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마산 2013.8.26]

 

에로스가 우리를 구원한다

 

농사꾼들에게 제일 반가운 소리는 자식들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란다. 그러다보면 기아에 시달려 비쩍 마른 북한 어린이들의 퀭한 눈이 어른거려 시골 본당에서도 한 끼니 먹을 국수라도 모아 보내는 마음으로 번진다. 귀여운 갓난이의 기저귀를 벗기고 베이비 파우다를 듬뿍 뿌려주면서 쭈쭈쭈쭈어르는 젊은 엄마의 에로스는, 치매가 깊은 시어머니 기저귀를 벗겨 씻어드리고 파우다를 발라 새 기저귀를 채워드리는 며느리의 효성으로 옮겨 간다

 

두 젊은이가 포옹하고 애무하면서 황홀한 신음을 내는 에로스는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참 좋다. “쫄리, 빨리 오세요. 아기가 나와요.”라는 부름에 주일미사를 드리던 이태석 신부님이 제대 위에 제의를 벗어놓고 진료소로 달려가서 흑인 여자의 아기를 받고(양수가 터지고서 삼십 리를 걸어왔더란다) 탯줄을 자르고 산도를 소독해주고서 피범벅된 손을 씻고 돌아와 미사를 계속 집전하던 모습은 참 거룩한 에로스다.


사회에서도 마을에서도 가족한테서도 쫓겨난 나환우들을 소록도에서 43년간 맨손으로 주물러 치료하면서 함께 살다 간 마가레트 수녀님이나 마리안느 수녀님의 손길도, 고름냄새 풍기며 캘커타 거리에서 죽어가는 걸인들을 무릎에 안고 눈을 감겨주면서 보세요. 이 두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던 마더 데레사의 쭈글쭈글한 얼굴도 눈물겨운 에로스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손주든, 저절로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행려병자든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은 에로스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고 예수님이 경고하시는 까닭도 에로스가 우리를 구원하거나 멸망시키기 때문인 듯하다. 당신이 하느님의 에로스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