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20일 화요일, 맑음


식당채 문 앞에 누가 커다란 병에 황도 통조림을 해서 가져다놓고 갔다. 무언가 갖다 놓고는 누군지 밝히지를 않아 먹고 나서도 늘 염치없는 마음이다종류는 다양하다어떤 날은 애호박 하나, 가지 두 개, 호박잎이나 고구마 순, 때로는 쬐그만 비닐봉지 속에 울콩 한 주먹... 동네 아짐들의 인심이다. 양파도 망째로 정자 위에 떠억 누워서 주인을 말 해주지 않아 누굴까 궁리하다가 잉구씨에게 물으면 "누가 준 게 뭐가 중 하요, 그냥 드시소 마!“ 하면 그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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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고 흔한 푸성귀 정도야 땅이 주는 것인데 나눠 먹는 게 당연하다는 투다그러다가도 옆집 돌담 위에 열려 있는 호박이라도 하나 없어지면 난리가 난다. 누가 남의 것에 손댔다고 온 동네가 소란하다. ‘내가 주는 건 내 마음이지만 안 준 걸 마음대로 따가버린 것은 신의를 저버린 탓이다. 그래서 우리 고추밭에서 누가 고추 따갔네!’, ‘아무개가 가지 따갔네!’ 하며 구체적으로 범인을 거명까지 해가며 쑤군거린다. 그런 습성이 남아선지 안노인한테 의심병 치매기가 생기면 사람들이 아예 그 집에 발걸음을 않게 되어 나이 들어 외로움이 병으로 깊어진다.


휴천재 옆 논 두 마지기를, 유영감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한 해는 읍내아들이 농사를 짓더니 이듬해에는 묵히고 올해도 아예 묵히는 것 같아 보는 사람 맘이 안 좋았는데 농사철 다 지난 7월에사 강건너에 들어온 젊은 부부가 도지로 빌렸다는 소문이 들렸다. 관리기로 땅을 갈고 밭농사를 시작한 흔적이 보였는데, 논이었던 땅에 물이 마르자 사람을 데려다 트랙터로 논을 갈고, 안사람과 둘이서 찾아와 하루에 한 이랑씩 밭을 일구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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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며칠 10시경 와서 땡볕에 고생을 하더니 갈수록 출근 시간이 빨라져 새벽같이 와야 고생을 덜한다는 이치를 터득해 가는 게 신통하다. "600평은 족히 되는 저 땅에 무엇을 심을 생각이냐?" 물으니 "무 배추를 심겠다."는 대답. ”보아하니 두 식군데 그걸 누가 다 먹느냐? 판로라도 있느냐?" 물으니 "그냥 심는다." 라는 대답. 내가 처음 농사 지을 때가 생각 나서 "양파나 마늘을 좀 넉넉히 심고 무 배추는 먹을 만큼만 심으시라양파와 마늘은 나라도 팔아 줄 수 있고 유통이 수월하다."고 일러주었다


2007년 말 휴천재로 정식 이사를 와서 이 동네에서 제일 농사를 모르는 드물댁을 스승으로 모시고 '드물댁 사사'를 받으며 농사를 배운 주제에 그 배움을 이웃 농부에게 전수하게 되었으니 미꾸라지 용된 기분이다. 그들 농사짓는 법을 지켜보다 우리 부부는 그 부부에게 도시농부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올 봄에 아랫마을 함바집에서 양파 여덟 망을 샀다. 논이 아니고 밭에서 키운 걸 보았기에 친구랑 딸들에게 주려고 샀는데 감동 바닥에 널어서 말리는 중에도 썩는 게 계속 나온다. 큰딸이 세 망을 가져갔는데 거기서도 한 망은 썩었더란다. 우리 것은 아주 썩은 건버리고 썩어가는 순서대로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한 다라이쯤 까서 거듭 양파김치를 담아 이웃들과 나눠왔다. 어제는 아주 성한 것만 작은 망 넷을 만들어 저온창고에 넣고 나머진 식당을 하는 양파 주인에게 가져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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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상했으니 돈을 돌려달라는 게 아니고, 댁에서 어렵게 지은 농사를 버리는 게 마음에 걸려 가져왔으니 댁에서는 식당하느라 김치 많이 담그니까 서둘러 감치 담가 먹으라." 당부했다. "농사지은 아줌마 탓이 아니고, 이번 여름처럼 날씨가 무덥고 습하다 보니 사람들도 성하지가 못한데 양파인들 견디겠어요? 버리지 않고 쓰신다니 내가 고맙다구요." 라며 안심시켰다. "당신 농사 탓이 아니고 지구의 날씨를 이렇게 아프게 만든 우리 모두의 잘못이에요!"라는 설명에 식당주인은 겨우 마음을 놓고 받았다.


청주에서 온 내 일기 페친이 가까운 백무동에 산행을 와 가네소폭포에 있다면서 일기에서 많이 본 휴천재를 방문하겠다고 전화했다. 낯 모르는 사람들 몇이 휴천재 앞까

지 올라와서 "이 집 맞아. 저기 '휴천재'라고 팻말까지 붙었잖아?"라며 '기념사진'(?)을 찍고 눈인사를 하고 떠나는 페친은 있었지만 두 분은 성지(聖地)도 아닌 곳을 굳이 방문씩이나하겠다니 반가이 오시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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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넘게 내 일기를 읽어와서, 나보다 내 생활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청주에서 온 교우 부부로 남편은 요셉, 부인은 로사였다. 일단 '휴천재 관광'을 마치고 간단한 다과를 들고나서 두부부는 산청 동의보감촌에서 육회비빔밥을 먹고 옆집에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 나누다 헤어졌다.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듯한 친밀감이 있었고 이렇게 찾아주니 고맙기도 했다.


집에 오니 도시농부부인이 남편이 바다낚시 가서 잡아온 우럭으로 매운탕을 끓였다면서 가마솥 만한 냄비를 안고 왔다. 우리 집도 한 냄비, 진이네도 한 냄비를 퍼내고 도정 체칠리아씨가 아픈데 해줄 것이 없던 중이라 얼른 냄비를 들고 도정으로 올라갔다.  


따뜻한 마음들이 뜨거운 매운탕으로 끓여져 그 부부가 사는 강건너 '송지 팬션'에서 '휴천재'로, 그리고 도정 '솔바우'로 옮겨가는 시골 인심이다. 오후에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진 저녁나절, 지독한 습도에 참 덥다고 탄식하려다 36도 넘는 무더위로 고생하는 인천 큰딸이 생각나 '이 더위 어서 가기만 기다리기로' 했다


보스코는 올 봄부터 휴천재 근방에서 새끼를 치다 오늘 '휴천재 포토존'(집 앞 구장네 감나무 꼭대기)에 포즈를 취한 꾀꼬리를 촬영하는데 성공하고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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