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마산 2014.12.28]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하느님의 탈출(환희의 신비 4)


초이레가 지나고 아기를 안고 성전에 들어가던 내가 얼마나 당당했을지 너희는 알겠지? “여보, 내가 낳은 당신의 아들이에요.”라는 너희의 자랑만큼, 나도 아기를 들어 보이며 야훼 하느님, 제가 낳은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속으로 말씀드렸단다. 성전에서 나오다 만난 시메온 노인이 우리 예수를 팔에 안고서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고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을 적에는 내 어깨가 얼마나 으쓱했겠느냐?


하지만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아기를 보면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라는 말에는 칼에 꿰찔리던 불길함에 가슴이 덜컹했단다. 그런데 말이다, 먼 훗날 사람들이 우리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단다, 하느님이 전지하고 전능하고 무한하고 불멸하는 곳에서 탈출하셔서 갓난아기로 내 품으로 오신 까닭이 정말 사랑하는 법을 우리 어미들한테 가르치시기 위함임을!


여인아, 우리가 어미로서 자식을 꼬옥 끌어안는 팔이 아니라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한테로 뻗어나가는 팔, 밖으로 펼치는 사랑, 교회가 사회교리로 가르치는 사회적 사랑만이 사람을 구원하는구나. 보다시피 십자 나무에 못질된 예수의 저 팔은 안으로 굽을 수가 없지 않니?


사회적 사랑이란 다름 아닌 정치라고 너희를 가르친 것은 너희 교황들이다. 웬 줄 아느냐? 너희야 착실한 교우여서 날개만 없지 천사라고 자부할 테지만 정치가 나오면, 시메온 노인 말처럼, 너희가 넘어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더라. 너희가 마음속 생각을 못 숨기고, 하느님을 믿기보다는 돈을 섬기는 우상숭배자 모습을 드러내고 말더라.


근자에 일어난 정치사건을 보자. 세월호에서 자식 잃은 어미들의 통곡이 아직도 강토를 울리는데도 그 어미들더러 고만 좀 해라. 시체 장사 좀 치워라. 박아무개가 어때서?”라고 악쓰는 여교우들이 있다! 약자들을 편들어 오던 정당이 사법살인에 익숙한 자들 손에서 해산되는데 빨갱이들은 씨를 말려야 해!”라며 판결을 반겼거나 아무 생각 없이 그냥구경했다 하자.


남한에서만도 해방 후 권력자들의 명령에 따라 군경의 손에 죽은 국민이 1,000,000(백만)명이나 된다더라. 늘 빨갱이라고 뒤집어 씌워서 죽였다. 너희가 예수를 심판주로도 정말 믿는다면, “이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라던 말을 두려워하겠지. “이 모든 것이 이 세대에 닥칠 것이다.”라는 구절도 뒤따라오니까 말이다(마태 23,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