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염의 읽기쉬운 사회교리
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가톨릭마산 2015.5.17.]
“어미의 구원은 자식에게 달렸더라” (영광의 신비 4)
골고타 이후로 내 평생은 ‘그리움’이었단다. 탯줄로 이어지는 모자의 그리움은 아들의 부활로도, 아버지에게 돌아간 승천으로도 가시지 않더라. 내 아들이 살아있으면서도 육안에 안 보인다는 일로 오히려 어디서나 아이의 얼굴이 보이고 언제나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더구나. 그러던 그리움이 영원한 상봉으로 풀리던 날이 왔다.
서방교회는 내 마지막을 ‘아들한테 부름 받아 승천했다’는 뜻으로 ‘몽소승천(蒙召昇天 assumptio)’이라 하는구나. 어미는 한 여자로서 영원한 말씀을 태중에 내려받아 세상에 모셨고, 아들은 구세주라는 권세로 어미를 하늘에 올려받았으니 참 놀랍기만 한 거래 아니니? 나도 너희도 어미들은 모두 몸으로 맘으로 영원한 생명을 잉태해준 자녀의 구원으로 하늘에 끌어올려지는 운명이란다. 어미의 처녀 적 숭고한 꿈과 널따란 사랑은 고스란히 자식에게 뿌리내리고 꽃피어 모자간의 구원으로 열매 맺더라! 아길 낳아보니까 알겠더라만, 우리 구원은 우리가 낳는 자식에게 달렸더라.
십자가에 매달려 숨넘어가던 예수도 나를 너희 어미로 주고서야 “다 이루어졌다!”며 숨을 멎더라. 너희가 이 어미 없이 고생을 살아가고 역사를 걸어가는 걸 차마 못 보아서였겠지(복음의 기쁨 285). 그리고 내가 서둘러 아들을 따라 올라간 것도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기 위함이었다(요한 14,18). 세상 마칠 때까지 너희 어미 노릇을 하려면 내 아들 곁에 가 앉아서 너희를 살려내게 아들을 다그치는 길밖에 없었다.
너희 신앙고백대로 예수는 “저승에 가서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지상에서 내 마지막을 그냥 ‘영면(永眠 dormitio)’이라 부른다. 죽음은 썩을 몸이나 이승과 작별하는 순간처럼 보이지만, ‘저승’이라고 부르는 온 우주를 내 몸으로 입는(all-cosmic) 순간이더라. 지구를 비롯해 150억 광년 크기의 우주와 그보다 헤아릴 수 없이 더 큰 하느님의 품으로 들어가는 뜀질이어서 거기서야말로 내가 여왕처럼 너희를 보살필 수 있더라.
어미 된 너희 소망과 축원이 너희가 남기는 핏줄에만 아니고 지상의 온갖 생명들과 우주 전체에 두루 미침을 볼 것이다. 영면이야말로 너희가 쏟아온 사랑이 영원으로 결정(結晶)되는 순간이고, 하느님의 맘과 눈으로 너희가 어미답게 온 생명을 사랑하기에 이르는 승천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