 당장 그의 문하생이 된다, 자기 부친의 엄청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리피우스를 황당한 점성술로 꾀고 마니교에 끌어들인 것도 아우구스티누스였다. 여자에게 도통 흥미가 없으면서도 여자 없인 못 살겠다던 아우구스티누스 말에 친구의 의리 땜에 호기심 삼아 자기도 결혼이라는 걸 해볼까도 했다.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에서 다시 만난 알리피우스에게 아우구스티누스가 묻는다. “자네처럼 지각 있는 사람이 내가 꾄다고 해서 왜 마니교에 빠져들었나?” “자네가 내 인생의 길잡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딴 사람을 못 만나리라는 예감도 들었어. 마니교는 늘 나를 찜찜하게 만들어. 내가 마니교도가 된 것은 자네를 믿기 때문이야. 자네가 설혹 길을 잘못 들어도 자네 뒤를 따라가노라면 기어이 나를 진리에다 데려다 주리라 확신한다구, 자넨 그토록 진리를 갈구하고 있으니까.”
이러한 ‘무한신뢰’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로 가자 로마의 관직을 사임하고 따라나섰고, 카시키아쿰의 은둔, 387년 부활절의 세례, 심지어 아프리카 귀향과 타가스테 수도원생활도 함께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비슷한 시기에 사제가 되고 둘의 고향 타가스테의 주교가 된다. 그와의 우정은 「고백록」(6,7,11-16,26)에도 길게 묘사되어 있다.
‘하늘 사냥개’와 맞닥뜨리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깊은 충격을 준 우정이 또 하나 나온다(고백록 4,4,7-8,13). 스물한 살에 잠시 고향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해에, “너무도 사랑스러웠고 또래인데다 청춘의 꽃으로 함께 피어오르던” 벗을 만났다. “제 일생의 모든 환락 가운데서 가장 달콤한 우정”(4,4,7)이라고 회고한다. 로마인들은 친구를 ‘자기 영혼의 반쪽’이라고 했다. 그러던 우정이 겨우 한 해를 다 못 채웠는데 하느님께서 이승에서 거두어가셨다! 「고백록」 제4권 전반부는 사랑하는 벗과 사별한 아픔을 하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고전문학에서 빼어난 ‘우정론’으로 꼽힌다.
“그때 제 마음은 크나큰 고통으로 암울했으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죽음뿐이었습니다. 고향은 그야말로 형극이요 아버지의 집은 기괴한 불행이었으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이 그가 사라짐으로 해서 거대한 고문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를 간직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미워졌습니다.”(4,4,9) 벗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평안도 없고 분별도 없이, 갈기갈기 찢기고 선혈을 흘리는 영혼을 끌고 다녔으며, 영혼 둘 곳을 찾아내지 못하던”(4,7,12) 나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자기가 자기에게 커다란 수수께끼”(4,4,9)가 되고 만다.
하느님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안달을 하는”(1,1,1) 것이 인간의 운명인지, “인간을 인간답게 사랑할 줄 모르는 광기, 인간사에 절도 없이 안달하는 어리석음”(4,7,12)을 문득 체득한다. 인간에게 지상사물은 ‘사용하는’(uti) 대상이고 하느님만 인간이 궁극적으로 ‘향유할’(frui) 대상이기에 “무릇 사멸하는 사물들에 대한 우애에 사로잡힌 마음은 모두 불행하고, 사랑하던 것을 잃고 나면 비참을 느끼지만, 그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도 이미 그것으로 비참한 법”(4,6,11)임을 감 잡는다.
이치는 분명했다. “만물의 창조주 하느님, 저 모든 것으로 저의 영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되, 사랑으로 그것들에게 끈끈하게 들러붙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것들은 가던 곳을 향해서 가게 마련이고 가던 곳이란 비존재를 향해서입니다. 영혼은 그런 사물 안에 존재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물들 안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들에는 안주할 만한 ‘어디’라고 할 것이 없으니 머물러 서지 않는데도 말입니다.”(4,10,15)
이처럼 인간은 ‘절대지평(絶對地平)을 눈앞에 두고 부단히 그 지평선으로 걸어나가야 하는 운명인지, 친구 잃은 참담한 슬픔과 비통에서 섬뜩함을 느끼그 그 정체를, 당신에게서 달아나는 “도망자들의 등 뒤를 바싹 쫓으시는 복수의 하느님의 묘한 솜씨”(4.4.8)라 불렀다! 그분 말씀이 폐부에 박혀 있어서 어디로나 그분께 포위되어 있다는 실감(8,1,1), 현대 영국 시인 프랜시스 톰슨이 묘사한 ‘하늘 사냥개’의 콧김을 목덜미에 느끼고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는 항복! 훗날 몬테카시노의 베네딕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와 더불어 ‘아우구스티누스 수도가족’을 이루는 영성생활의 초석이 이 항복이다.(4,8,13-12,19)
‘탈출기 형이상학’
이런 사색은 평생 1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첫 작품(“제가 저 서책을 쓴 때는 스물예닐곱 하던 나이였습니다”) 「아름다움과 적합함」에 흔적을 남긴다. 교부의 생전에도 이미 유실되어 찾아낼 길 없어 아쉬웠는지, 제4권 후반부(4,13,20-16,31)에서 대강 줄거리를 더듬어낸다. 지상의 사물과 타인이 우리에게 풍기는 매력을 ‘아름다움’(pulchrum)이라 부른다면, 자기들을 있게 만드신 분을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적합함’(aptum)에 인간더러 눈뜨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예술’(4,15,24)이었다!
“사람의 영혼이 어느 쪽으로 향하든 간에, 당신 아닌 딴 곳에 매달린다면, 고통과 마주치게 됩니다. 비록 아름다운 것들에 매달리더라도 당신 밖에서 또 자기 밖에서라면 그렇게 됩니다. 당신께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한 그 아름다운 사물들이란 도대체 아무 존재도 아닐 것입니다.”(4,10,15) 저 예술이 사랑하는 벗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그를 가르쳤다, 오감에 파악되는 경치도 가락도 향기도 잔치와 쾌락도 ‘존재’라는 그릇에 담겨야만 진선미임을! ‘현존’과 ‘부재’의 엄청난 차이를! 결국 ‘문제는 있느냐, 없느냐’임을!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안아서 키워본 아들, 그 다정한 벗들도 “생성하면서는 존재하기를 시작하고, 완성에 이르려고 존재를 지향하는데, 존재하려고 그만큼 빨리 성장할수록 비존재를 향해서도 그만큼 서둘러 가는 것임을!”(4,10,15) 그것이 사물의 한도임을! 그 한도를 간파하는 지성은 이미 그 한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인간이란 그 자체가 ‘실로 위대한 심연’임을!(4,14,22)
하늘과 땅이 외친다, 자기들은 만들어졌다고. “우리가 존재함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는 우리는 없었다!”(11,4,6) 이래서 세계를 선하신 창조주의 선한 피조물(esse creatum)로 규정하는 ‘창조론’이 서구세계를 장악한다. “주님, 아름다우신 당신께서 저것들을 만드셨습니다. 저것들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존재하십니다. 저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11,4,6)
따라서 우리 피조물이 하느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존재’(esse)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왜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소개하셨는지 알아듣게 해 주었다. 하느님 외 모든 존재가 비존재를 향하여 소멸하는 까닭은, 무로부터 창조되었기 때문이니, 결국 하느님만 ‘최고로 존재하는 분’(summe esse), ‘참으로 존재하시는 분’(vere esse)이시다. 훗날 ‘탈출기 형이상학’이라 일컬어지는 그리스도교 존재론이 가닥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