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의 고장 함양에서 이번 선거만은...


[시사함양 2013.4.17]

성염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주교황청한국대사)


필자는 함양군에서도 지리산 자락 문정리에 사는 귀촌인(歸村人)이다. 마을 건너편에는 촛대봉을 비롯해서 지리산 하봉이 멀리 바라다보이고, 뱀사골 백무동에서 여울져 흐르던 물이 마을 앞에서는 쉬엄쉬엄 흘러 휴천강(休川江)을 이룬다. 문정마을과 송전마을을 이어주는 송문교 아래 너럭바위가 크고 잘 생겨서 소나무를 등에 업고 있는 품이 너무도 점잖아 와룡대(臥龍臺)라고 부른다


거기서 바라보는 문정리를 옛사람들은 가거동(可居洞)” 곧 사람 살만한 동네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림을 떠나서 엄천강 골짜기로 일단 들어서면 마천까지 통틀어 문정리만한 마을 터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문정리에 집을 마련하고 오가던 것은 20여년 되고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아예 이곳에 정착한 것이 7년째다. “어디 사시오?” “함양입니다.” “, 거기 현감 최치원이 홍수를 막아서 조성한 상림이 있지요. 김종직이 현감으로 있을 적에는 군민의 다세(茶稅)를 면해주려고 차밭도 만들었다면서요. 서원도 많고 청백리들도 나오고 참 점잖은 고장이군요.” 듣는 사람 어깨가 은근이 올라가는 칭송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반응이 달라졌다. “어디 사시오?” “함양입니다.” “? 거기 청도, 아니 거기 군수들 연달아 감옥 간데 아니요? 전직 군수도 현직 군수도 심지어 전전직 군수도 감옥살이 하드구만.” 탐관오리들의 고장이라는 손가락질 같아서 얼굴 들기 민망하다. 이웃에 사는 인규씨가 영업용 세렉스에 함양세렉스라고 붙이고 다녔는데 얼마 전에 보니까 함양이라는 글자를 새까맣게 지웠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군수들 땜에 함양 사는 게 쪽팔려서.”라고 대꾸하였다. 외부에서 귀촌한 사람들만 아니라 토박이 군민들마저 고향을 부끄러워하다니....


어떻든 주변 시군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함양군민들은 새 군수를 뽑는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유서 깊은 함양 군민들 체면 좀 세우는 선거였으면 좋겠다.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러 마을 회관에 찾아오는 후보에게 무신 놈의 후보가 어른들 뵈러 오면서 빈손으로 오노?” 하고 염치없는 욕을 하지 말자. 돈 봉투 받았다 온 마을이 벌금 무느라 쩔쩔 매는 마을을 본받지 말자. 사전선거운동이 들통 나 사퇴하려는 후보한테 당선만 되면 우리가 알아서 할게.”라고 뒤를 밀었다는 소문은 안 났으면 좋겠다. 여러 차례 집권당 후보도 가차 없이 떨어뜨리던 함양군민의 자존심을 되살렸으면 좋겠다.


내가 사는 문정마을 옆 솔밭에는 고려말 인물 이억년(李億年)의 산소가 있고 가장 가까운 백연마을은 이억년의 장형 이백년(李百年)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 집 5형제의 막내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라는 다정가(多情歌)”를 지은 이조년(李兆年)임을 모르는 함양군민이 없다.


두 형제가 길에서 황금 두 덩이를 우연히 발견, 하나는 형이 갖고 다른 하나는 동생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 느닷없이 동생이 물속으로 황금을 던져버렸다. 형이 깜짝 놀라, 왜 그랬냐고 묻자 황금을 본 순간, 형의 황금도 탐하려는 마음이 생겨서 강에 던져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에 형도 감동하여, 형 역시 황금을 물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형제투금(兄第投金)"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이조년과 그의 형 이억년이다. 그들의 청렴한 의리를 기리는 투금대(投金臺)”가 지금도 한강에 남아 있다.


그 형제의 묘소가 있고 최치원, 김종직 같은 관리가 나온 고장에서 이번만은 금권선거가 없고 새로 뽑은 군수가 또 감옥 가는 일 없기를 빈다. 동창회, 향우회가 유난히 많은 동네지만 학연 지연에 매이지 않고 정말 지역을 발전시키고 지리산을 지키고 기울어가는 농업과 어려운 군민들을 보살펴 함양을 사람 살만한 동네”(可居洞)으로 만들 청백리가 뽑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