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7일 화요일. 흐림
지리산의 새벽 (조하성봉 사진)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도 혼잣말을 한다. “오늘 너무 피곤했으니 내일 아침엔 늦잠을 좀 자야지. 내일은 별로 할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그러나 아침에 잠이 깨면 내 머리속에서 나를 거역하는 역적모의가 일어난다. 순간적으로 ‘아직 못 다한 일’과 ‘해야 할 일’들이 좌르르 줄을 선다, 순서도 없이.
그래, 우선 오늘 잉구씨에게 텃밭 갈아달라 부탁하려면 옥수수 대를 잘라야 한다. 다섯 시가 지났으나 아직 먼동이 트지 않아 사방이 어둡다. 보스코는 벌써 기미를 알아채고 “아직 어두운데 어딜 가려고?” “벌써 다섯 시가 넘었어. 옥수수대만 잘라내고 올 께요.” 전동가위로 옥수수 대만 잘라내는 데는 30분이 소요됐다. 그걸 끌어내고, 먹을 만한 옥수수를 따고, 옥수수대는 끌어다 기욱이네 땅 경계에 쌓아 놓으니 울타리가 만들어졌다.
이어서, 텃밭 이랑에 씌운 비닐을 마저 걷어냈다. 한남댁이 고추밭으로 올라온다. 우리 밭에 심은 찰옥수수는 그미가 준 씨를 심은 것이어서, 생쥐 만한 옥수수 열댓 개를 그미에게 주었다. “어제 사모님이 준 배를 까먹어 보니, 겉만 좀 울퉁불퉁하지 아주 맛있고 달더라고요.” 시골에선 이웃에게 무엇을 줬다가도 '몹쓸 것을 주었다.' '못 먹을 걸 주더라.'는 얘기를 듣지 않을까 걱정이 들곤 한다.
전전날 '도시농부'가 깔아준 퇴비봉투를 낫으로 열어 흩뿌리면서 한남댁에게 물었다. “비닐 걷고 거름 흩고 멀칭을 하고 나면 며칠이나 둬야 하죠?” “배추건 무건 금방 심으면 모종이 죽어삐리니까 거름이 삭게 일주일은 그냥 두시라요. 사모님 서울 가면 저라도 드물댁 데리고 심어드릴 테니 꺽정 마시구.” 이래저래 거름까지 골고루 괭이로 뿌리고 나니까 10시. 보스코에게 전활 했다.“나 너무 힘들어. 마실 물 좀 갖다 줘요.” 새벽부터 책상에 앉아 있다 내 호출에 물병을 들고 내려온 보스코는 내려오는 사이에 벌써 깔따구에게 물려 이마에 혹이 부어오른다. 말 그대로 '바라만 보기에도 아까운 남자.'
어제 오후, 잉구씨가 트랙터를 몰고 내려왔는데 우리 밭을 갈기 시작하자 기계가 고장나서 서버렸다. 그 사람 것은 워낙 낡은 기계라 늘 불안했는데 드디어 말썽을 일으켰다. 얼마 후 윗동네 이장의 전화가 왔다. “잉구가 기계 꺽정을 하던데 옆집 사람이 새 트랙터 몰고 내려갈 테니 꺽정 마이소.” 조금 후 임씨가 자기 트랙터를 몰고 내려왔다. 임씨는 얼마 전 나무를 베다 소나무가 사람 위로 쓰러지는 바람에 크게 다쳐 우리 밭 밭갈이는 그 트랙터로 잉구가 일을 마쳤다.
이래저래 윗동네 남정들 성가시게 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우리 동네 아짐들도 마찬가지다. 밭일이 끝나갈 즈음 소나기가 쏟아졌다. 멀칭은 다음날 윗말 이장님이 와서 기계로 해준다더니 비까지 내려 하느님까지 협조해주신 셈이다. 고맙고 잘된 일이다.
오늘 화요일 아침 10시. 윗동네 이장이 관리기를 달달달달 시속 5Km로 몰고 내려왔다. 관리기는 앞으로 밀면 땅을 갈면서 가므로 포장도로 위를 가기에는 무척 힘들어 뒷걸음질로 옮긴다. 문상마을에서 문하마을까지 뒷걸음질로 기계를 끌고 내려왔다. 자기 밭농사도 아래위 마을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 더구나 병석에 누운 아내를 돌보며 집안일을 남자가 다 해내는 중이다.
내가 인삿말로 “여자가 아픈 것보다 남자가 아픈 게 집안 살림엔 훠얼~ 나아요.” 했더니 “우리 집은 다릅니다. 내가 아프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집안 살림이건 농사건 나 아니면 절대 안됩니다.”라고 대답한다. '아~. 정말 저럴 수도 있겠구나. 화초 남편을 모시는 우리 집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더구나 허리까지 다친 다음엔...'
그가 관리기로 이랑을 올리고 비닐 멀칭을 해나가는데 정말 예술이다. 내가 하면 다섯 시간 넘어 걸릴 일을 기계는 한 시간 안에 다 해치운다. 일머리가 있으면, 나처럼 미련을 떨지 않고도, 시골생활을 해낼 수 있겠지만....
11시가 넘어 내가 건넨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하면서 나누는 그의 가정사에 얽힌 애환을 끓을 수 없어 듣고 있다보니 1시에 남원의료원에 갈 일이 생각 나서 집으로 올라왔다. 점심에 김원장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에 늦을 것 같아 서둘러 차를 몰았다. 보스코가 지난 봄 신경 치료한 어금니가 아프다고 해서 이틀 넘게 타이레놀을 복용하며 버티는 중이다.
우리는 한 시에 꽁보리밥집에서 만나 시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나누다 3시에 보스코의 치과 진료가 있어 헤어졌다. 우린 휴천재표 원앙 배를 가져오고 원장님은 코다리찜을 가져와 물물교환을 하는 장면도 정겹다. 그래서 친구다.
치과의는 보스코의 이빨에 멍이 들었단다. '이빨에 멍이 들다니?' 우리가 낄낄 웃자 의사는 이빨을 에워싸고 잇몸에 치아를 박아 지켜내는 조직에 울혈이 생기면 그런 '비유'를 쓴다고 설명한다. 본인은 딱딱한 바게트를 먹다가 그리 됐다고 말하지만 어려서 이빨 난 뒤 80년 넘게 밤마다 이를 득득 갈아 대니 내 보기엔, 아플 이빨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게 기적 같다. 무슨 충격으론가 '‘솟구친' 이를 의사가 살짝 갈고 이뿌리에 약을 바르고 2주 후에 와서 새로 생긴 충치를 치료하자고 예약하며 돌려보냈다.
빵기나 빵고는 다들 초등학교 때부터 혼자서 병원을 다녔는데, 보스코는 아직도 베이비시터가 필요한 나이. 데려가고 데려오고, 병원에 가면 대합실 의자에 앉혀 놓고 접수하고 계산하고, 의사 앞에 앉혀 놓고 환자의 증세를 대신 설명하고, 약국에 가서 약을 타오고... 우리나라 모든 병원에서 관찰되는 일상 풍경이다. 그 대신 여자가 아프면 혼자 와서 혼자 절차 밟고 혼자 진료 받고 필요하면 나처럼 혼자 입원해서 누워 있노라면 남편이 드디어 '병문안'와서 들여다 보고 가는 것도 일상 풍경이다.
오늘 병원에서 돌아와 드물댁을 불러 멀칭한 밭 고랑에 부직포를 깔았다. 올 가을부턴 정말 텃밭을 둘이 나누어 농사짓기로 작정하고 일곱 이랑은 내 몫으로, 네 이랑은 드물댁 몫으로 나누었다. 풀이 너무 지겨워 저렇게 시커멓게 덮어 놓은 밭을 보노라면 주인의 심보가 엿보인다. 내년 봄쯤엔 부직포를 걷고 그 자리에 꽃씨를 잔뜩 뿌려야겠다. 꽃씨 사이에 나는 풀도 꽃처럼 보이는 경지라야 진짜 농부일 텐데 난 아직 그 경지에서 당당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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