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들의 한 아름

 

[지리산人 (2013.10.28]


지리산 주변에 자칭타칭 도사(道士)7000명이라고 들었다. 내가 함양 문정으로 살러 오니까 친구들이 도 닦으러 가느냐고 놀린 일로 미루어, 35군에 걸친 지리산 골짜기로 귀농하거나 귀촌하는 사람들 모두를 꼽아서 지리산 도사 7000”이라는 소문이 났나보다


내 이웃에 사는 지인은 간암말기로 판정받아 의사도 수술을 거부했었다. 모든 희망이 좌절되자 그는 지리산으로 들어왔고, 여기서 5년을 보내고 최근 같은 병원 같은 의사한테 간암의 완전쾌유라는 판정을 받았다. 내가 지켜보기로도 채식과 산행과 기도로 연명하던 그의 하루하루는 도인의 삶이었다.


대학 강단에서 살던 내가 산으로 들어온 것은 글을 쓰기 위함이다. 정확하게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4세기 로마제국 인물의 라틴어 저서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작업이다. 물체는 제 중심(重心)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웁니다.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내가 끌려갑니다.”(고백록)라는 문장은 지리산들에게도 와 닿는다. 도회지의 모든 것을 팽개치고 산으로 온 이들에게는 피아골의 단풍이며 노고단의 구름, 반야봉의 새소리며 백무동의 물소리가 주는 삶의 자유로움과 신선함, 거기에 사랑의 중심이 갈 게다.


그런데 이 학자는 사랑의 질을 둘로 나눈다. "두 사랑이 있으니 하나는 순수하고 하나는 불순하다. 하나는 사회적 사랑이요 하나는 사사로운 사랑이다. 천사들로부터 시작해서 한 사랑은 선한 자들에게 깃들고 한 사랑은 악한 자들에게 깃들어서 천국과 지옥을 가른다."(창세기축자해석). 무슨 명분으로든 팔이 안으로 굽는 모든 사랑을 그는 사사로운 사랑이라며 경멸한다


그 대신 내 건강과 자유, 내 피붙이와 농사를 넘어서서, 노고할메의 넉넉한 옷자락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는 마음, 그래서 케이블카가 산으로 기어오르지 못하게 막고, 용유담과 피아골을 물속에 수장시키려는 삽질정권과 싸우고, 골골이 생명공동체 인드라망을 이뤄내려는 용기, 오지랖 넓게 팔이 벌어지는 이름을 그는 사회적 사랑이라고 부른다. 내가 대처에 사는 친구들에게 지리산들은 공염불하는 기인들이 아니고 겨레가 갈 길()을 가리키는 선비들()이라고 자랑하는 데는 바로 이런 까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