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6일 금요일. 날씨 맑음

 

점심후 "지리산 멧돼지"들의 꽂감깎기 대행진을 격려차 한 바퀴 돌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상세한 사진은 <전순란 산행사진첩>의 "지리산 멧돼지들의 감동 순례" 참조)

나서기 전 토마스네 감동에 들어가 자갈치시장 생선장사처럼 추위에 맞서 옷을 겹겹이 껴입은 진이엄마 사진부터 먼저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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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기자네에 들렀다.

글라라씨 여동생과 조카(휴가 중인 군인)까지 와 있으니 이기자를 빼면, 감깎는 처남 , 불합격 감을 조각내어 곶감말랭이를 마련하는 장모님, 아내 전여사, 처제와 조카까지 동원되었으니 처가 5명을 무급 동원하여 "꽂감사업"을 하는 셈이다.

글라라씨는 삼각수건을 쓰고 일하는데, 일에 지친 "알프스 소녀 하이디"였다. 모든 사람의 동정을 한 몸에 받을 만했다.

어머니는 꽂감 말랭이를 칼질하고 있다가 오늘은 일하기 싫어서 좀 일찍 하산하신단다. 해는 아직 한 길이나 남았고, 하산하는 퇴근이라야 30여미터 떨어진 아랫채지만 말이다.

오라버니는 다른 사람들보다 50센티는 높은 걸상에 어좌처럼 올라 앉아서 전자동기계로 감을 깎는데 큰 감은 작은 감으로 하향평준화되어 나오고 생김새가 별난 놈은 강냉이 뻥튀기에서처럼 튀어나오곤 하였다.

그렇게 튀는 감과 덜 깎인 감을 수배하여 다듬을 사람이 하나 더 있어야 하는데 그 일은 처제가 맡고 있었다. 그녀의 일솜씨는 그야말로 시속 30킬로 차량 같아서, 자갈길이나 하이패스 통과하는 안전속도다.

이 집의 감깎는 모습을 지켜보던 보스코가 "자기를 얼치기 농부라고 일컬은 이기자의 자기소개와 매우 흡사하다."라고 평했다. 그래도 모두가 즐겁다는게 그 집 풍경이다. 일을 놀이처럼 해낼 수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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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스페파노씨 집에 들렀다.

주인이 깔고 앉아서 감을 깎는 반자동 기계는 우리가 본 기계들 중에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값이 쌌다. 컴프레셔가 없어서 조용하고, 꼭지를 깎아야 하는 노고를 한번에 해결해 주는 최신식 기계였다. 감을 물려 다깎고나면 단번에 꼭지가 다듬어지는 것이었다.

도정 큰애기들(칠순 내지 팔순 할머니 세 분)이 도와주고 있었다. 인력동원도 우수한 편이다.

감동에서는 체칠리아씨가 아픈 팔에다 발목까지 삐어서 털썩 주저앉는 채로 앉은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보스코는 그런 광경을 볼라치면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숲속의 작은 새야..."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손이 닿은 낮은 곳에만 감을 걸고 있었다. 다행히 친구가 멀리서 찾아와서 나머지 감을 다 걸고 있었다. 

윗집 이기자 말마따나, 꽂감 농사를 하면 잊었던 친지들이 찾아져서 고맙단다.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친지들에게도 꽂감 한 상자씩 보내어 잊었던 혈연을 다시 강화하고, 이런저런 친지들이 찾아와 일손을 도우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는 말이다. 이틀간은 우리동네 사람이 일손을 도왔다면서 체칠리아씨는 무척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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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깍두기처럼 이번엔 채김치를 해다 주겠다면서 그 집 밭에서 무 세 개를 뽑아들고 나왔다. 실하고 먹음직스런 무다. 그것도 짐이라고 무거워 무봉지를 길가에 남겨두고 차를 가지러 내려 오다가 아우토스톱을 했는데 승호씨 차였다. 친절하게 집에까지 데려다 주어 고마웠다.

 

그 동안 보스코는 김교수네 낙엽과 배추밭을 찍는다고 올라갔다. 나여사네 배추밭도 찍어서 며칠 전의 일기("슬한재의 가랑잎" 참조)에 사진을 넣기로 했다. 요즘은 디카시대라 사진이 없으면 일기도 흥이 나지 않는다.

 

차로 올라간 길에 그 동안 김교수네 모과나무에서 다시 떨어진 모과를 네 봉지나 주웠다. 두 봉지는 효소담는 이기지네에 전달하고 나머지는 내가 밤새 썰어서 모과차를 담을 준비를 했다.  남은 것은 호천이댁에게 보내어 모과차를 담게 해야겠다.

 

오늘 하루 둘러보아도 여자들 고생이 너무 크다. "그래, 그래 내 팔자가 제일 상팔자로구나."하면서 모과차 준비를 서두르다보니 벌레먹은 것들이라선지 어쩌면 그리 단단한지 칼질이 어려웠다. 밤  1시 반까지 도마질을 했다. 6시간 과외수당을 나한테 줘야 할 사업주는 10시부터 한밤중이다. "제일 낫다는 내 팔자가 이러니 다른 아낙들이야..." 라고 푸념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니까  아무래도 내 팔자긴 팔잔가 보다." 라면서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게 "지친 몸"이라면 하루 종일 꽂감 일에 기운 빠진 여자들 신세는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