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Confessiones


(삼성 SERICEO 인문의 샘 2015.11)

 

1. 아우구스티누스, ‘진리의 연인戀人

 

지금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라카스라는 마을, 1600년 전에는 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타가스테 라고 부르던 마을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내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소싯적부터 조그만 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학식, 출세, 지상의 쾌락이 모두 탐스럽지만 그 어느 것도 그만하면 됐어!”라고 할 만큼 사람을 채워 주지 못하리라는 점을 이 조숙한 소년은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목마를 때 마시는 한 모금 물이 끝없는 바다를 그에게 떠올렸듯이, 배고파 음식을 먹는 포만감, 눈앞의 잔 꽃송이 하나를 눈여겨보는 놀람, 아기를 보듬고 쓰다듬는 여인의 미소, 순간순간 우리가 감지하고 문득문득 깨닫는 모든 지식에서 무한한 어떤 것이 함께 인지되고’ ‘함께 욕구되고’ ‘함께 사랑받는다고 소년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매순간 욕심내는 대상과, 평생을 걸어 투신하고 사랑할 만한 대상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직감이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첫머리에서 그 대상을 미처 알지도 못한 채로,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 (1.1.1)라고 실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인물 이전에는 플라톤, 이후에는 칸트와 더불어 인류 지성사에 가장 근원에서 사유하는철학자로 꼽히는 아우구스티누스! 태생적으로 인간은 무한하고 영원한 무엇을 목말라하고 찾아 헤매고, 찾는 것을 기어이 손에 넣어야만 더없이 행복해진다는 사실! 그는 뼈저리게 예감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고 또 고스란히 삶에 옮겼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봉을 가운데 두고 저편 구약시대에는 모세라는 웅봉이 자리 잡고 이쪽 신약시대에는 바울로라는 영봉이 우뚝 솟아 있다면, 바울로에서 뻗어 내리는 산줄기에 가장 뛰어난 준봉이 성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또 오늘날 유럽 연합이라는 정치집단으로 집결 중인 서구인들이 본다면, 유럽문화가 헬레니즘(곧 그리스 로마 문명), 헤브라이즘(곧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이 한데 흘러들어온 강물이므로,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1600년 전에 저 두 강줄기를 하나로 합류시킨, ‘유럽 사상사의 양수리에 해당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칠 줄 모르는 사상적 방황은 진리에 대한 사랑에서였습니다. , 진리여, 진리여! 저 사람들이 당신을 외칠 적에, 그렇게도 흔하게 그렇게도 다채롭게, 때로는 소리로만 때로는 많고도 커다란 책자로 당신을 드러낼 때에, 내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당신을 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까!”(3.6.10)

아우구스티누스는 열여덟 나이에 키케로의 철학서를 혼자서 읽고 진리에 대한 열정에 불타기 시작했다고 회고합니다. 호르텐시우스라는 키케로의 책이 내 성정을 아예 바꾸어 놓았고, 내 소원과 열망을 딴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나의 모든 헛된 희망이 갑자기 시들해졌고 마음의 믿기지 않는 갈증으로 불멸의 지혜를 탐하게 되었습니다.”(3,4,7)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고백록 Confessiones을 읽는 독자들은 그의 지성에서 형광등의 차가운 불빛이라기보다는 검붉은 연기를 뿜어내면서 타닥타닥 불땀 소리를 내는 불꽃을 연상합니다. 그의 철학은 영롱한 광휘라기보다 치열한 화염이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읽는 사람들은 시뻘건 불꽃으로 넘실거리면서 자신과 타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삼키는 마음의 논리에 접하게 됩니다.

 

인간은 천성이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그 목적에 이르지 못하는 한 완성을 볼 수 없습니다. 그 목적이란 전력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있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존재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인간은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회의주의에 한때 사로잡혔지만 아무리 의심하고 아무리 속더라도 의심하고 속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로 만들어집니다. 훗날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로 다듬었습니다.

또 일단 진리를 발견하면 일평생을 다 걸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철학자라면서 학계에서 주장하는 이론 다르고,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다른모습을 못 봐주었습니다. 그는 직업으로 철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철학을 살았고, 진리를 따진 것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였습니다! ‘진리의 연인(戀人)’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가 찾아가던 진리에 아예 하느님이라는 종교적 명칭을 부여합니다. “,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이 내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한숨짓습니다.”(7,10,16) 따라서 그의 철학은 당연히 삶으로 신봉되는 종교여야 했습니다. 진리여, 당신께서는 내게 누구십니까? 내가 당신께 무엇이기에 나더러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하십니까? ”(1.5.5) 이런 과감한 질문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진리한테서 듣고 싶은 답은 오직 하나였습니다. “나에게 당신은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너의 구원이다!’. 내가 들을만하게 말씀해 주십시오.”(1.5.5) 이 철학자에게는 진리가 호기심의 충족에서 그쳐서는 안 되고 자기 인생의 영원한 구원이어야 했습니다.

이런 자세로 10년 넘게 찾아 헤맨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이 믿던,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라고 깨달았을 때에 그는 선언합니다.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나이 33세에 선언한 이 언약을 그는 이후 44년간 수도자로, 성직자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충실하게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두고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되뇌던 탄식이 있었습니다. 그의 철학적 유언에 해당하는 고백입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sero te amavi)!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10,27,38)

 

2.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고백록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는 서기 354, 정확하게는 1113, 당시 로마 제국의 북아프리카 속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호탕한 지방 관리였던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려서 돌아가셨고,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어머니 모니카는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이 열여섯 살에 고향을 떠나 북아프리카의 문화중심지 카르타고로 가서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하는데 학교에서도 급장이 되고 카르타고 극시(劇詩) 경연대회에서 장원을 하여 총독에게서 월계관을 받아 쓸 만큼 재능을 보였습니다.

곧이어 카르타고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가르쳤고, 로마로 자리를 옮겨 가르치다, 마지막으로는 밀라노 황실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수직을 지내면서 당대에 풍미하던 사상계를 거의 다 체험하였습니다.

세계정치사의 위대한 기적으로 꼽히는 로마제국’, 무려 700년 가까이 지중해연안을 지배한 세력이 드디어 쇠퇴하고 붕괴하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민족 대이동이 일어나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초토화하고서 그가 주교로 있던 항구도시 히포를 포위한지 석 달 만에, 76세 나이로 숨을 거둡니다. (430828일이었습니다).

하느님,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안식일의 평화, 저녁 없는 평화를 주십시오.”(13,35,50)라는 염원 속에 살아온 노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한 마디는 어리석게도 나는 죄다 내 머리로 알아듣고 싶었어.”라는 철학적 자백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50년도 안 되어 서로마제국이 고트족의 손에 멸망합니다.

그의 유해는 히포 대성당에 묻혔다가 아랍 세력이 아프리카로 진격하던 7세기에 사르데냐로 옮겨졌고, 그 섬마저 사라센들에게 점령당하자 롱고바르디아 국왕이 그의 유해를 확보해서 지금 이탈리아 파비아에 있는 성아우구스티누스 성당에 안치했습니다. 지금도 그곳을 찾아가면 그의 유골이 묻힌 제단 주변에 그의 생애를 묘사한 화려한 대리석 부조를 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초기학자들을 교부(敎父)’라고 부릅니다. 교부들 가운데 가장 방대한 저작을 남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활동은 사실 100책을 넘깁니다. 100여책이 넘는 많은 저작 가운데 사상사에서 인간이 절대 진리 곧 하느님을 만나는 길,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저로 평가되는 삼부작(三部作)이 있습니다. 첫 책은 교부가 자기 인생에서 절대 진리를 찾다가 만나던 길을 묘사한 고백록 Confessiones, 둘째는 지구상의 인류가 역사를 거치면서 그 진리의 힘으로 역사를 완성시키는 대서사시라고 할 신국론 De civitate Dei이라는 역사철학서입. 그리고 진리인 하느님 편에서 인간과 인류를 만나러 오시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인 자기 정신을 분석하고 성찰하여 삼위일체 하느님을 만나 뵙는 길을 분석한 삼위일체론 De Trinitate이 있습니다.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어려운 책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신학이 다 이 책에서 비롯합니다.

 

생전에 백여 책이 넘는 저작을 남기고서도 아우구스티누스 본인이 "내 작품 중 그 어느 것이 고백록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까?" 자부할 만큼 본서를 자기 대표작으로 여겼습니다. 사실 성서를 제외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 온 책자여서, 문학사에서도 철학사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가장 독창적인 대표작이라 불러 손색이 없습니다. 로마 시에서 태어난 인물이 아니고 북아프리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 황실의 수사학 교수로 밀라노에 초빙 받을 정도로 당대 가장 걸출했던 문장가의 자서전입니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서기 387년 부활절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지 11년이 지난 뒤 나이 43세의 원숙기에 쓴 책입니다. 자기 생애의 사상적 도덕적 방랑을 글로 옮긴 책입니다. 13장 또는 13권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본론에 해당하는 전반부 곧 제1-9권은 그리스도교로 회심하기까지 자기 생애를 회고하는 형식이며 태어나서부터 33세의 나이로 개종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모친 모니카가 오스티아에서 별세하기까지(387)를 담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돌아가 수도자로, 사제와 주교로서 살아가던 현재의 심경을 추가한 것이 제 10, 구약성서 창세기를 펴들고 천지창조로 시선을 옮겨 세계의 기원과 시간 문제에 사색을 기울인 내용이 후반부에 해당하는 제11-13권입니다.

 

하지만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自敍傳)이 아닙니다. 이 책을 쓴지 25년 후 본인 입으로 "나의 고백록13권은 나의 악행과 나의 선행을 들어 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책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우리에게도 잘못의 자백만 아니고 사랑의 고백도 있듯이, 아우구스티누스도 무릇 고백이란 찬미하는 사람의 고백이거나 뉘우치는 사람의 고백이다.”라고 합니다. 독자들이 "내 선업을 두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 악업을 두고는 탄식의 한숨을 쉬라고 하겠습니다. 나의 선업은 하느님, 당신의 업적이자 당신의 선물이며, 나의 악업은 내 죄악이자 당신의 심판입니다."(10,4,5)라는 말처럼, 독자들이 악의 어두운 심연이 자기와 주변세상을 에워싸도 실망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뜻에서 이 책을 집필한다고 밝힙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 11-13장은 우주의 기원을 창조주의 사랑에서 보는 신앙 고백에 해당합니다.

르네쌍스의 문장가 페트라르카는 어디를 여행하든 고백록을 곁에 두고 읽었고 그 내용에서 커다란 정신적 안위와 기쁨을 누렸노라고 실토했습니다. 성서를 제외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 온 이 책이 작가의 심미적 문체와 열정적인 기질 덕분에 종교서로 그치지 않고 세계문학전집에 필히 들어가는 고전이 된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한 지성인의 뜨거운 열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불리면서 이 책은 인류의 문화유산임에 틀림없고, 100여권에 달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집 가운데 현대에 와서도 가장 많은 번역본이 중첩되어 나오는 책자가 바로 고백록입니다.

 

3. “이해하고 싶으면 믿으라!”

 

학자들은 고백록줄거리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진리에 정착하고 일생을 헌신하기까지 세 차례의 사상적 전향을 꼽습니다. 첫 번은 나이 열여덟 살에 카르타고에서 키케로의 책을 읽고서 일평생 철학에 전념하여 진리를 발견하겠다는 각오를 세운 때입니다. 두 번째는 밀라노에서 나이 서른에 플로티누스를 비롯한 신플라톤학파의 서적들을 접하면서, ‘()’이라는 실존적 난제를 풀어가던 단계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저 유명한 밀라노 정원의 밤에 담장 밖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동요 집어라! 읽어라!(Tolle, Lege!)"를 들으면서 여자에 대한 질긴 애욕, 출세욕을 홀연히 끊고 진리와 신앙에 헌신하기로 결단한 사건입니다.

이 세 단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후 1500년을 두고 그리스도교가 교리를 확립하면서 하나씩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첫째는, 철학에 정진하기로 결심하면서 만사를 이성으로 파악하고 검증해보겠다는 패기만만한 합리주의자의 눈에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띕니다. 일상생활에 통하는 거의 모든 지식이 나의 철학적 논리적 사색에서 나온 확실한 결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내가 보지도 못한 일, 역사에서 일어난 무수한 사건, 내가 가본 적 없는 그 많은 장소 이야기, 교사와 의사들이 알려주는 그 많은 지식을 나는 그냥 믿고 산다. 그것들을 안 믿기로 한다면 현세에서 우리는 한 발자국도 못 내딛고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다.”(6,5,7)

그러자 일상생활에서도 믿음이 불가결하다면, 더구나 지성의 진리 탐구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는 착상이 나옵니다. 여기서 이해하고 싶거든 믿으라!”는 명제가 나오고 아우구스티누스의 학문에서 신앙과 이성이라는 진리 터득의 두 방법이 그리스도교에 전수됩니다. 진리에 이르는 가르침을 받으려면 반드시 권위權威와 이성理性으로 지도를 받아야 한다. 시간적으로 권위가 앞서고 실제로는 이성이 앞선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이어서 인간이 머리로 추론을 해서 진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있는 진리를 발견할 따름"이라고, 진리는 "발견되기 전에도 스스로 존재하고, 발견될 때에는 우리를 쇄신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정화된 지성이 아니면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도 합니다.

당신의 빛으로 우리가 빛을 봅니다.”라는 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는, 우리가 단편적이나마 참된 사실을 참되다고,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선한 언행을 선하다고 판단하는 일 자체가 진리 자체의 비추임을 받아서라고 합니다. 철학사에서 조명설(照明說)’이라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항속하는 빛이십니다. (감각하고 인식하고 직관하는 대상들이) 과연 존재하는지, 무엇인지, 얼마나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저는 저 모든 것을 두고 이 빛에 문의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마다 가르치고 명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10,40,65) 철학 자체가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참된 철학자는 신을 사랑하는 사람”(신국론 14,6)이라고 정의한 점도 이해할 만합니다.

 

4. 과수원 배서리와 악의 형이상학

 

저희 포도밭 근처에 배나무가 있었는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기는 했지만 모양이나 맛으로나 탐낼만한 과일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아주 못된 아이놈들은 으슥한 밤에 그 나무를 흔들어 털었습니다. 그리고는 태짐이 될 만큼 몽땅 싸갔는데 그 배로 저희가 한바탕 먹고 놀자는 것이 아니라 돼지들한테 던져주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해보고 싶은 심보로 저지른 일입니다. 하느님, 제 맘보를 보십시오!... 그저 악인이 되고 싶었고 제 악의의 원인은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악의가 추잡했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2,4,9)

 

악은 어디서 오는가?” “악이란 무엇인가?” “악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라는 세 가지 물음은 평생 그를 괴롭혔습니다. 고백록8권에서 자기가 어렸을 적에 동네 불량배들과 함께 저지른 배서리를 상세히 분석하면서 1600년 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찾아낸 학설은 지금까지도 이라는 문제를 푸는데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젊은 시절 카르타고에서 마니교에 곧장 빠져든 데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마니교는 페르샤의 조로아스터교에서 파생한 종교로, 세상을 선과 악 두 원리가 다스린다는 학설을 퍼뜨렸습니다. 젊은 혈기로 방탕하게 살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이 곧잘 저지르는 악행을 두고, 우주에는 어둠의 세력’, ‘악의 원리가 따로 있어서 사람들이 악행을 저지르게 만든다는 선악이원론에 솔깃했습니다. “악은 우주내의 실체다. 선한 신이 창조한 것 아니고, 선한 신과 맞서는 반대원리다. 인간도 두 영혼, 곧 한 의지와 악한 의지를 따로따로 갖고 태어난다.”는 마니교 교설은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뭔지 모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다른 본성이 죄를 짓는 것이요, 그래서 탓이 나에게 없다!” 핑계를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마니교에 빠져 살던 그 무렵을 “9년간의 세월, 곧 내 나이 열아홉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우리는 호리고 호리면서 갖가지 욕정에서 속고 속였다. 노골적으로는 학문을 내세워, 남모르게는 종교라는 거짓 이름을 내세워 허황하게 쏘다녔다.”(4,1,1)고 후회하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우선 세상은 선한 하느님이 만든 선한 피조물이다. 어둠이나 그림자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빛이 없는 상태이듯이 악이란 어떤 실체가 아니요 선의 결핍에 불과하다.”(7,12,18)는 플라톤 철학은 선악이원론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터주었습니다.

그러면 악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물음에는 그리스도교에서 답을 얻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 사람들이 구분 않고 쓰는 악이라는 말을, 사람들이 자행하는 도둑질, 거짓말, 살상 같은 윤리악(倫理惡), 사람들이 그저 당하는 재난, 질병, 죽음 같은 물리악(物理惡)으로 나누고서 앞의 것은 죄악(罪惡), 뒤의 것은 죄벌(罪罰)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죄악을 행하는 데는 의지의 자유의사가 원인이라, 우리가 악을 당하는 데는 저지른 악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원인이라고 들었던”(7,3,5) 것입니다. 자유의지에서 죄악이 발생한다는 학설은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악을 청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인류에게 줍니다. 우주를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면 누가 감히 세상의 악에 맞서겠습니까?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저지르는 의지도 선이고 그 의지로 저지르는 악행의 대상(도둑질하는 물건, 간통으로 얻는 쾌락, 살인으로 얻는 안전)도 자체로는 선한 것임을 유념합니다. 그렇다면 죄악은 의지가 악한 사물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악한 사물이란 당초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선 대신 악을 택하는 것도 아니며(악의 원리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단지 인간 의지가 보다 고귀한 선 대신 보다 낮은 선을 선택 결단하는 모순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나쁜 사물을 탐함이 아니고 보다 좋은 사물을 저버림이다. 그러므로 악이란 선을 남용함이다.”라고 결론짓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입교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셋째 물음의 답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인간은 스스로 마냥 타락의 길을 내달리고 하느님은 달려가거라! 내가 안고 오리라!”고 다짐하는 분처럼 나타납니다. ", 구불구불한 길이여! 당신에게서 떨어져나가면 뭔가 제가 더 나은 것을 손에 넣으리라고 바랄만큼 무엄한 영혼은 불행하여라! 그런데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그 자리에 계시면서 이리 말씀하십니다. 달려가거라! 내가 안고 오리라. 내가 데려오리라. 거기서 내가 안고 오리라!‘(6,16,26) 종교에서 은총(恩寵)‘이라고 부르는 얘기입니다.

진리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에 늘 발목을 잡았던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여자문제였습니다. 젊어서 공부하러 간 카르타고는 환락의 도시였고, “죄스러운 애욕의 냄비가 어디서나 나를 달구고 튀겼다.”(3,1,1)는 말처럼, 열여섯 나이에 여자를 하나 두고 있었습니다.”(4,2,2) 아프리카 타가스테 출신이 밀라노 황실 교수직에까지 오르자 모친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18년간이나 동거하고 아들까지 낳아준 여자를 내보내고는, 열두 살짜리 양가집 규수와 약혼을 합니다. 처녀의 나이가 결혼 적령에서 두 살이 모자라 기다리는 그 틈새를 못 참고 딴 여자를 두었다.”(6,15,25)고 자백합니다.

나는 참으로 가련하게도 청년시절부터, 저 청년시절의 끝장에서도 가련하게도 당신께 순결을 빌었으며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말은 이랬습니다. 나에게 순결과 절제를 주소서. 그러나 당장은 말고.’”(8,7,17) 퍽 솔직한 고백입니다.

고백록8권에는 밀라노 정원의 밤이라는, 고백록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격정적인 대목이 나옵니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내일 또 내일인가? 왜 당장은 아닌가? 어째서 바로 이 시각에 내 추루함이 끝장나지 않는가?”(8,12,27-28) 쓰리고 쓰린 자기 환멸에 통곡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이웃에서 어린애들이 부르는 동요를 듣습니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억누르고서옆에 있던 성경을 펴들고 눈에 들어오는 첫 구절을 읽습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마치 평정의 빛이 내 마음에 부어지듯 의혹의 모든 어둠이 흩어져버렸다.“(8,12,29)고 합니다.

자기를 단단히 옭죄던 사슬이 한순간에 툭 끊기면서 모든 애착으로부터 홀연히 풀려나던 체험! 이것이 모든 것을 하느님이 베풀어주셨다는 은총론으로 발전합니다.

 

5. 아우구스티누스의 우주찬가

 

고백록후반부 곧 제 11-13권은 하느님이 "어떻게 태초에하늘과 땅을 만드셨는지 알아듣고 싶습니다.“(11,3,5)라는 의도로 세계창조를 얘기하는 신앙고백에 해당합니다. 자기 한 생애에 진리에 도달하게 이끌어주신 은덕을 두고 하느님을 찬미하다 그 시선을 저 광활한 우주로 돌리면서 창조주 하느님이 삼라만상에 베푸신 선을 두고 감사를 드리는 우주 찬가’(宇宙讚歌)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조교리를 사변적으로 집대성한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우선 두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에 의하면, 세계는 우연히 발생한 사물도 아니고, 절대자 곧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유출물도 아니고, ‘창조주의 자유의사로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하늘과 땅은 우리 귀에 외칩니다. 우리가 존재함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는 우리는 없었다!’”(11,4,6)

둘째로, 물질세계도 우리 육체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절대자한테서 멀어지고 질료와 섞이면서 타락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선한 창조주의 선한 피조물입니다. 타락은 자유의지를 갖춘, 천사와 인간이라는 지적 존재가 고의로 저지르는 죄악일 뿐입니다.

그래도 우주가 저절로 생겼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따지는 얘기가 많아 일일이 답해야 합니다. 먼저,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구절을 두고 어떻게 만드셨느냐?”고 묻는다면 당신 말씀으로, 말씀만으로 만드셨다.”(11,5,7)고 답합니다.

무슨 재료로 만드셨느냐?”라고 따진다면 ()에서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언제 만드셨느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더냐?” 하는 익살스러운 힐문에는, 시간도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하늘과 땅을 만드심과 동시에 시간이 생겨났다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하느님이 무엇이 아쉬워 세계를 창조했느냐?”며 따지는 말에는 좋아서 만드셨다”, “생명을 피조물들에게 나누어주시려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만드셨다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불행과 재난과 고통을 두고 어쩌다 이따위 세상을 만들었느냐?”는 시비에는, 정작 세상을 만들어놓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더구나 참 좋았다.”고 하시던 성경 구절을 내세웁니다.

이 책의 첫 구절에서도 저자는 주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크게 찬양받으실 분이십니다. 당신의 권능은 크고 당신의 지혜에는 한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 당신 창조계의 작은 조각 하나가 당신을 찬미하고 싶어 합니다.”(1,1,1)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세계가, 사물이 만들어졌다는 말은 세계가 시간상으로 시초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까다로운 물음이 나옵니다. 철학사에서 시간을 진지하게, 본격적으로, 의식의 흐름에 연관시켜 사색한 인물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래서 많은 철학도들이 이 고백록11권에서 시간에 관한 철학 이론을 끄집어내왔습니다. 알아듣기 쉽지는 않으나, 우리도 한번 짚어 봅시다.

아우구스티누는 시간의 기원을 놓고, 시간도 하느님이 창조하셨고 하늘과 땅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시간이 생겨났다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하느님은 시간으로 보시거나 시간으로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시간상으로 보게도 만드시고 시간 자체를 만드시고 시간에서 살게 만들어주셨습니다.”(13,37,52) 하느님이 창조하신 사물이 시간과 공간을 갖추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시간을 갖추고 만들어졌으므로 시간을 알아채는 인간의 출현 이전에는 시간 개념이 무의미하다고 보았습니다. (현대 과학자들도 빅뱅이전 시간은 허수시간(虛數時間)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면 시간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그는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을 하면서 입에 올리는 것치고 시간보다도 친숙하고 잘 알려진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도 묻지 않으면 나는 압니다. 그런데 만일 묻는 사람한테 설명하려고 들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11,14,17)

스토아 철학자들은, 사물이 시간 안에서 움직이고 존재한다는 뜻에서 시간은 운동의 간격이라고 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은 영혼의 확장(擴張)”이라고 정의했습니다(11,26,33). 시간은 인간의 영혼 속에, 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시간 속에 살고, 하루 이틀 사흘 등으로 시간을 재고, ‘순간’, ‘잠시’, ‘오래라는 말로 시간 간격을 의식합니다. 하루 종일 시계를 보면서 살고 미래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가는 흐름처럼 시간을 감지합니다.

사람이 이래저래 측정하는 대상이 엄밀히 미래라는 시간은 아닙니다. 미래는 아직 없으니까요. 과거도 잴 수 없으니 이미 가버리고 없기 때문이죠. 그럼 현재는? 현재도 잴 수 없으니 현재라는 순간은, 엄밀히 말해서 잴만한 간격이나 폭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는 시간이란 외부 사물의 객관적 흐름이라기보다는 어떤 흐름을 파악하는 우리 정신의 흐름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 정신이 현시점에서 기억하면서 과거로 뻗어나가고, 예측을 하면서 미래로 뻗어 나가는 확장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그려내던 생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나 독자의 머리속에 현재하는 기억에는 떠오르고, 제가 이 다음에 얘기할 말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우리 머리속에 예상이 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라고 부르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현재, 현재에 대한 현재, 미래에 대한 현재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 셋은 영혼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다.”(11,20,26)라고 했습니다.

의식 안에서 내가 시간을 잰다. 사물들이 지나가면서 의식 안에다 만드는 작용, 그것들이 지나가버린 다음에도 의식에 남는 그 작용을 내가 재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시간을 잴 적에는, 지나가버린 사물들(이것들은 작용이 일어나게 만들고서 지나가버릴 뿐이다)을 재는 것이 아니고 현전하는 그 작용을 잰다. 그러니 이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다.”(11,27,36)

시간에 관해서는 철학자들이 참으로 많은 얘기를 하였지만,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11권에서 시간은 창조와 더불어 생겨났으며 사물의 한 차원이라는 것, 시간은 인간의 의식이 파악하므로 시간을 인간 의식의 확장이라고 정의했다는 두 가지 점만 짚고 넘어갑시다.

 

6. “사랑의 문명”: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메시지

 

지난 세기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데올로기에 의한 전쟁명분 곧 동서냉전이 끝나고서도 지구상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고향과 조국을 잃은 실향민이 전 세계에 40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예고한 문명의 충돌인지 모르지만, 지난 10년간 중동에서 백만 여명의 아랍인 남정들이 죽고 백만 여명의 과부가 생기고 3백만 여명의 고아가 생기고도 전쟁의 참화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많은 침략전쟁을 정의의 십자군이라고 부르는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알라의 이름으로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정면충돌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자비와 화해를 가르치는 세계 대종교 둘이 실제로는 인류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생각 있는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중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전 마지막까지 저버리지 못하던 집착, 여성에 대한 애욕을 성찰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터득했습니다. “물체는 제 무게의 중심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운다. 제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는다.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내가 끌려간다.”(고백록 13,9,10)는 이치입니다.

그는 고백록첫머리에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근본물음을 던졌습니다. “인간이란 그 자체가 실로 위대한 심연深淵입니다. 주님, 그리고 당신께서는 그머리카락까지 세어 두고 계십니다. 하지만 인간의 성정과 마음의 움직임보다 그 머리카락은 세기가 훨씬 쉽습니다.”(4,14,22). 그리고 고백록을 마치면서 인간이란 사랑이다!”라는 답변을 찾아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다!”라는 신약성경에서 끌어낸 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람은 하느님을 닮게 만들어진,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사람은 사랑이다.”라는 삼단논법입니다.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대상을 감싸고 색칠하고 그저 좋아하게 만든답니다. 인간 개인 의지와 집단 의지를 사로잡고 움직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옛 그리스인들은 대상이 무엇인지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잘못은 진실을 몰라서, 무식에서 온다는 생각입니다. 그 대신 아우구스티누는 사랑하면 그 대상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랑이 진실을 보게 한다, 사랑이 진리를 알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7,10,16)

 

고백록에 뒤이어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을 간추린 위대한 저작이 신국론(神國論)입니다. 서기 410년 고트족 알라릭왕이 로마를 점령하고 수주간 약탈과 방화, 학살과 파괴를 자행하며 대제국 로마의 멸망을 예고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비크리스천들은 조상전래의 신들을 배반한 그리스도교에 책임을 묻고, 크리스천들은 세상 종말이 온 것처럼 절망하며 낙담합니다.

아우구스티누는 그 기회에 신국론을 씁니다. 역사는 맹목적 운명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느님과 인간, 두 개의 의지가 인생과 역사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사랑인 하느님과 사랑인 인간이 역사의 두 주역이기 때문에 역사는 파멸하지 않는다고 외칩니다. 세상을 하느님이 만들어 놓고 떠나버리신 것이 아니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세상이 존속한다.”(4,12,18)고 외칩니다.

그 책에서는 태초의 신화에 등장하는 천사로부터 지상에 맨 마지막으로 태어날 인간까지를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패로 가릅니다. ‘하느님의 나라지상의 나라로 갈라 세웁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가릅니까? ‘사랑으로갈라 세웁니다. 인간의 본질이 사랑이므로. “인간은 필히 사랑으로 필히 끌리기 마련이므로, 각자가 품은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알고 싶은가? 그 사람이 어디로 끌려가는지 지켜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본질이라는 사랑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둘로 나눕니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 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 하나는 상위의 도성을 생각하여 공동의 유익에 봉사하는데 전념하고, 하나는 오만불손한 지배욕에 사로잡혀 공동선마저도 자기 권력 하에 귀속시키려는 용의가 있다. 하나는 이웃을 다스려도 이웃의 이익을 생각하여 다스리지만 하나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스린다. 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두 도성을 가른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보기에 하느님 나라라는 종교적 이상 곧 구원받는 집단에 속하느냐 여부는 각자가 신봉하는 종교 신앙보다 각자가 품고 사는 사회적 사랑으로 정해집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못질 된 두 팔, 안으로 굽히려 해도 굽힐 수 없는 두 팔로 상징되는 사랑입니다. 그 대신 팔이 안으로 굽는 사사로운 사랑은, 각자가의 종교신앙과 무관하게 지상의 나라에 속할 뿐입니다. 개인으로든 인류 집단으로든 사회적 사랑으로는 구원을 받고 사사로운 사랑으로는 멸망한다는 경고입니다.

인류의 위대한 지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고 외쳤습니다.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구둣발로 목을 죄어 반대자의 목소리가 안 나오게 한다고 해서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라고도 했습니다. 강도들도 저희끼리는 의리를 지키고 장물을 나눌 줄 안다는 말입니다. 정의를 확립하지 못하는 권력은 사법권이 없다!”는 말도 했습니다.

수도자요 성직자였지만 엄한 금욕의 도덕을 펴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르친 도덕은 다음 한 마디로 간추려집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누구를 사랑하면, 더구나 사회적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이념을 넘어, 지방을 넘어, 종교 신앙을 넘어 팔을 넓게 뻗어서, 팔을 밖으로 뻗어서 타인을, 타지방 사람을, 타민족을 끌어안는다는 사랑의 윤리를 폈습니다. 상대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예컨대 추풍령 너머, 휴전선 너머, 국경 너머에 산다고 해서 마냥 멸시하고 수탈하고 죽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1600년 전에 살다간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이 지금도 읽히는 것은 그가 외친 사랑의 문명에 귀가 솔깃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