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9일 월요일, 맑다가 오후 한 때 소나기

 

어제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느라 몸이 어지간히 지쳤나보다. 주인을 잘못 만나 몸이 늘 힘들어하지만 때로는 지나칠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면 몸도 주인에게 심술을 부르는데 바로 오늘 그렇다. 약을 먹고 쓰러져 자고 밥 먹고 쓰러져 자고... 그러길 오후 2시까지 했다. 보스코는 어제 저녁을 먹자마자 잠들었는데 하루 종일 차타기에 지쳤노라더니 그 나이에도 밤잠을 자고나서는 아침에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거뜬한 얼굴이다. 그가 참 건강한 게 고맙기만 하다.

 

날씨가 서늘하다 못해 춥다. 밤에는 14도까지 내려간다. 마리오네서 돌아오는 오늘 저녁 11시, 바깥 기온이 벌써 16도다. 오리털 이불을 옷장에서 찾아내어 덮을 준비를 하였다. 로마의 40도 염천에서 숨쉬기도 힘들어 하던 때가 까마득하다. 텔리비전 뉴스에서는 대도시가 여전히 40도가 넘는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데 말이다....

 

           고향에 살면서 딸의 집을 관리해 주는 렌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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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장의 소박한 점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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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도 엊저녁처럼 밥을 하고 임시변통으로 서너 가지 반찬을 해서 계란탕에, 쌈장과 고추장, 렌조(라우라 변호사의 부친)씨의 텃밭에서 솎아온 상추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였다. 낮잠을 자고서 2시 30분에 등산용품을 챙겨 바노이 계곡으로 산행을 갔다. 그곳 대피소(rifuggio)까지 전에 걸어본 기억이 있었다. 작은 경당 앞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걷는데 삼나무 숲 그늘에 차를 세우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노부부를 보았다. 돌아오면서 보니까 남편은 햇빛으로 나오고 부인은 차 속에 들어앉아 독서를 계속하고 있다. 좀 추웠나보다. 저렇게 책을 읽을 만큼 건강한 눈과 무엇보다도 저 나이에도 간직하고 있는, 지식에 대한 열정이 부럽기만 하다.

 

           산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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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여관에서 2006년 요안나가 묵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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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보니 삼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지름이 70~100센티는 되고 길이는 40~50여 미터 되어 저걸 어떻게 간벌(間伐)해서 산비탈에서 끌고 내려왔을까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산 위에까지 모터를 지고 가서 굵은 쇠밧줄을 끌어올려 거기에 벤 나무를 묶어서 산 아래서 거대한 기계장치로 끌어내리는 작업이었다. 저렇게 울울창창한 삼나무를 두고 간간이 솎아내기만 하고 자기들은 동남아에서 나무들을 수입하여 목재로 쓰고 있다. 저렇게 약은 부자나라에서는 나무도 장수하고 자원은 자원대로 아끼면서 살아가는 셈이다.

 

산과 나무, 물과 꽃, 고삐 없는 당나귀 한 무리를 구경하고, 시원한 샘물을 마시면서 걸으니 몸이 많이 회복되는 기분이다. 보스코는 풀을 보고 “와, 머우대! 와, 고사리!” 하여 나를 놀라게 하는데 다 못 먹는 풀이고 모양새만 비슷하여 실생활에 무식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산길은 걸으면 걸을수록 더 걷고 싶고 거기서 피고 지는 꽃이 우리 강산의 것과 너무도 똑같아 “너희들 언제 여기까지 왔니?” 하며 감탄하기에 이른다.

 

           마리오네 집은 산마르티노 영봉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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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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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아들 플라비오는 춤꾼에다 모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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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가 다시 찾은 사랑 이레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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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경 하늘에 구름이 몰리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얼마 만에 보는 빗방울인가! 손을 뻗어 만져본다. 자동차도 세차가 되었다. 보보 마을(Canal de Bovo)에서 트란스아콰(Transacqua)로 빠지는 3350미터나 되는 터널을 지나 마리오네에 갔다. 아직도 조각 같은 얼굴에 멋진 몸매로 흰 머리카락만 빼면 50대 같은 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가슴으로 우릴 맞는다. 1980년대 초부터 30년 넘는 우정이다.

 

98년에 내 친구 세레나를 땅에 묻고 한 동안 혼자지내다 연인 라우라와 8년 가까이 동거하다 헤어졌다. 다시 홀몸이 되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아렸었다. 그가 만난 새로운 연인 이레네를 찾아낸 사연이 무척이나 궁금하던 터였으므로 이레네가 퇴근하기 전에 찾아간 길이다. 그동안의 로맨스그레이를 마리오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쏟아내는지, 이레네가 불쌍하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이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탈리아 남자들의 사랑은 참으로 정열적이다.

 

              내 친구 세레나의 무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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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가 오기 전에 잠시 동네로 내려와 내 친구 세레나의 무덤에 성묘를 하였다. 빨레 디 산 마르티노(Pale di San Martino)라는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고향에 잠든 친구에게 명복을 빌면서 부디 천국에서 이승에 살아남은 남편의 가난한 사랑들을 지켜 주라고, 지금처럼 사랑에 소나기처럼 흠뻑 젖은 그가 아름다운 노년(그의 나이 68세고 이레네와는 스물일곱 살 차이난다)을 보내게 거들어 주라고 빌었다. 보스코가 학위논문을 쓴 베르길리우스(Vergilius)의 시에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느니, 우리도 사랑에는 지고 말자꾸나”(omnia vincit amor, et nos cedamus amori)라는 구절이 있다는데....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고 언제나 용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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