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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연단문화의 안과 밖] 서양 고전과 그 역사적 의미 [22]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과 신국론

 

2020년 10월 17일 

네이버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열린 연단문화의 안과 밖] "서양 고전과 그 역사적 의미"라는 제목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신국론을 개괄하는 강연을 행하였다. 

공개강좌였지만 코로나 사태로 자문위원단 교수님들만 임석한 가운데 강연과 녹화가 이루어졌고 

뒤이어 토론도 행해졌다. 강연문을 이하에 싣는다. 


* 강연과 토론은 다음 사이트에 올려져 있다.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43592&rid=2956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과 신국론



들어가는 말

 

0.1. 지금의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수라카스라는 마을, 1600년 전에는 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타가스테 라고 부르던 마을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비록 내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소싯적부터 조그만 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서간 3,6)라는 회고에서 그의 조숙한 시선은 모든 사물과 사건을 절대지평絶對地平이라는 배경에 놓고서 그 사물과 사건의 뒤편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목말라 마시는 한 모금 물이 끝없는 바다를 그에게 떠올렸듯이눈앞의 잔 꽃송이 하나를 눈여겨보는 놀람아름다운 여체에서 누리를 향락순간순간 우리가 감지하고 문득문득 깨닫는 모든 지식에서 그는 한 가지를 간파하였다인간을 안달하게 만다는 저 갈증저 경이저 지식의 쾌락이 모두 탐스럽지만 그 어느 것도 인간에게 그만하면 됐어!”라고 할만큼 만족스럽게 채워주지 못함을 예감하였다.

 

0.2.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리스 그리고 키케로 이후 가장 방대한 저작을 남긴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활동은 현재까지도 100여권이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다. 그 많은 저작 가운데 절대자를 만나는 인간의 길로 간주되고 이우구스티누스의 주저로 평가되는 삼부작三部作이 있다교부가 자기 개인 인생 역정에서 진리라는 절대자를 추구하여 만나고서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으로 섬기게 된 길을 묘사한 고백록」 Confessiones(397년작인류가 그 역사의 도정에서 신과 합작하여 지상에 하느님의 도성’ 곧 신국神國을 설계하는 신국론De civitate dei(427), 그리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이어받아 인간과 그 존재근거인 신을 탐구하면서 신의 모상인 인간homo imago dei의 의식과 기억과 사랑을 분석하여 그리스도교의 근본교리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신비에 접근하면서 당대까지의 가장 심도 있는 인간학人間學 저술을 남긴 삼위일체론De Trinitate(426)이 그것이다. 본 발표는 인간의 개인적 집단적 의지가 개인의 윤리악과 집단의 사회악을 인지하고 극복해 나가는 단일한 축에서 고백록과 신국론을 개괄적으로 고찰할 것이다.

 

 

1.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1.0. 고백록

 

생전에 100여 권이 넘는 저작을 남기고서도 아우구스티누스 본인이 "내 작품 중의 그 어느 것이 고백록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고 자부할 만큼 이 책을 자기 대표작으로 여기고 있었다사실 성경을 제외하고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제일 많이 읽혀 왔고 지금도 읽히는 책자다고백록은 서양 고대세계가 끝나는 즈음 나온 서구 문학의 최초의 본격적 자서전自敍傳이면서도 철학계에서 고중세 최초의 실존주의’ 저서로 간주되므로 오늘날에도 세계문학전집에 필히 들어가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백록에 나타나는 다채롭고 풍부한 문학적 철학적 신학적 주제들 가운데서 연사는 몇 가지에 언급을 국한시키고자 한다먼저, ‘진리의 연인戀人이라 불릴만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진리 탐구의 열정을 짧게 소개하고둘째생자필멸의 유한한 인간이 터무니없게도 영원한 생명을무한한 행복을 동경하는 것은 인간 지성이 모든 사유와 욕구를 절대적 차원까지 확장하기 때문이고따라서 영원하고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 곧 신까지도 그 지성으로 내포內包할 역량이 있는homo capax dei 존재라는 자기의식에 도달했다는 점을 언급하겠다세 번째로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 직면하여 반사적으로 던지는 라는 물음그것도 고보다 악곧 인간이 자신과 타인들에게 자행하는 악에 관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찰을 반추해 보고 싶다그것도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의하면 선한 신의 선한 피조물 인간에게 신이 베풀어준 가장 큰 선물인 자유의지로 도대체 어떻게 악을 저지르느냐 하는 수수께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1.1. 아우구스티누스, ‘진리의 연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열아홉 나이에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라는 책을 읽고나서 내가 나에게 커다란 수수께끼가 되고 말았고”(factus eram ipse mihi magna quaestio: 고백록 4,4,9) “인간 자체가 위대한 심연”(grande profundum est ipse homo: 4,14,22)이라는 자각이 들면서 그 심연을 바닥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에 휘말리게 된다그 책에서 그를 갑자기 사로잡은 한 마디, ‘진리라는 단어가 그의 일평생을 휘어잡고 말았다진리여진리여저 사람들이 그렇게도 흔하게 그렇게도 다채롭게때로는 소리로만 때로는 많고도 커다란 책자로 당신을 말소리로 드러낼 때에내 영혼의 골수가 얼마나 당신을 속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습니까!”(3,6,10)


한때 회의론懷疑論에 함몰된 적도 있었지만인간이 "진리를 찾아내려는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이상 진리가 존재 않는다고 의심하기보다는 차라리 내가 살아있음을 의심하는 편이 훨씬 쉽다.”(7,10,16)는 논지를 펴고서 내가 속는다면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라는 명제를 남겼다. 그리스인들의 주지론主知論에 대비하여 그는 사랑이 진리를 알게 한다(caritas novit veritatem)는 주의론 명제를 내세웠다.


그날부터 정체모를 그 진리에 당신이라는 호칭을 붙인 뒤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1,1,1)라고 한숨 쉬면서 그의 생애는 말 그대로 진리를 향한 달음질이 되었다그의 저술들을 읽는 독자라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지성이 형광등처럼 차가운 지성이 아니라 시뻘건 불꽃을 넘실거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사루는 불길을 느끼리라. 그리고 그의 나이 서른세 살에 그 진리에다 하느님이라는 종교적 호칭(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바치기에 이르자 그는 선언한다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독백 1,1,5) 과연 이후 44년간 수도자성직자영성가로서한 시대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이 언약을 실천하면서도 남은 여생을 두고 그가 끊임없이 되뇌던 탄식일종의 철학적 유언이 있다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sero te amavi)이토록 오래되고 이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고백록 10,27,38)

 

1.2. ‘인간신을 포괄하는 존재’(Homo capax dei)

 

한 잔의 물을 보고 바다를 상상하리만큼’ 조숙했던 저 철인은태생적으로 인간은 무한하고 영원한 무엇을 목말라하고 찾아 헤매고또 욕심내는 것을 기어이 손에 넣어야(frui) 행복해진다는 사실순간순간을 갈아가는 시간적 존재이면서도 역사의 기원과 종말을 통시적通時的으로 고찰하는 능력다시 말해서 유한한 피조물이면서도 사유하는 그 오성은 사유된 모든 대상을 둥그런 스크린 안에다 한정지어 버리는 능력어쩌면 무한한 신마저도 자기 지성으로 포괄包括하고 마는 능력(capax dei)에 스스로 경악하고 이 사유방식을 일평생 고수한다.


유한자로서 인간이 무한자를 탐구하는 본성을 관찰하면서 인간은 최고의 자연본성[]을 포괄할 역량이 있고 최고의 자연본성에 참여할 수 있는 위대한 자연본성이다라고 단정하였고그 존재론적 근거를 유대인들이 창작해서 인류사회에 전승시킨 성경에서그것도 그 첫권 창세기첫 장에서 인간을 정의한대로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점에서 하느님을 포괄할 만하다는 점과 하느님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모상이다.“라고 단언하기에 이른다전세계 모든 민족에게 종교가 있고 신들의 불사불멸을 질시하여 자기들도 적어도 사후의 불멸을 얻고 싶어 하는 욕망이 인류 전반에 깔려 있다면하느님이 선사하시어 인간 본성이 불사불멸을 포괄할 능력이 있는 이상불사불멸을 원하는 사람이 잘못 원하는 것이 아니다불사불멸을 포괄할 능력이 있지 않다면 행복을 포괄할 능력도 없다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우선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잠정적 결론이었다.

 

1.3. 의 형이상학

 

고대 그리스 문학은 인간이 지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고통과 행악을 상상해내면서 훌륭한 비극작품들을 후대에 남겨고해苦海에 던져진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마치 당해서는 안 될 무엇으로생자필멸의 이치를 알면서도 자기는 죽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의식하는 심리적 기제가 어디서 유래하는가를 절실하게 고민하였다인간은 왜 를 인과응보로 체념 않고 이의를 던지는가악은 타인들과 자연현상에서 당하면서 정작 질문은 왜 신들에게운명에다 던지는가그리스-로마 비극작가들은 흔히 인간의 행복과 성공을 못 보아 넘기는 신들의 질투’(invidia deum)나 인간의 사소한 실수도 용납지 못하고 과도한 징벌을 가하는 신들의 분노’(ira deum)에 손가락질함으로써 그것들에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인간들에게 깊은 연민과 동정을 보여왔다.


그런데 안식일’ 제도와 더불어 죄의식罪意識이라는 정신문화를 인류사회에 제공한 히브리인들의 종교와 접한 다음에야 비로소 인류는 인간이 개인적이나 집단적으로 저지르는 악의 가공스러움과 비극성을 바닥까지 들여다 볼 안목과 용기가 생겼다인간 지성이 신마저 사유의 외연外延으로 포괄할 만큼 위대한 심연이라면고통과 죄악이라는 이 심연도 들여다 볼 만한 능력이 있을 것이고아우구스누스야말로 인류사상 악의 문제에 가장 심각하게 의문을 던지고서 나름대로 얻은 대답을 고백록에서 문학적으로 술회한 작가이기도 하다우선 이 책에서 세 가지 논지를 연역해낼 수 있다.

 

1.3.1. ‘와 의 구분

 

현대 서구문화의 두 주류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합류지점이라고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악을 규탄하는 인간의 비극은 인간의 책무를 부각시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신적 자비와 은총을 입어 악의 척결을 모색할 것인가 고민하는 방향으로 변한다헬레니즘 문화에서는 아무도 알고서 죄짓지 않는다’(nemo gnoscens peccat)는 전제에서 악은 고의 일부였고 정화淨化 개념은 있었지만 존재론적 죄책罪責은 미약했지만 히브리인들에게서 사유의 초점은 에서 으로 옮겨진다선한 유일신의 선한 창조계에서 악의 문제와 그 신비가 죄罪 개념 없이는 제대로 해명되지 않는 까닭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일반적으로 와 거의 동치되던 을 구분지었다생로병사의 형태로 겪는


’ 곧 물리악’(poena peccati 곧 죄벌罪罰이라고 불린다)과 인간이 의도적으로 자신과 타인들에게 자행하는 을 윤리악(malum peccati 곧 죄악罪惡이라고 불린다)으로 구분하고서 피조물 인간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서 죄악罪惡의 발원을 끌어냄으로써 선악이원론(마니교 논쟁)과 에피쿠로스 딜레마를 극복한다.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선의 결핍에 불과하다선한 사물의 부패에 불과하다.‘ ’간통절도살인은 쾌락과 재산취득과 자기 보존이라는 선을 얻으려고 자행되며쾌락이나 취득이라는 작은 선을 얻으려고 혼인의 신의나 시ᅟᅵᆫ의 뜻이라는 더 큰 선을 파괴하는 자기모순에 악의 본질이 있다!‘ ’인간 의지가 악을 저지름은 무에서 창조받은 데서 기인하고 최고선이 아니고 중간선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는 신플라톤 철학이 이미 수립한 해명이었다.


창조주가 부여한 자유의지의 악용으로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악이 승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하느님은 지상에서 저질러지는 악행을 조성하는 분auctor이 아니고 악으로 무너진 질서를 정의와 자비로 바로잡는 분ordinator이라고 답변한다하느님의 의지는 패배를 모른다(voluntas dei semper invicta). 사람들이 하느님의 의지에 반해서 행동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의지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단지 위대한 선최고선을 상실하는 경험그래서 죄벌이라는 악을 무릅써야 하는데자기에게 선물로 주시는 분의 자비를 경멸한 탓으로 형벌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분의 위력을 경험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그러니까 하느님의 의지는 언제나 불패不敗하는 의지다.” 여기서 새로운 점은인간 의지에서 악이 발생한다면인간 의지의 개인적 집단적 발휘로 악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이다헤브라이즘이 술회한 역사적 경험곧 구세사救世史로서의 역사라는 민족적 체험으로는인간과 신의 합작또는 육화肉化한 신인神人의 중재로 구원이 가능하다.

 

1.3.2. 배나무에서 무화과나무까지 (인간의 초인超人 의식)

 

악은 인간에서 유래하였다그것도 개인적 집단적 의지에서!” 이 해답이 아무리 억울하게 들리더라도 두 가지는 가능해진다적어도 인류의 개인적 집단적 노력으로 악을 청산하는 일따라서 지상에서 인류사회에 발생하는 인생고人生苦 대부분을 해소하는 일이 가능해진다악의 원리가 선의 원리와 더불어 우주와 인생을 지배한다면 사멸할 인간이 무슨 수로 악을 이긴다는 말인가선악이원론이나 숙명론에서 해답을 찾지 않고 악의 기원이 피조물(천사와 인간)의 자유의지에 있다고 규명함으로써인간은 신들의 변덕스러운 자의恣意에서 유래하는 인생고의 희생물犧牲物에서 악을 극복하는 해결자解決者의 위치로 바뀐다질문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의문은 선한 신의 선한 피조물 인간이 신이 선물한 선한 자유의지를 악용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의문으로 변한다.


고백록을 읽는 독자들에게그리스도교의 가장 위대한 교부敎父가 평생을 두고 악의 문제를 천착한 계기가 열여섯 살에 저지른 배서리였다면 믿어질까?(고백록 제2유희에 빠져 진지함의 절도를 넘어서서 갖가지 감정의 허랑방탕함 속으로 고삐가 풀린(2,3,8) 타가스테 일진들이 밤이 이슥해 이웃집 배나무를 싹 털었다그러고서 그걸 자루에 담아다 돼지들에게 던져주었다!(2,4,9) 맛있게 먹자는 쾌락도팔아서 돈을 벌자는 이익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저지를 악이 있다니나의 도둑질내 나이 열여섯 살에 밤중에 저지른 나의 저 죄악이여가련한 내가 너 안에서 사랑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더냐?”(2,6,12)


불혹의 나이가 되어 그 시절의 치기어린 장난을 회상하던 그에게 악을 악으로 즐길 수 있다는 신기함에 사로잡히면서 인간이라는 심연이 들여다보였다(2,4,9-10,18). 그 과일은 아름다웠습니다만 가엾게도 제 영혼은 열매 자체를 탐하지 않았습니다저한테는 더 좋은 과일이 얼마든지 있었고 훔친 것들은 그냥 버렸습니다그저 도둑질을 하고 싶어서 그랬습니다저는 과일을 서리해서 그냥 버렸으니 제가 배불리 맛본 것은 오로지 악의惡意뿐이었고그 악의로 하는 도둑질이 재미있었습니다하느님지금 저는 도둑질에서 저를 재미있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묻습니다그런데 보십시오실상 아무 멋도 없습니다.”(2,6,12) 저 순간 그 마음이 대체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그저 악인이 되고 싶었고 제 악의의 원인은 악의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그 악의가 추잡했고 저는 그것이 좋았습니다자멸하기가 좋았고파렴치하게 무엇을 탐한 것이 아니라 파렴치 자체를 탐하는 영혼이었습니다.”(2,4,9)


여기서 그의 고찰은 본격적인 악의 신비로 넘어간다해서는 안 될 짓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니그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니과연 그럴 수가 있습니까?”(2,6,14) 인간은 피조물이다피조물의 자유의지는 창조주가 제시하는 선에 동의同意하는 여지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미로’ 악을 감행할 적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가 곧 선이다!’라는 초인超人 사상이 엿보인다예를 들어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의 본질은 교만驕慢인데문제는교만조차도 지고함을 본뜨는 무엇당신 홀로 만유 위에 지존하신 하느님을 본뜨려는 무엇(2,6,13)이라는 생각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뇌리를 스친다.


다만 그 불손한 모방은 하찮은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의 전능을 흉내 내는 음울한 모방일 수밖에그러니까 당신을 거슬러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은 모조리 당신을 본뜨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저 도둑질에서 제가 좋아한 것은 무엇이며비록 못되게 또 비뚜로 본떴다고 할지라도 저의 주님을 어떤 방식으로 본떴다는 말입니까제가 능력으로는 당해낼 수 없으니까 속임수로라도 당신의 법에 대항해서 그 짓을 저지르고 싶었던 것입니까아둔하게 전능을 모방하고서는안 될 짓을 하고서도 벌을 받지 않으니까포로가 되어서도 기형이나마 자유를 모방했다는 말입니까?” (2,6,14) 일찍이 낙원에서 인간을 유혹하던 악마의 음성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창세 3,5)는 속삭임이 귓전을 울렸다. 물론 그렇게 도덕적 질서를 어긴 모든 영혼은 본인에게 자기 벌이 된다(1,1219)는 사실을 모르지 않고 모든 죄는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파괴한다는 명제는 고백록」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그런데 교부의 눈에 바로 그 모방에 구원도 있었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당신을 본뜨고 있을지라도 그자들은 당신을 떠나서 갈 곳이 도대체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킵니다.”(2,6,14) 선행에서는 물론 모든 악행에서도 인간이 무의식으로 추구하는 바는 하느님이라는 절대선이었다죄악마저도 무구함을 동경하고 하느님 안에 안식을 찾는 몸부림이었다인간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점 때문이었다누가 있어 이처럼 비비꼬이고 얼키설키한 실타래를 풀어내겠습니까더럽습니다거들떠보기도 싫고 들여다보기도 싫습니다당신을 원합니다선량한 눈에 아름답고도 멋진 무구함이시여만족할 줄 모르는 만족감으로 당신을 원합니다.”(2,10,18)


인간이 왜 악을 저지르는가 하는 범죄의 심리를 최초로 천착한 사상가가 어려서 배서리를 해본 심보(2)로 미루어교부가 어림잡아 풀어놓는 해명은 이렇다선과 악은 신이 정하고 피조물은 따라야 마땅하다그런데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라며 지어낸 종족이 하느님을 거슬러 하느님을 본뜨는(2,6,14) 방자한 짓이 신에게는 오히려 대견하지 않았을까달려가거라얼마든지내가 안고 데려오리라!”(6,16,26) 하던 신의 자신감이며인간에게 그 위험한 자유의지를 주어 세상에 악이 창궐하게 허락하는 모험심이라니개인이든 전 인류든 구원의 역사는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되만드시는 당신의 손길(5,7,13) 곧 생산자 책임을 절감하는 창조주의 리콜’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은총의 박사다운 결론이었다.

 

1.3.3. 하느님의 승부욕과 하늘 사냥개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깊은 자국을 준 것은 우정이었다여자에게서든 남자에게서든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제일가는 행복으로 여기던 아우구스티누스 곁에는 늘 친구들이 있었다육체적 쾌락이 제아무리 넘치더라도 친구들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던 기분... 친구들만은 무작정 사랑했고 아울러 그들에게서 제가 무작정 사랑받는다고 느꼈습니다(6,16,26)는 고백처럼그가 주고받은 서신 중 300편 넘게 지금까지 간수될 정도다우정에는 이성으로도 확실하게 밝힐 수 없는 신비로운 무엇이 있었다.” 그래도 일평생 속을 터놓고 지낸 고향친구 알리피우스가 가장 가까운 인물로 꼽힌다스물한 살에 잠시 고향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해에 그는 깊고 달콤한 우정을 맛보았다너무도 사랑스러웠고 또래인데다 청춘의 꽃으로 함께 피어오르던 벗을 만났다제 일생의 모든 환락 가운데서 가장 달콤한 우정(4,4,7)이라고 회고한다로마인들은 친구를 자기 영혼의 반쪽이라고 했다그러던 우정이 겨우 한 해를 다 못 채웠는데 죽음이 그를 이승에서 거두어가버렸다고백록」 4권 전반부는 사랑하는 벗과 사별한 아픔을 하도 적나라하게 묘사하여고전문학에서 빼어난 우정론으로 꼽힌다(고백록 4,4,7-8,13).


그때 제 마음은 크나큰 고통으로 암울했으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죽음뿐이었습니다고향은 그야말로 형극이요 아버지의 집은 기괴한 불행이었으며 그와 함께 했던 모든 것이 그가 사라짐으로 해서 거대한 고문으로 변해버렸습니다그를 간직해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이 미워졌습니다.”(4,4,9) 벗의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평안도 없고 분별도 없이갈기갈기 찢기고 선혈을 흘리는 영혼을 끌고 다녔으며영혼 둘 곳을 찾아내지 못하던(4,7,12) 나날에서 아우구스티누스로서는 자기가 자기에게 커다란 수수께끼(4,4,9)가 되고 만다하느님 당신을 향해서 저희를 만들어놓으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안달을 하는(1,1,1) 인간이기에인간을 인간답게 사랑할 줄 모르는 광기인간사에 절도 없이 안달하는 어리석음(4,7,12)을 문득 체득한다인간에게 지상사물은 사용하는’(uti) 대상이고 하느님만 인간이 궁극적으로 향유할’(frui) 대상이기에 무릇 사멸하는 사물들에 대한 우애에 사로잡힌 마음은 모두 불행하고사랑하던 것을 잃고 나면 비참을 느끼지만그것들을 잃어버리기 전에도 이미 그것으로 비참한 법(4,6,11)임을 감 잡는다이치는 분명했다만물의 창조주 하느님저 모든 것으로 저의 영혼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시되사랑으로 그것들에게 끈끈하게 들러붙지 않게 해 주십시오그것들은 가던 곳을 향해서 가게 마련이고 가던 곳이란 비존재를 향해서입니다영혼은 그런 사물 안에 존재하고 싶어 하고자기가 사랑하는 그 사물들 안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그것들에는 안주할 만한 어디라고 할 것이 없으니 머물러 서지 않는데도 말입니다.”(4,10,15)


이처럼 친구 잃은 참담한 슬픔과 비통에서 어떤 섬뜩함을 느꼈고 그 섬뜩함을당신에게서 달아나는 도망자들의 등 뒤를 바싹 쫓으시는 복수의 하느님의 묘한 솜씨(4,4,8)라 불렀다그분 말씀이 폐부에 박혀 있어서 어디로나 그분께 포위되어 있다는 실감(8,1,1), 현대 영국 시인 프랜시스 톰슨이 묘사한 하늘 사냥개의 콧김을 목덜미에 느끼고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는 항복!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시 의문에 싸인다. ‘온갖 과일나무가 밀림을 이루는 낙원에서 딱 한 그루만 따먹지 말라는 금령은 왜 내렸을까자유의지라는 것은 뭣 때문에 갖추어주었을까?’ 우스개로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천상에 자문회의가 열렸단다진흙으로 손수 빚으신 사람에게 콧김을 불어넣으시면서 천사들에게 있는 자유의지를 사람에게도 나눠줄 것인가 물으시자 자유의지의 악용을 우려하여 천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더란다. 천사들의 극구만류에도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을 하느님달려가거라내가 안고 오리라내가 데려오리라거기서 내가 안고 오리라!”(6.16.26) 하시는 자존심이 그를 놀라게 한다. 그래선지 그가 하느님께 드리는 말투는 좀 외람되게까지 들린다도망쳤습니다지켜보시는 당신을 안 보겠다고 도망쳤고스스로 눈멀어 당신께 거역하겠다고 도망쳤습니다.... 악인들이 불안하면 떠나가고 당신께로부터 도망치게 놓아두십시오당신의 얼굴을 피해 달아났을 적에 과연 어디로 달아났습니까?”(5,2,2)


아우구스티누스가 회심 직전 불만스럽고 죄스러운 처지에서 빠져나오고 싶다 면서도 한사코 미적거리던 심경(고백록 8)은 현실인간으로서 하고 싶다와 할 수 있다’(velle et posse) 사이의 엄청난 거리를 실감케 하고인간이라는 심연 속에서 일어나는죄의 율법과 신의 율법의 투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입으로는 주님어서 하십시오몰아세우십시오불러주십시오타오르게 만드시고 끌어당겨 주십시오달구어 주시고 애무해 주십시오사랑하게 해주십시오치닫게 해 주십시오!”(8,4,9)라고 호소하면서 내심의 기도는 그러나 금방은 말고(8,7,17)였다주님이 기도를 당장 들어주실까 두려웠단다.

 

1.3.4. “Eloi, Eloi, lemmasabacthani!”

 

고백록」 8권에 이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 삶에서 얻어낸악에 관한 네 번째 답이 나온다명예욕과 색욕을 떨쳐내고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어떤 손길천둥벌거숭이 인간들에게 자비를 한없이 투자하는 하느님의 모험심 내지 승부욕을 간파한다사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기에절망한 영혼의 구원을 두고보다 큰 위험에서 구출된 영혼의 구원을 두고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까?”(8,3,6) 적이 어떤 사람을 보다 철저히 장악하고 있고 그 어떤 사람을 내세워 보다 많은 사람들을 장악하고 있는 터에 그 어떤 사람이 패하고 만다면 적의 패배가 그만큼 큰 법인가요?”(8,4,9) 애초 당신과 비슷하게 만든 조물이기에 감히 당신과 같아지려는 몸부림마저 대견해하는 창조주그래서 타가스테 포도밭 옆집의 배나무에서 시작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은(악의 문제를 두고 속고 속이는 마니교에 떨어져 8년의 긴 세월을 외돌기는 했지만밀라노 정원의 무화과나무’ 밑에서 집어라읽어라!”는 동요童謠로 끝을 본다낙원의 선과 악을 아는’ 나무 밑에서 출발한 인류의 역사가 골고타의 십자나무’ 밑에서 대단원을 보듯이!


문제는 전능한 신의 승부욕이 보여주는 결말이악의 문제를 두고 ?’라는 의문을 던지는 그리스도인들의 파토스를 클라이막스로 내몰아친다는 사실이다승부를 위한 도박에는 결국 모든 것을 걸게 된다그 승부의 절정은 갈바리아 언덕에 세워진 십자가와 거기 매달린 신의 아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Eloi, Eloi, lemmasabacthani(“저의 하느님저의 하느님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십자가는 악 앞에서 완전하게 패배한 신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당신의 승부에 모든 것을 건 사랑의 도박으로도 보인다그리고 그리스도의 비명에서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비극의 파토스는 절정을 이룬다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된 십자가는 죄악의 심각성과 고통의 절박성을 최고조로 부각시키면서당신 아들의 몸에서 악을 몸소 당함으로써 그 악을 이기려는 신의 해법이 엿보이는 까닭이다.


의 문제에서도개인적 집단적 고통을 당할 적마다 ?’를 묻는다극도로 고통스러운 단말마 속에서 신의 아들의 입에서마저 뱉아진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하던 비명의 그리스어 원문 pros ti?가 본래 어째서?[뭘 잘못 했다고?]’라는 항의인지, ‘어쩌자고?[뭘 얻어내겠다고?]’라는 확인인지 모호한 그대로 남겨진다열반에 든 부처님의 해탈한 미소에서 고체苦諦의 해답을 얻는 불자들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죄수로 처형당한 시신이 매달린 십자고상十字苦像을 성당에집집에 달아 걸고심지어 목걸이로 매고 다니는 그로테스크한 시위에서 고에 대한 의미물음은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극한으로 확대되었다!

 

 

2.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2.0. ‘로마의 평화’pax Romana의 붕괴

 

현대인류는 서기 제3천년기Tertium Millennium를 맞으면서 세계평화와 인류공존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인 바 있다베를린 장벽과 더불어 동구권 현실사회쥐의 세력이 무너지면서 서구사회가 의존하던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가 영속하리라는 서구인들의 신념도 그만큼 고조되었다그러나 2000년대 둘째해가 닥치자마자 미국의 심장부 뉴욕그것도 미국의 세계경제 패권의 상징물인 세계무역센터가 9월 11일 항공기 공격으로 붕괴되면서 서구인들의 정신적 충격이 얼마나 심대했으면 그 보복이아프가니스탄의 전화이라크 훗세인과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빈라덴의 사살과 IS 등장과 퇴조 속에아랍권 전체를 폐허로 만드는 중이다.


단일한 초대강국의 무차별한 군사행동, UN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제정치와 세계윤리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리는 횡포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인류 지성계의 심각한 번뇌는 1700여년전 로마의 한 지성인이 쓴(A.D. 413~427) 최초의 역사철학서 신국론De civitate dei이 현대에도 읽힐만한 명분을 제공한다.


서기 410년 8월 24! ‘영원한 도시 로마’Roma aeterna가 처음으로 비시고트족 알라릭의 군대에 함락 당한다. B.C.753년을 건국의 해로 계상하는 제국의 신민들에게는 1000년 넘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거대한 화염 속에 붕괴되는 조짐이었다(과연 그 뒤 반세기만에 서로마제국은 멸망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치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붕괴하는 로마제국의 악취를 맡으면서 북아프리카를 모조리 초토화하고 자기가 주교로 있던 히포 항구까지 포위한 반달족의 함성 속에 430년 8월 28일 숨을 거두며 역사의 최종 지평선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거기 서려 있다.


단선적單線的이든 순환적循環的이든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도 인생도 불가해지는 까닭에사상계의 주도적 지성들은 역사가 어쩌면 논리적 구조와 일관성을 갖는다고역사라는 것이 개별적 집단적 인간 운명과 그 존엄성에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 역사를 인생과 인류의 스승으로 정의해 왔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통합한 서구문명은 인류사회의 연대年代를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의 출생을 전후하는 구분법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지금 대한민국에서도 사용하는 서기西紀는 배달겨레가 신봉해온 역산법이나 국민각자의 종교 신앙과는 무관하게, ‘그리스도 이전’[B.C. = Before Christ]과 그리스도 이후’[A.D. = Anno Domini ‘주님의 해’]로 햇수를 표기하는 산법을 쓰고 있으므로 은연중에 우리 민족도 아우구스티누스가 엮어놓은 신국神國 civitas dei의 연호에다 우리 민족사를 편입하고 있다.

 

2.1. 신국론에 묘사되는 하느님의 도성과 국가

 

2.1.1. 인류사人類史는 곧 구세사救世史

 

아우구스티누스가 집필한 것은 정치신학에 해당하지만 신국론에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국가와 국민의 개념그리고 국민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는 정의사상 등이 가술된다신국론의 요점을 든다면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므로, ‘공동선共同善에 대한 사랑이 국가를 구성하므로세계世界는 신과 인간에게 공통된 유일 공간이므로지상에서 인류에 의해서 전개되는 사건들 전부가 신의 의지와 인간들의 의지가 합작이므로그 국가 구성원들 간에국제사회에 정의롭고 질서 잡힌 평화가 정치를 존속시키는 필수조건이요 희망이라는 호소다.


그런데 지상에서 인간들이 조성하고 수호하는 그 공동선이 유한한 자원이므로 국가의 존립에는 내부로든 대외로든 불화와 투쟁을 내포하며 여기서 정치가 안고 있는 태생적 결핍이 전제된다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황실의 수사학교수로서북아프리카 그리스도교를 종교계에서만 아니고 정치적으로도 주도하던 주교로서 로마 제국과 황실 정치에 깊이 관여해 본 경험에 비추어 정치만으로는 개개인과 인류가 희구하는 공동선을 실현하는 환경이 불가능하다는 신념에서역사 속에 전개되고 있으면서도 역사를 초월하는 신국神國을 배경으로 설정하고서 현실 국가의 정치 체제를 부단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신국론을 집필하였다. ‘하느님의 도성’ 정도의 초월적이고 초역사적 기준을 이상으로 목전에 두어야만 현실의 어느 정체政體정권政權법제法制도 상대화하여 절대왕정제국주의 내지 전체주의에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이 저술의 현실적 동기는 오랜 세월 박해해 오던 그리스도교를 관용했을 뿐 아니라(313국교로까지 선포한(380죄상을 두고 본래 로마를 창건하고 수호해온 제신諸神들의 분노로 410년의 로마 함락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재앙이 발생했다는 여론이 기득권 지식인들에 의해서 급속히 유포되어 그리스도교계의 답변과 반박이 요구되었다는 사실과 연관된다아울러 일반국민을 격려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면서 로마인들이 이해할만하게 인간사人間事res humanae와 신사神事res divinae 전반을 집대성한 저작이 필요했었다.

 

2.1.2. 인간의 사회적 본성

 

고중세 서구사상에서 정치와 국가존립의 이론적 토대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이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관에서 유래한다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아마도 생명체들 가운데서 (악덕으로는 그토록 불화하면서도인간만큼 본성으로는 그토록 사회적인 종자가 없었다.“(신국론 12,28,1). 또 "인간이야말로 어느 모로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회관계를 맺고 평화를 달성하려고 힘쓰지 않는가더군다나 자기에게 소속되어 있는 한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확보해 주어야 하는 것으로 안다.”(19,12,2) 아울러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류의 단일한 역사를 상정하는 사해동포四海同胞 사상을 시사한 것은 그리스 스토아철학과 유대교경전에 실린 인류단원설과 유일신 신앙이었다성서에 의하면인류가 한 창조주에게서 기원한 한 조상에서 유래한다는 설화는 사람들이 단일한 인간으로부터 유래했고따라서 본성의 유사성에 의해 한 인류로 결속할 뿐만 아니라 혈연의 유대에 의해서도 조화로운 일치로 평화의 사슬을 이루는 것이 하느님의 원하는 바였다(14.1)라고 내세울 만했다인류단원설은 인간 모두가 가정과 부족국가와 국제사회를 이루는 혈연의 토대가 아무런 차별도 용인하지 않으며유일신 사상은 신의 통치가 모든 종족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들에게 미치고 만인이 신의 자녀요 평화로이 공존할 형제라는 대중적 설득을 마련하였다.


신국론을 전반부(1~10)와 후반부(11~22)로 나누고 후반부 두 단원(11~18)에서 구약 히브리민족사를 인류사의 서장처럼 서술하고서 뒤이어 로마사 1000년을 인류의 단선적 역사로 접속시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대구분이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흥미의 대상으로 그치겠지만로마사에서도 그가 접한 것은 라틴어로 읽은 로마사가들의 저서에서 국한되었다한정된 역사지식으로나마 당대 지성인들에게 부각시키고 싶었던 바는 본서의 제5(19~22)에서 인류가 역사의 도정에서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공동선共同善과 최고선最高善인류가 염원하는 정신적 사회적 평화平和 개념이다.


창조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사회적 본성에서 국가사회가 비롯했다면서도 신국론에서 역사를 추동하는 두 축에 따라서 지상의 도성과 하느님의 도성을 논하는 그의 국가관은 좀 비관적이다낙원에 살던 인류의 원조가 저지른 범죄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원죄설原罪說을 그리스도교 신학으로 정립한 인물답게아우구스티누스는 정치란 인류가 역사적으로 누적해 온 개인적 집단적 죄악의 상처와 폐해가 가장 현저하게 노출되는 영역임을 지적하여 정치는 인간이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을 극복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그러나 반달족의 침략으로 로마 제국이 북아프리카 전역을 상실하는 전화 속에서 그리스도교회도 아울러 몰락함을 목격하면서 현세에서 사회생활을 보장하는 평화를 수호하는데 국가는 결코 없어서는 안 된다면서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신자들에게 제시한다지상 도성도 평화를 구하고 시민들 사이에 명령하고 복종하는질서있는 화합을 도모하면서지상 사물들에 대해서 인간 의지들 간에 적절한 조정이 이루어지도록 시민들을 배려한다따라서 천상 도성도 지상 도성의 평화를 이용해야 하므로... 지상 도성의 법률에 순종해야 하며... 지상 평화를 천상 평화에로 귀결시킨다.“(19,17)

 

2.1.3. "국가는 공공의 것(res publica)이고 국민의 것(res populi)"

 

신국론에 나오는 국가의 개념은 제19(21-24)에서 신국神國과 공화국共和國을 결부시키면서 유념할 만한 구절이 하나 있다아우구스티누스는 키케로가 내린 정의에 따라서 공화국’res publica을 어원대로 공공의 사물이라고 정의하면서 공공의 사물은 곧 국민의 사물’res populi이라고 단언한다주권재민의 사상은 로마인들에게 일찌감치 친숙하였고 키케로에게 정의正義는 단순히 정치 생활의 규범으로 그치지 않고 국민을 구성하는 요소였으므로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공화국이 최고의 정의正義 없이는 통치될 수 없다.”(2,21,1) 고 단언하였다.


키케로에게 국가 또는 공화국이란 법정의法正義에 대한 합의’iuris consensus에 의해서 성립된다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법정의의 개념을 사랑의 개념으로 대체함으로써 그가 내리는 국민의 개념도 혈연과 영토와 주권의 범위를 확대한다그가 새로 보완한 국민의 개념은 사랑할 대상에 대한 합의’concors dilectio)로 이루어진다따라서 국민이란 "사랑하는 사물에 대한 공통된 합의에 의해 결속된 이성적 대중의 집합"(19,24)이다.


개인적 집단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역사의 추동력을 사랑으로 규명하는 일은 일반인들의 귀에는 약간의 설명을 요한다아우구스티누는 인간 실존을 두고도 나의 중심重心은 나의 사랑이라고 시인하였듯이역사의 주역들에게도그 주역들을 추종하는 집단들에게도 모든 야망과 헌신의 추동력이 되는 것은 욕망’ 곧 자기를 충동하는 사랑임을 간파하였다. 논지는 간단하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8)’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창세 1,27). 따라서 모상이 원형을 따르듯, ‘인간은 사랑이다.’ 달리 말해서 인간은 그 소속집단과 더불어 사랑으로 구제받거나 사랑으로 파멸한다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회적 사랑의 한 축인 인인애隣人愛를 곧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모험마저 감행한다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 하느님으로부터 옴은 물론이려니와 바로 하느님이기도 하다.”

 

2.1.4. 신국과 지상국의 판가름: ‘사회적 사랑과 사사로운 사랑

 

이런 맥락에서 신국론핵심 주제인간 개개인이나 일정 정치사회적 집단이 신국과 지상국 둘 중 어느 것에 소속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사랑의 구분’, "두 사랑이 있어 지상국과 신국두 도성을 이룬다."는 명제가 성립한다두 가지 사랑이 두 도성을 건설했다하느님을 멸시하면서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 도성을 만들었고자기를 멸시하면서까지 이르는 하느님 사랑이 천상 도성을 만들었다.... 전자에서는 그 제후들과그들이 멍에를 씌운 민족들 모두에게도 지배욕이 군림하고 있다후자에서는 지도자는 훈계하고 아랫사람은 복종하는 가운데 사랑으로 서로 섬긴다.”(14,28)


역사의 추동력을 사랑으로 규정함도 의아스러운데 하느님을 멸시하면서까지 이르는 자기 사랑이라는 문구 역시 부연설명을 요한다고전적인 개념대로 각자에게 자기 몫을 돌려줌”(suum cuique tribuere)이 정의라면인류가 무엇보다 앞서 자기 창조주에게 맞갖은 몫을 돌려드리는 기본 정의가 수립되어 있지 않다면 지상에 정의로운 공화국도 정의로운 국민도 존재하지 못하리라고 전제된다. 칭송받을 공화국의 안녕이 여기 있다신뢰와 강력한 화합의 기반과 연대가 없이는 국가가 최선으로 지탱하고 수호되는 일은 불가능하다공동선(하느님이 최고선이고 가장 진실한 선이다)이 사랑받지 않는다면하느님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신실하게 사랑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아우구스티누는 정의를 일컬어 "인류의 진정한 공동선만을 섬기는 사랑그리하여 인간에게 복속되는 다른 모든 것을 잘 통치하는 일"이라고 하였고"폭넓은 사랑이야말로 폭넓은 정의요위대한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정의요 완전한 사랑이야말로 완전한 정의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그럴 경우 참다운 정의가 구현되는 이상국가란 "그리스도가 창건자이며 통치자인 그런 공화국(2,21,4) 곧 신국이며 현실에서는 국가의 정치란 그 본연의 사명을 결코 온전히 구현하지 못하리라는 전제하에 부단히 이상국가에 비추어 현실정치를 비판하고 개혁해야 마땅하다.


신국론에서 두 정치를 판가름하는 사랑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저술에서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화한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하나는 상위의 도성을 생각하여 공동의 유익에 봉사하는데 전념하고하나는 오만불손한 지배욕에 사로잡혀 공동선마저도 자기 권력 하에 귀속시키려는 용의가 있다하나는 신께 복속하고 하나는 신께 반역한다하나는 이웃을 다스려도 이웃의 이익을 생각하여 다스리지만 하나는 자기 이익을 위하여 다스린다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두 도성을 가른다."


사상계에서 최초로 진지하게 인간 의지를 성찰한 주의론자主意論者답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국이든 신국이든 두 도성을 지배하는 원리는 사랑의 향방 혹은 폭임을 간파하고서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기심 곧 사사로운 사랑이냐적어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 매달려 못질된 그리스도의 벌려진 두 팔이 상징하는 사회적 사랑이냐를 선택하는 기로로 독자들을 인도한다모든 인간집단이 희구하는 평화를 누릴만한 세상을 건설하자고, "정의가 없는 왕국이란 거대한 강도떼가 아니고 무엇인가?"(4,4)라는 힐문대로, 평화는 오로지 정의의 열매’(opus iustitiae pax)일 따름이라고, 종교와 사상인종과 국경을 초월해서, ‘사랑의 질서가 전도되지 않게 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나가는 말

 

0.1. 로마 제국의 지배욕’libido dominandi으로 로마의 평화’ pax Romana가 붕괴되는 굉음을 들었던 5세기 초엽 한 종교인의 혜안이 지구상의 인류가 3천년기를 갓 시작한 시점에서 인류가 사랑의 문명을 지향하는 정치적 의지政治的意志에 어떤 길잡이가 되어 줄까적어도 아우구스티누스가 관찰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140억 광년의 폭을 가진 우주를 단일한 평면에 조감鳥瞰할 수 있고심지어 절대자요 무한자라는 신을 포괄할’capax dei 정도의 가용성可容性을 지닌다만일 유신론자로서 신과 인간이 합작하는 역사의 두 주역이라고, ‘인류사는 곧 구세사救世史라는 낙관적 교설에 수긍한다면창조주가 창조계에 구현하려는 이상곧 인류가 지구상에 존속하면서 만인萬人omnes homines과 전인全人totus homo의 행복幸福을 성취하는 일을 주동하는 일은 결국 인류의 집단적 결단에 맡겨진다.

 

0.2. 시간時間이라는 것이 인간의 의식意識 속에 존재하나 사물의 한 차원임을 맨 처음 구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대로인간이 의식하는 시간은 미래로부터 현재로 예단豫斷되고 과거로부터 현재로 기억記憶되면서 결정結晶된다그런데 엄밀히 실존하는 것은 현재의 순간뿐이다물리적으로는 한 찰라札剌이면서도 인간의 의식 속에서는 순간이여멈추어라너는 정말로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면서 그것을 정지시키고서 진지한 숙고와 책임있는 결단을 감행할 수 있겠다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永遠을 정의하여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고 전체全體로서 현전現前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인간의 의식은 무한자를 포괄할 수 있듯이(capax dei), 영원마저 포괄하여(capax aeternitatis)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현순간에 수렴할 능력이 있다찰나刹那에 영겁永劫이 함축되는 지금이라는 그 시점을 아우구스티누는 nunc stans, ‘일순 정지한 (영원한지금이라고 불렀다과거에 존재한 사물은 [여기에속하지 않으며 미래에 존재할 것도 [여기에속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 존재하는 것만이 [여기에속한다그러면서도 그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 영원永遠이라는 사실 때문에시간의 변화가 일체 없다(삼위일체론 12,14,23).

 

0.3. 유대인으로 세계대전과 나치정권을 경험하고서 독일 국민의 히틀러 선택과 러시아가 결집한 스탈린의 현실사회주의에는 도덕적 인간들이 비도덕적 사회를 선택하는 집단적 이기심이 작동함을 간파하였고인류가 그러한 세기적 우행을 반복하지 않는 대안으로 1700년전의 인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서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을 발굴 제창한 인물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였다.

 

0.4. 아렌트가 서구사상에서 최초로 인간의 의지意志를 진지하게 사유한 철학자로 간주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마다 구체적 윤리결단을 앞두고 velle와 nolle(I-will I-nill) 사이에서 망설이고 결국은 자기가 사랑하는 바가 중심重心이 되어(amor meus pondus meum) 그 추가 이끄는대로 결단을 내리는(eo feror quo feror) 심리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함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은인간이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탄생시키는 그 시작이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는 명제로 매듭을 짓는다지상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역사가 흐르고 세기가 바뀔 때마다 인간들이 영도자(persona collectiva)라는 집단의지集團意志를 내세워 선택과 결단을 내릴 적마다 전에 한번도 창조되지 않았던 것이 창조될 수 있다(creari potuisse quod numquam antea creatum esset)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지상에서 그런 일들이 전에 한번 만들어졌을 뿐더러 한번도 중지되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다면[새로운 세기적 결단으로] 무엇이 새로 창조된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다어떻든 어떤 시작이 없어서는 안된다(sine aliquo non posset initio). [따라서 이 시점에서도] 그 이전에 결코 존재할 수는 없었던 시작그 시작이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initium ut esset, creatus est homo).”(신국론 12,21,4)고 외쳤다.

 

0.5. 예컨대 평범한 시민이 투표소의 휘장 속에 들어서는 순간을 상정해보자그곳은 누구의 방해나 압력이나 언론에도 구애받지 않고가장 밝은 양심의 빛과 가장 자유로운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어쩌면 민주시민의 유일한 순간일 수도 있다간단한 기표행위로 자신과 민족과 인류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그 순간은 nunc stans(정지된 지금)이므로 얼마든지 붙들어놓고서 사사로운 사랑과 사회적 사랑’ 사이에서 가늠을 하여 결단을 내릴 수 있다그 순간 정치적 의지의 행사에 따른 오류나 유보에는 한 민족이나 국가라는 집단들의 역사적 진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인간이자 시민인 당사자의 영구한 자기 결정自己結晶(아렌트의 natality)도 달려 있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가 17세기의 거리를 건너 우리 귀에 들려줄 말은 오직 한마디다. “그대는 단 한 가지 짤막한 계명을 받았습니다사랑하십시오그리고 그대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dilige, et quod vis 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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