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일요일. 맑음
잉구더러 하루 날 잡아 우리 텃밭 좀 갈아달라 했다(기계로 20분쯤 걸린다). “마, 비닐이랑 꼬랑에 부직포도 한나도 안 치웠드만! 그걸 치워야 밭을 갈든 논을 갈든 할꺼 아닝교?” 맞는 말이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최저온도가 22도! 일할 만했다. 부지런히 의관을 갖추고 (모기가 못 물게 비닐로 만든 몸빼, 얼굴 못 물게 벌망모자, 토시와 목장갑에다 장화) 밭으로 나갔다.
밭고랑에 풀 못나게 부직포를 깔았는데, 그 부직포 위로도 풀이 잔뜩 나 있으니 농사는 바로 ‘잡초와의 전쟁’이다. 꼬챙호미로 부직포의 핀을 일일이 뽑아가며 부직포를 걷어내고 그 위에 붙는 풀은 호미로 긁어낸다. 그 다음 이랑에 멀칭했던 비닐을 걷고 한조각이라도 찢겨져 남은 비닐은 다 줍는다.
하지감자 캔 후 두럭 하나에 드물댁이 옥수수를 심었는데 완전히 모를 부었다. 철 늦은 파종에 어떻게 커서 옥수수를 업어낼까 걱정했는데, 비와 뜨거운 햇살이 내 걱정을 무색케 했다. 한남댁네서 얻어온 토종 찰옥수수 씨앗이어서 금요일 딴 것만도 100여개는 된다. 그런데 그 100개를 솥 두 개면 삶아낼 부피이니 옥수수 한 개 크기가 내 가운데 손가락 두 개 길이다. 든든히 먹었다 느끼려면 스무 개는 먹어야 할 게다. 그래도 향이 좋고 찰지고 맛있어 해마다 우리 밭에는 ‘토종 옥수수’만 심는다.
금요일 점심에는 체칠리아가 오리에 열 가지도 넘는 약재를 넣고 푹 고아서 스.선생편에 한냄비 보내왔다. 보스코가 입맛이 돌아왔는지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니 그가 어느 정도 체중도 회복된 듯하다. 토요일 아침에 잰 몸무게로는 60.5Kg! 교통사고 전 체중(62Kg)을 거의 회복했다.
안수녀님이 다녀간 후 안심이 되었는지 책상앞에 앉는 시간도 점점 길어진다. 둘째 동서는 폐암 수술 후 6개월이 넘었는데도 회복이 더디다. 진이엄마 말대로, “남자가 아프면 여자가 병수발을 하니 회복이 빠른데 그 반대의 경우 남자의 한계 때문에 여자의 회복은 더디게 마련”이란다.
어제 24일 토요일 오전 6시 30분. 강건너 사는 ‘도시농부’ 부부에게 휴천재 배밭 배 따는 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해 둔 터. 배를 따는 일이야 나의 체력과 보스코의 작업이면 별 문제가 없을 텐데 그걸 박스에 담아 손수레에 실어 언덕을 올라가 휴천재 감동에 쏟아 놓는 일은 우리 둘의 능력 밖의 일. 보스코는 허리를 못 쓰고 나는 손가락 류머티스로 손놀림이 어렵다.
그런데 남자 ’도시농부‘는 우리가 딴 배를 연달아 손수레에 실어 나르는 일로 건장한 힘을 발휘했다. 여자 ’도시농부‘는 야무지고 일머리 있게 배를 따서 콘테이너 박스에 담는다. 올해도 작년과 같이 물까치의 피해를 전혀 받지 않아 많은 양의 배를 수확했다.
총동원령은 두어 시간만인 아홉시경 모든 작업을 마쳤다. 우리 네 사람은 휴천재 정자 ’데루타 식탁‘에 둘러앉아 우아하고 풍족한 아침식사로 휴천재 배수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도시농부는 잉구의 밭갈이에 앞서 20Kg 퇴비 푸대를 20여개 이랑 고랑으로 옮겨 주고 갔다. 전에는 보스코가 한 포씩 '배에다 업고서'(배를 불쑥 내밀어 퇴비를 얹어 양팔로 끌어 안고서 오리걸음으로 목표 지점까지 걸어간다) 옮기곤 했다.
우리가 욕심껏 봉지를 싸서 그런지 크기도 탱자 만한 것(“너 배 맞아?”)부터 과수원배 보통 크기인데도 우리가 '특대(特大)'라고 이름 붙인 것까지 다양했다. 올해도 사랑하는 지인들과 한가위를 함께 나눌 기쁨을 거두어들였으니 대만족이다. 10시 넘어 나 혼자서 배 선별을 시작했는데 밤에야 끝났다. 일일이 봉지를 열어 과일이 성한지 확인하고서 다시 봉지를 닫아 소, 중, 대, 특대로 박스에 골라 담는 작업을 말한다.
주부의 노동치곤 노동강도가 너무 빡 쎈데, 문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일인이어서 '노동쟁의'가 개무시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만 2년 로마 카타콤바 생활(1997~1998)을 지켜본 파스콸레 신부님은 “보스코가 가장(家長)이랍시고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여지가 '순란, 잘한다! 아주 잘한다!(Brava Sullan! Bravissima!)' 세 마디 뿐이더라고 평했는데..." 어제 저녁엔 정말 온 몸이 쑤셔 진통제를 먹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우리집 가장은 밤중 어느 시각에도 눈을 뜨면 안경을 찾아 쓰고 서재로 나간다. “이제 겨우 새벽 두 시에요. 좀 더 자요.” 하면 “공부하다 잠 오면 다시 올게.” 하지만 한번 나가면 아침 해가 떠오르기까지 돌아 오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밤중에 침실을 나가면 그는 먼저 '별 보러' 테라스에 나가서 밤하늘 별자리들을 한참이나 감상하고 지름이 900억 광년이라는 우주의 한 구석에서 저 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기 존재를 두고 엄청 감사를 드린다. 은하계가 몇 조 개 깔린 우주라니...
간간이 테라스 구석 흔들의자에 쳐진 거미줄에 가까이 가서 거미줄 상태를 점검하고, 기초줄 가닥을 약간 세게 움직여 지붕 밑 어딘가에 숨어 있다 노획물이 걸린 줄 알고 잽싸게 달려 나오는 거미를 놀려주고, 강철보다 더 단단한 구조와 끈기를 가졌다는 신섬유를 거미줄에서 뽑아낸다는 과학기술도 내게 설명해 주곤 한다. 나이 83 치고는 참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60608
우리 둘의 금슬을 핑계로 내세워 “같은 날 같은 시각 하느님 품에 들게 해 주십사” 떼를 써온 처지이긴 하지만, 근자에 그가 하도 놀라운 사고를 연달아 치고서도 살아남는 게 신기해서 까닭을 나 스스로 묻는다. 하느님도 83세 보스코와 그 노인보다 여덟 살이나 적은 나를 한꺼번에 데려가시는 게 약간 찜찜하셔서, 그러니까 나를 봐서 보스코를 살려두시는 듯하다는 게 근년에 얻은 내 신앙적 추측(과대망상?)이고, 보스코를 협박하는 내 논지이기도 하다.
새벽에 공소예절을 하고 텃밭에서 갓 딴 찰옥수수를 쪄 둘이서 주일 점심을 먹으며 시골생활의 이 소박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오직 감사할 뿐이다.
연중 제21주일: 보스코의 주일복음 단상 : http://donbosco.pe.kr/xe1/?document_srl=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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