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4년 10월 3일 목요일. 흐리고 비내리고
죽도록 더워도 전기세 아까워 에어컨도 못 켜고 여름을 났는데... 그게 지난지 며칠이라고 이번에는 추위에 오슬오슬한 날씨가 온담? 아래층 진이네는 벌써 보일러를 틀었다. '가을은 올 것인가?' '무려 넉달 가까운 삼복더위는 과연 끝날 것인가?' 영 미심쩍었는데...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가고 태양을 향한 지구별의 각도가 약간 틀어지고 나니 세상에 추위가 느껴지다니... 어느 기상학자가 말했다나? "올해 그 지겹게 덥던 해가 우리가 최근 누렸던 가장 시원한 해로 기억되리라!" '하나뿐인 지구'의 미래는 참 불길도 하다.
어젠 김원장님이 임실에서 남원에 왔는데 휴천재에 잠깐 들르려는데 점심때라서 어떠냐고 묻는다. 우리는 '무조건 환영'. 친구가 오면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걸로 만사 0K! 친구(親舊)란 있는 음식 나눠 먹으면서 식구(食口)되는 게 아닌가? 소박한 밥상이지만 한 식구 더 있으니 둘만 먹던 때보다 한결 맛있다. 식후 과일과 커피로 마무리하고 김원장님은 어머님 약을 타러 남원의료원으로 떠났다.
그분이 오면 늘 우리 부부는 '문제아'로 상담 대상이 되고 원장님은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느라 애를 쓴다. 오늘은 "휴천재 배나무를 크게 전지해야 하는데 비싼 인건비를 주고 전문가를 부를 것인가?" 보스코 소원대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전기톱을 돌려도 될 것인가?"가 현안문제였다. 아내는 '절대 안 된다!' 만류하고 '집사람 집에 없을 때라도 기어이 하겠다!'니 '타협안이 안 만들어진다.'는 김원장님 평가. 수년 전 정말 나 없는 새에 사다리 둘을 묶어 높다랗게 만들어 전기톱을 들고 올라가 독일가문비나무 가지를 잘랐노라 자랑하는 말을 듣던 날, 나는 절반 기절했었다.
어제 오후 세시쯤 청주교구 김세빈 신부님(교부학자)과 노카타리나 선생이 보스코와 의논할 일 있다며 대구에서 청주 가는 길에 휴천재에 들렀다. 신부님이 담당하는 기관에서 내년부터 평신도 교육을 위한 무슨 프로젝트를 실시하려는데 보스코가 도움이 될지 의논한다는 명분이었다. 우리 두 부부만의 산중 생활이 심심하리라 동정들 하기 쉽지만 산속이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산사람들'의 보너스이기도 하다.
배밭 전지를 놓고 타협을 모르는 남녀가 부부로 묶어진지 51주년이 되는 10월 3일! 해마다 "여보! 당신 결혼기념일 축하해!"라는 새벽인사가 고작인 '신랑'이 올해 결혼기념일에 무슨 축하식을 가질지는 '신부였던' 나더러 정하란다. 남편에게 결혼기념 선물을 받은 것은 결혼 이듬해(1974년 10월 3일) 대건신학대학 교직원 점심식탁에 나왔던 과일을 먹지 않고 남겼다 내게 건네준 사과 한 알이 전부였지만, 집안 재정과 통장을 전부 장악하고 있는 아내로서는 불평할 여지도 없다. 로마에서 어느 해 '아내의 결혼기념일'에 선물 좀 해보라며 '큰돈(?)'을 쥐어줬더니 향수 한 병 사고 상당액은 '삥땅'치는 사고를 쳐서 그 방식마저 포기했다.
밤새 내렸던 비가 그치지 않아 '비오는 산사(山寺)'도 괜찮을 것 같아 우리 신혼여행지였던 장성 백양사에 가자고 했다.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감사의 로사리오를 하며 우리에게 하느님이 착한 이웃들을 통해서, 너무 많은 것을, 흘러넘치게 주셨음에 감사드렸다.
결혼해서는 보스코의 동생들이 살던 6000원짜리 월세방에 끼어들어 가운데를 창호지문으로 막고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혼배미사를 공동집전해 주셨던 네 분 사제들 중에 김성용 신부님만 생존해 계시고, 살레시오 마신부님, 대건 교수 서인석 신부님, 보스코 동창 강영식 신부님은 고인이 되셨다.
보스코의 절친 김수복씨가 자기 자가용을 내줘서 신부 화장, 미장원에서 월산동 성당까지 신부 호송(30분 지각), 결혼식 후 신혼예행지 장성 백양사까지의 여행을 주선해주었다. 우리가 아는 스님이 백양사 주지여서 신혼초야를 그 절에서 '템플스테이'로 치렀고 우리 둘은 배낭을 메고 장성 백양사, 부안 채석강 일대를 돌면서 '가난한 행복'을 누렸다, 그 뒤 반세기로 이어지는...
오늘은 개천절인데도 비 내리는 백양사는 퍽 조용했다. 백암산의 품에 편안하게 안겨 있는 백양사 경내에는 작은 연못 두 군데가 있다. 절입구의 연못을 내려다보며 빗방울 지는 연못에 잠긴 산과 구름, 사찰과 기암절벽의 한없는 아름다움에 마음의 자리를 비워주었다. 우리가 신방을 차렸던 산사의 승방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고서 이웃인 국립공원 내장산(內藏山)을 찾아갔다. 사람의 내장(內臟)만큼 깊디깊은 산속이라 휴천재 창밖이 산,산,산이듯이 내장사도 산,산,산 속에 자리잡도 있었다. 온산이 단풍나무로 덮여 우리나라 제일의 단풍놀이가 이뤄질 만한 곳이었다. 11월 어느날 단풍이 산을 붉게 태울 때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였다.
내장사 그 오랜 대웅전은 2021년 어느 또라이 승려가 불을 질러 전소했다며 중건(重建) 중이었는데 무슨 분인가를 못 참아 그 고귀한 문화재를 불살라버린 승려는 살아서도 벌을 받고 있겠지만, 죽어서는 무슨 지옥으로 갈까 궁금하다. 보스코의 정의에 의하면 지옥이란 '영원히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자기 후회'라는데...
내장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담양 대전면에 사는 '성삼회딸들' 수녀님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식당 앞의 저수지 호수를 한 바퀴 돌고 식당으로 들어 오는데 앞산엔 쌍무지개가 떠 있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로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보고 하느님과 땅 위에 사는,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계약을 기억하겠다."(창세 9,16)는 말씀처럼, 우리 결혼기념일을 쌍무지개로 마음 써주시는 분께서 우리의 남은 여생도 저 무지개 다리처럼 아름답고 평안히 건네가게 당신과 우리 부부 사이에 세워진 계약을 기억해주시겠다는 표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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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973년 가톨릭대 신학부에 입학했을때, 신학교에서 늘 1등하던 수재 한명이 부제품 직전에 바람(?)이나서 나가버렸다는 소문이 혜화동 캠퍼스를 왁좌지껄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바람났던 두 분의 결혼식 사진을 여기서 이렇게 보게되다니....ㅋㅋㅋ세월이 어느덧 유수처럼 흘러 50여년이 지났군요....캐나다에 구혼(?)여행 한번 오세요...숙식은 책임집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