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924일 화요일, 흐림


궂은 비가 오랫동안 지나간 채소밭은 처참하다. '도시농부'가 야심차게, 죽은 유영감네 몇 년간 농사를 안 지어 풀밭이 된 논 두 다랑이를 빌려 논을 갈아엎고 한 다랑이는 무와 배추를 심었고 다른 한 다랑이는 양파와 마늘을 심겠다고 논에 이랑을 만들고 멀칭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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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본래 논이었던 땅이라 요 며칠 폭우로 물이 찼고, 빗물이 빠지지 않다 보니 이랑의 무와 배추가 널부러져 다시 일어나지를 못한다. 서연씨가 무의 운명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이제 저거는 어찌 될까요?” 보통은 논이어서 물이 차는 밭의 채소는 비가 많이 오면 자칫 물러져 죽는다. 그래도 초짜 농부의 기대를 짓밟을 수 없어, “기다려봐요. 뿌리가 실하면 일어 서는 데는 금방이니까요.” 


그러나 그곳 이랑에 쓰러진 병사들은 며칠 지났는데도 일어서지를 않는다. 오늘 오후도 아래 다랑이에서 그 부부가 풀을 뽑고 있는데, 재미없다고 쉬이 밭농사를 포기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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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9월 23일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창립 50주년! 보스코는 명동성당 기념미사에 참석하러 갔다미루네 차로 그 부부와 강성호 선생과 함께 함께 다녀왔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못 가기에 보스코가 오가는 길에 일동이 먹을 간식을 챙겨 들려 보냈다. '세상에, 유치원생 소풍가방도 아니고' 라며 간식가방을 흉보지들 않았을까? 


80년대 로마에 살 때였다. 리미니(이탈리아 동해안 유명 피서지)에 사는 지인이 서른두 살 된 아들이 로마로 공무원 취직시험을 보러 가니 우리 집에 며칠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집에서 자고 먹기로 했는데도 엄마가 꾸려줬다는 그의 가방을 열어보니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식사를 준비해 일일이 포장하고 끼니 위에다 번호까지 붙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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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아이들은 대개가 '맘마보이'들이고 어미들도 그만큼 극성스런 '컹가루 엄마'들이긴 하지만, 30대 아들의 사흘치 아홉 끼니 도시락을 두고 우리가 놀려대자, 루카는 쪽팔린 화제에서 빠져나가려고 우리 유치원생 빵고에게 "리미니 우리 집에 오면 집에서 키우는 새끼 악어 '코코드릴로 루이지'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넘겼다.


어느 핸가 우리 온 가족이 동해안  그의 집에 들렀을 때, 천진한 빵고는 그의 집 전부를 뒤지며 '코코드릴로 루이지'를 찾았다. 그 동안 내무부 공무원이 된 루카는 "루이지는 지금 외출 중이라서 만날 수 없단다."라며 시침을 뗐다. 실상 그 집에서 키운다는 애완용 악어 '코코드릴로 루이지'는 '피터팬'처럼 30대에도 엄마 품에서 절대 못 떠나는 외아들 루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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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른 새벽에 심한 부정맥이 왔던 보스코였지만, '귀요미' 미루의 극진한 보살핌에 '아부이'를 맡긴 터라 서울 명동까지 무사히 모셔가고 저녁 10시 20분에는 아무 탈 없이 생초 톨게이트까지 데려다 주고 갔


암울했던 7,80년대 군사(반란)정권의 독재하에서 횃불이 되어 국민을 고무했던 가톨릭 사제들의 용감한 항거는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라도 민주주의를 지켜온데 공헌했다고 어제의 대부분 언론들이 보도하였다. 그 시기에 함께 활동했던 많은 사제들과 민주화 운동 동지들을 만나서 함께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는 보스코.

11년전: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110857 


세월과 나이는 피해 가지 못했지만 당대의 결연했던 각오와 의지를 함께 회고하며 친일세력을 고스란히 커밍아웃시키는 현정권과의 대결을 다짐하는 자리였단다. 사제단의 창립 50주년 성명서 "사제단을 일으켜 세운 순교자들"이 그런 결의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현정권처럼  국민의 정치감각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연일 보도되는 요즈음이야 말로 '사제단'의 존재가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사제단 성명서: http://www.catholicworker.kr/news/articleView.html?idxno=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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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귀가 후 보스코의 핸드폰이 안보였다! 미루더러 혹시 차에 보스코가 핸폰을 떨어뜨렸나 찾아봐 달라고 했는데 이를 확인하러 신호를 보내보니 죽암휴게소 편의점 안내가 보스코의 핸폰을 받더란다. 보스코는 그곳에서 화장실을 다녀온 게 전부인데 들르지도 않은 편의점에 가 있었다니... 길바닥에 떨어진 걸 누가 주워다 맡겼나?


정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보스코다. 걸핏하면 모임 장소나 식당에 가방이나 물건을 놓고 온다. 미루는 '안전하게 인수인계하여 (이번 경우는 자동차 door to  자동차 door) 택배를 마쳤다'고 생각했는데 하자가 났다고 아쉬워할 게다.  "그런데 어쩌냐, 이 사고뭉치가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니?" 라며 탄식할 수밖에? 그걸 찾으러 죽암휴게소까지 가기가 그래서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주운 핸폰을 택배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착불로 보내주겠단다. 아내 곁에서도 '손이 많이 가지만' 그를 혼자 보내면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곤 한다.


그런데... 오늘 오후에 휴천재 마당의 시든 꽃대를 자르려 전동가위를 찾았더니 온데간데 없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주 대추 따던 날 식당채 지붕에서 내가 대추나무 가지치기를 하면서 그 가위를 쓴 기억이 났다. 그동안 내린 큰비에 전기로 가동하는 기구를 밖에 버려두었으니 빗물로 망가지지나 않았나 걱정이 됐다.


핸드폰 분실로 의기소침했을 보스코가 반격을 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나로서는 "여보, 정신 좀 차려요. 물건 좀 제자리에 놓고!" 라는 남편의 잔소리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고 나로서는 "사돈 남 말 하지 맙시다!"라는 대꾸까지 만들어두었는데, 아무튼 두 사람이 함께 늙어가면서 날로 절감하는 건망증을 확인하고 서로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담아 웃음 지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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