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란 글방
지리산 휴천재 일기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맑음
월요일 아침. 쓰레기 통을 들고 휴천재 분리수거 통들이 있는 감동으로 간다. 두 식구가 사는데 웬 쓰레기가 이리 많이 나오나? 플라스틱, 유리, 비닐, 종이, 패트병... 흥청망청 쓰고 버리며 세상은 다 망가진다고 며칠전 '기후정의 행진 거리미사'에 간다면서 우리 딸 ‘꼬맹이’가 나더러 그 미사에 나오라고 했는데, 서울을 일찌감치 탈출한 터여서 참석을 못했다. 참석자 드레스 코드는 태양을 상징하는 빨강색이었다는데, 요즘처럼 지글지글 타는 태양열을 보면 우리 죄가 크다.
어제 오후에 희정이를 만나보러 오도재를 넘었다. 희정이는 여전히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간호사가 되어 대학병원에 취직한 딸 주원이는 ‘의사대란’으로 아직 취직한 병원에서 부르질 않아 못나가고 집에 있다. 그애가 졸업한 지 벌써 1년인데 병원에서 부르길 기다리니 올해 졸업하는 간호과 졸업생은 아예 구인하는 병원이 없어 절망적이란다. 나라가 모든 구석에서 이렇게 망가지니 어디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국민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엊저녁을 먹고 느즈막하게 산보를 나가는데 어둑해지는 시간에(무더위를 피해) 동네 아짐들이 텃밭에들 나와 일을 하고 있다. 산봇길에 만난 거문굴댁은 허리 다쳐 소문난 보스코가 지팡이 없이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반갑다며 보스코의 손을 잡아준다. (남정네가 친절을 보여 과수댁 손을 한번 잡아주었다 난리가 났다는 동네여서) 아낙네가 남정네 손을 붙잡아 주는 광경은 정말 '문화적 예외'에 해당한다. '이엄마'도, 가밀라아줌마도 보스코에게 보여준 적 있는 이 친절은 그만큼 보스코가 그미들에게 오라버니처럼 사랑받는다는 증거이리라.
한남댁도 배추를 심고 있었는데 우리가 산보에서 돌아올 때는 이마에 전등을 켜고 석탄 캐는 광부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아직도 배추를 심고 있었다. 윗동네 이장이 내려와 얘길 하다 늦게 올라 갔다면서 “남편이 없으면 편할 것 같았는데, 사람사는 꼴이 말이 아니라요.” 한다.
집에 돌아와 마룻방 바닥을 보니 어디서 들어왔는지 손톱 만한 청개구리가 나갈 길을 찾아 헤맨다. 보스코는 ‘파리채에 얹어 내보내 줘요.’ 하는데 그 작은 몸피로 얼마나 재빠르게 뛰는지 내 손에 붙잡히질 않는다. 싱크대 하수구로 올라왔는지 사방 창문에 쳐놓은 모기장 틈새로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가구 밑으로 숨어 들어가 붙잡기를 단념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에 서재로 간 보스코가 청개구리가 책상에서 (라틴어 좀 하나 보다) 자기를 반겨주더라나? 보스코가 그 녀석을 붙잡아 데크로 내보냈는데 폴짝폴짝 뛰어 데크 밑 풀밭으로 4,5미터를 다이빙하더라나? 몇 해 전 서재에 커다란 뱀이 들어와 보스코 책상에 똬리를 틀고 번역하는 시늉을 하고 있어 내가 쓰레기통을 거꾸로 덮어서 그대로 되담아 뒤뜰로 내보낸 적도 있는데....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295464
부추꽃도 파냄새 아닌 향기를 뿜는다
보스코는 새벽에 일어나 서재로 가는 길에 반드시 데크에 나가 아직 깜깜한 밤하늘의 별들을 본다. 요즘의 새벽은 오리온이 남쪽 하늘을 차지하고 그 위론 황소좌의 플레아데스가 유난히 선명하다고 나한테 자랑한다. 하늘의 말 페가수스, 마차부 아우리가 가까이는 에티오피아 여왕 카시오페아 가족, 그러니까 케페우스(남편), 안드로메다(딸)와 페르세우스(사위)가 중천과 동북녘 새벽 하늘을 온통 차지하는 계절이다
‘저 별이 반짝이면(e lucevan le stelle)’ 보스코는 서재에서 뜬구름 잡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대저를 번역하고, 나는 그 별들이 사라지고 왕산이 부옇게 밝아오면 비닐 몸뻬로 갈아입고 마당에 내려가 반송을 덮고 하얀 꽃을 무리져 피우는 환삼덩쿨이나 바랭이나 달개비가 뒤엉킨 현장에 낫질을 한다. 그는 두뇌를 움직여 살아가고, 나는 손발과 다리로 땅흙과 교감하며 살아간다. 말하자면 휴천재에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철학을 하는 '형이상학남'과 땅을 딛고 손에 낫을 든 '형이하학녀'가 산다.
어제오늘 우리 텃밭에서 가지를 50개쯤 따서 다섯 개는 이탈리아식 가지요리를 하고, 나머지는 갈라서 햇살에 말렸다. 어린 가지도 말려서 살짝 덖으면 가지차로 우려 마시면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올 가을엔 가지를 한 300개 말려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겠다.
어제 저녁도 오늘 저녁도 비닐 봉지를 들고나가 산보를 하며 길가에 야생 치커리를 찾는데 추석맞이로 면사무소에서 사람을 사서 길가의 풀을 예초기로 베어낸 터라 치커리도 모두 날려보냈는지 눈씻고 찾아봐도 없고 나무마다 칡이 올라가 칡꽃을 나름 차림하고 피웠는데 별로 호감이 안 간다.
치커리 나물은 빵기 빵고 두 아들이 좋아하는데 그게 없어 이번 추석엔 파프리카 아 로스토를 장만했다. 파프리카를 겉까지 까맣게 구워 두꺼운 겉껍질을 까버린 뒤 살만 쪽쪽 찢어 올리브유, 파슬리, 마늘, 소금으로 무쳐 냉장고에 넣었다. 빕스틱과 먹기도 하고 스파게티와 버무려 파스타로 먹을 수도 있다. 거의 일년 만에, 휴천재로 추석을 쇠러 오는 작은아들이 무척 기다려진다.
산보에서 돌아오는 길가의 폐교는 밀림 같던 마당은 예초기로 깎았지만 허물어져 가는 건물 창창에 걸린 커튼들은 유령들의 머리채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너풀거린다. 임실댁이 살아 생전 부지런히 농사짓던 구석밭은 잡초밭이 되었다. 이만 때쯤이면 풀 하나 없이 깔끔하게 가꾸던 임실댁의 손길과 밝은 웃음이 그립다.
엊그제 일요일 밤에 일기를 올려놓고 보니 글꼭지 일련 번호가 4444! 4자가 무려 넷이니 참 오래도 글을 올려왔다. 2009년 8월부터 15년을 페친들과 얘기 나눠온 길이어서 70대 아낙의 시골생활을 따라 읽어온 분들이 고맙다. 때로는 밤늦게까지 테블릿에 전자연필로 하루 이틀을 더듬어 글자로 옮긴다는 것은 치매 예방 차원에서도 좋다니 내 나름 보람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