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들과 함께 드리는 로사리오

[가톨릭마산 2015.5.3] 

 

성령을 질식시키지 마라!” (영광의 신비 3)

 

봄철의 생기, 지심(地心) 속에 가득한 기운을 받아 땅의 얼굴을 새롭게 만드는 저 새싹들과 꽃풀들이 너희에게도 내 아들의 얼 곧 성령이 가득 내리는 성령강림을 맞는구나. 어미들아, 생전에 우리 아들한테나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상사에서 성령의 자취를 알아보는 법을 나는 익혔단다. 성령으로 잉태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도 세례 받던 자리에서 성령을 받고서 자기가 메시아임도, 어떻게 메시아 노릇을 해야 하는지도 깨닫더구나.


아들이 승천한 다음 나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성령께서 오시도록 간청하였고 성령 강림 날 선교의 불길이 확 솟구침도 목격했단다. 하늘에 와서도 나는 인류 역사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돕고 싶어 성급하리만큼 자주 발현해서 너희 운명을 보살피는 중이다.

그래 맞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사형수를 두고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할 수 없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1코린 12,3) 그 죽음의 의미는 성령만 밝히신다. 하느님의 영에 씌우지 않고서야 예수가 바로 너희와 너희 자식들 죄 때문에 죽었다고 가슴을 치겠느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람도 사랑이다, 하느님의 모상이니까. 다만 팔이 안으로만 굽는 사사로운 사랑을 넘어 팔을 밖으로 뻗게 만드는 사회적 사랑으로만 너희가 구원을 받는다. 너희 교황들이 사회적 사랑이란 다름 아닌 정치라고 했으니 올바른 정치적 사랑으로 너희와 너희 나라가 구원받는다. ‘사회적 사랑정치적 사랑,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다.”


성령을 받는 사람은 일단 예언자가 된다. 예언자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이사 5,7)고 쇳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성령께 사로잡힌 예언자들이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미워하는 일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성령을 거스르는 죄”(마르 3,28-29)라고 예수가 단언했다. 그런 미움이 오죽했으면 교황이 너희 주교들에게 예언자답게 복음을 증거하라. 한국 교회가 성령을 질식시키는 속물적 사목에서 하늘이 지켜 주시기를빌었겠느냐?


지난 3년만 보아도 사회정의를 외치는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심지어 자식 죽은 까닭 좀 알자는 세월호 아이들의 어미들을 종북이라 욕하고, 학교 가는 아이들 밥그릇 빼앗지 말라는 어미와 할미들마저 종북이라고 부르는 짓은 집단으로 마귀 들린듯한 언행 아니겠느냐? 모든 우상의 원조는 돈임을 너희도 잘 알겠지? 그리고 너희를 그 우상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기는 성령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