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가을 레슨’ 

[지리산2015.9.25.]

 

산은 높다. 산은 올려다본다. 우러러 본다. 한라, 지리, 백두산을 보면 볼수록 작아짐을 느끼는 인지상정이 종교마다 성산(聖山)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에베레스트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하늘 머리’(Sagarmatha)라는 이름으로 티벳 주민들에게 숭상받았고,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에는 수미산(Kailash)이 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올림포스산이 있고 유대인과 그리스교도들에게는 시나이산(일명 호렙산)이 있다.


산은 신비롭다. 종교철학자 루돌프 오토의 말처럼, 신비는 사람을 두렵게 만들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tremendum ac fascinosum) 오묘함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산을 찾아 순례한다. ‘거룩한 분을 만나고 싶어 산위로 오른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바다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가기 때문에 수행자들의 사찰과 수도원은 산 속에 있다. 위대한 산악인들이 일찌감치 터득한대로, 오늘도 어제도 산행을 하는 사람은 순례자이고 입산은 곧 수행이다.


내가 믿는 그리스도교의 경전에는 신구약 합쳐 이라는 말이 1000번쯤 나온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모세는 젊은 시절 시나이반도에서 양치기를 하던 중 하루는 양떼를 몰고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가 산불을 본다. 떨기나무가 타면서도 사그라지지 않아 불을 끄러 달려가니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는 엄숙한 음성을 듣는다. 그 뒤 이스라엘인들은 시나이산을 야훼의 산이라 일컫고 봉우리를 올려볼 적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분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라면서 스스로 옷깃을 가다듬을 줄 알았다.


외적이 침범하고 전란에 휩싸일 적이면 가련한 백성의 눈길은 산등성으로 쏠렸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라며 기도했다. 세도가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면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하고 빌며 산으로 갔다. 왜란과 동학운동과 '여순 사태' 때 지리산 노고할메 품으로 파고들던 민초들의 꿈도 그러했으리.


자기 민족의 해방과 탈출이라는 대업을 짊어지고 하산하는 모세에게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라는 분부가 내린다. 우리 선조들이 지리산 노고단에 제단을 쌓고 선도성모나 산신할머니를 받든 것도 같은 이치였으리.


올 여름 알프스에서도 가장 수려한 돌로미티에서 석 달을 지내며 산도 크고 자락도 많고 샛길도 숱하지만 산행하는 사람이면 행여 산을 깨울세라 조심조심 걷던 몸가짐이며 조용조용 속삭이던 말씨가 눈에 선하다. 유럽인들의 국민운동인 겨울 스키를 위해 곳곳에 놓인 케이블카는 2, 3천미터가 넘는 고산에만 설치되어 있었다.

 

점점 높아지는 하늘

점점 얕아지는 땅

그 사이에서 점점 흔들리면 작아지는 나

새삼 느껴볼 줄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쯤은.... (채희문, ‘가을 레슨 I’에서)

 

지리산 자락에 사는 뭇 생명이 이 가을에 배울 레슨이다. 마고할메의 등골을 갈라 케이블카를 놓아 돈벌겠다는 토호 무리, 할메의 다리를 댐물에다 담그려는 삽질정권은 산악 민족의 신 야훼가 당신 겨레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던 엄포를 자초하고 있다.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마라. 산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탈출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