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장대를 올려다보면서

- 지리산에 띄우는 새해 소망지


성염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지리산人 17(2015.1.5.) 


바다보다 산들이 나를 품어 키워주었다. 어려서는 불갑산 모난 등성이를 멀리 바라보면서 자랐다. 내 고향 장성 삼서의 소룡리에서 올려다 보이는 산이다. 부잣집 맏며느리 풍채라는 무등산의 산세에 안겨 초중고 소년시절을 보냈다. 결혼하여 집을 마련한 곳도 서울 우이동 계곡이어서 서쪽 창밖으로 북한산 세 봉우리가 한 폭 병풍으로 40년 내 삶을 둘러주었다. 이탈리아 생활 12년은 해마다 알프스 돌로미티에서 한여름을 보내던 달포가 가장 행복했다.


휴천재 따뜻한 안방 창문으로 눈 쌓인 노장대를 올려다보노라면, 지리산 발치에서 여생을 보내며 그리스도교 위대한 지성 아우구스티누스 번역에 몰두하는 행운에 지인들의 부러움이 느껴진다. 그런데 윤주옥씨를 따라서 지리산 800리 둘레길을 걸으면서도, 해강스님과 지리산종교연대의 1000일 순례의 길을 돌면서도, 그리고 2014년에는 실상사 세월호 천일기도를 지켜보면서도 늘 가슴에 고이는 한숨은 천년을 두고 마고할메 그 치맛자락으로 숨어들던 민초들의 한숨과 눈물과 비명이 대밭마다 바윗굴마다 골골이 배어 있는 까닭이리라.


하지만 노론의 후손들이 친일세력으로, 친미반공세력으로 남한의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다 못해 마고할메의 늙은 젖가슴마저 댐과 케이블카로 파헤쳐오는 마수가 두렵지 않은 것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지리산들을 수 백 수 천으로 만나면서 내 살아가는 기운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없이 암울한 가슴이면서도 이 산사람들과 더불어 2015년을 맞았고 천왕봉에는 올해도 태양이 붉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