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사에 녹아있는 사회복음)


                                            [가톨릭마산 2015.11.29]


멋쟁이 목자를 위하여 (신품성사)


우리는 이상적인 사제상을 착한 목자에서 본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착한 목자라는 그리스어 본뜻은 아름다운 목자멋진 목자. 멋쟁이 목자는 그 많고 많은 양들에게 말씀을 펴 가르치고 성사를 베푸는데 여념이 없다. 그는 목자이지 회계원이 아니고, 하느님의 양들을 치는 목자이지 건물을 부수고 짓고 뜯어고치는 목수가 아니다.


멋쟁이 목자라면 본당에서도 토실토실 살찐 양보다 여위고 비루먹어 물통 앞에서도 제 차례를 얻지 못하는 양들에게 각별한 보살핌을 보인다. 사회와 교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에게 자꾸 마음을 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제의 옷자락에서는 향수 냄새가 아니라 양떼의 노린내와 퀴퀴한 오물 냄새가 풍겨야 한다고 말씀하신 데는 까닭이 있다.


멋쟁이 목자에게는 그 직분에 알맞은 영웅심이 필요하다. 늑대가 올 때 양떼를 버리고 도망갈 사람이 아니라는 표시로, 우리 인생의 가장 고귀한 애정과 가정의 행복을 포기한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에워싸여 따뜻한 밥상을 받을 적마다 우리는 사제관에서 홀로 밥상을 대하는 신부님을 생각하고, 부부의 포근한 잠자리에 들 때마다 독신으로 홀로 잠드시는 신부님 머리맡에서 사제로서의 오늘 하루를 바느질로 기워주시기를 성모님께 빌어드린다.


그리고 멋쟁이 목자의 가장 그럴듯한 호칭은, 이미 말한 대로, ‘하느님의 사람곧 예언자다. 사제가 강론대에서 예언자다운 발설을 할 때, "사제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사제의 말은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 말은 하느님이 발설하신 말씀이다."(칼 라너) 사제가 한국의 사회정의나 올바른 정치를 시비할 때 한 마디 소리지르고 싶은 신자들은 아모스 예언서를 읽어 보시라!


아모스가 불길한 소리를 하고 다녔다. 정치 불의와 경제 편중 때문에 주님께서 시온에서 호령하시고 불이 예루살렘의 성채들을 삼켜 버리리라. 이스라엘은 제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리라!” 듣다못해 아마츠야라는 신하가 욕을 해댔다. “저쪽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그러자 하느님의 저주가 그 신하에게 내렸다. “네 아내는 이 성읍에서 창녀가 되고 네 아들딸들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너 자신은 부정한 땅에서 죽으리라.” 그대로 되었다! ‘파리 테러사흘 전, 교황님도 야금야금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씀으로 세계 언론을 오싹하게 만드신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