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8일 목요일, 맑음

 

어제 7일 수요일은 입추(立秋)였다. 말만으로도 가을에 들어섰다니 기분이 풀리는데 여전히 덥고 습하다. 내일 9일에 빵기네 가족이 휴천재에 온다 해서 집안 대청소를 했다. 아들네한테 내무검열을 받는 것도 아닌데도,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그림의 액자들까지 닦았다. 두 노인이 사는데도 더러워지기는 마찬가지여서 청소도 매일 해야 한다. 그래서 손님이 오시면 대청소를 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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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장 안의 침구들은 아들네 쓰도록 어제 모두 꺼내 테라스에 걸쳐 햇볕과 바람을 쏘였다. 9시에 널었다가 3시에 소나기가 내린다고 예고되어 있어서 1시 반에 걷었다.그것들을 걷어다 접어 이불장 안에 넣을 때 이불에서 나는 햇볕 냄새는 상큼한 엄마 냄새여서 기분이 좋다. 이런 작업은 대부분 보스코가 돕는다. 보스코도 어렸을 적 어머니가 외출에서 돌아오시면 치맛자락에서 나던 햇볕 냄새 바람 냄새가 좋았단다.


화요일에도 내가 오이 밭에 받침대를 올리려 하자 대나무를 베어다 주었다. 예전에는 일년에 서너 번 보스코가 텃밭에 예초기를 돌려주었는데 이번에는 그의 허리 땜에 내가 말려 그 작업을 못한다. 아예 내가 예초기를 돌리겠다니까 위험천만이라며 나를 말린다. 실은 내가 더 잘 할 수 있고 내게 익은 낫질보다 쉬워 보이는데 그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 같아 나도 굳이 우기지 않았다. 요즘은 나도 풀을 매고 낫질을 하는데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염이 또렷하고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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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호리 밭 풀베기를 일년에 두 번씩 맡아주는 경모씨가 고맙다. 텃밭 배나무 밑도 베어주기로 했는데 산판 일에 나갔다 말벌들한테 집단 공격을 당해 정신을 잃었단다. 그는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요 또 그래야 처자식을 건사하는 귀농자다. 말벌사고 덕분에(?) 일주일 휴가를 얻었지만 쉬이 회복이 안되는 듯하다. “다른 사람 같으면 생명이 오갈 문젠데, 제가 워낙 건강한 몸이어서 이만했어요.”라며 되레 나를 위로한다.


어제 입추에도 가을바람은 소식없고 오후 4시쯤 스콜이 한바탕 쏟아졌다. 그래도 바람이 일며 한바탕 비를 쏟고 나면 땅의 열기가 식고, 산청 왕산 쪽으로 멋진 무지개를 걸어놓고 해가 기운다. 공기가 맑아 무지개도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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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늦은 산보에서 돌아올 즈음엔 여름 별자리가 유난히 화려했고 전갈좌가 와불산에 꼬리를 묻고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휴천재 굴뚝 위에서 우리 집을 지킨다. 엊저녁엔 오랜만에 두꺼비도 한 마리 보았다. 가로등이 켜지는 시각이면 등마다 엄청난 날벌레들이 모여들고 전등에 부딪쳐 떨어지는 벌레들을 날름날름 받아먹던 두꺼비도 근년에는 보기 힘들어졌다. 생태계가 굉장한 속도로 파괴되면서 제일 먼저 몰살 당하는 것이 벌레들이다. 며칠 전부터 메미 소리도 나기 시작하는데 예년의 10분의 1로 소리가 줄었다. 고추잠자리 비행도 현저하게 보기 힘들어졌다. 지구호(地求號)의 생명들이 멸종해가는 징조가 시골에서는 더 뚜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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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요일은 느티나무독서모임’. 서구 세계가 부추기는, 끊임없는 수단의 내전으로 절망에 젖어 살던 톤즈 사람들에게 빛으로 다가간 신부 이태석전기를 읽었다. 이충렬 전기작가가 썼고 김영사에서 나온 책이다. 보스코의 안식년이었던 1997~98년 로마에서 가까이 지낸 수사(그때는 아직 부제였다)여서 그의 짧은 일생은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의사의 길에서 수도생활로 부르심에 호응하였고, “주님, 저를 보내주소서, 당신 손길이 필요한 곳에!라던 그의 기도처럼, 그 힘겨운 아프리카로 가서 그곳 젊은이들에게 치유자요 희망이 되어주었다. 가난하고 버림받고 위험 중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우선을 두는 돈보스코의 가르침을 그는 철저하게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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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난한 사람들이 내놓는 미사 봉헌예물이 이태석 신부로 하여금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꼬깃꼬깃 접은 수단화 1파운드(한화300), 정성 들여 말린 수수알 한 웅큼, 맨발로 초원을 달리며 구한 마른 장작 한 개비를 들고 나오는 봉헌 예절이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모른단다.


진료소를 차려놓고, 완전히 버려진 나병 환자에게는 직접 환자촌을 찾아가 치료하고, 교육시설이 거의 전무한 시골에 학교를 세우고, 젊은이들에게 삶의 활기를 찾아주기 위해 음악을 가르치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준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남수단 청년들에게 하나의 희망이 되었으리라.


그러나 하느님은 하늘에서 그가 더 필요하셨던지, 그의 나이 48세에 하늘나라로 불러가셨다. ? ? 구세주로 지상에 보내신 당신 외아드님도 설흔셋 나이에 거둬들이신 분의 깊은 뜻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그분의 각박했던 생애로 보아 이 풍요로운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걸 잃어버렸나를, 욕심껏 이기적으로만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젊은이들과 교육자들에게 인생의 또 다른 가치를 일러주는 책이었다고, 불교신자 개신교신자인 '느티나무' 여인들이 책을 덮으며 많이 울었노라고 실토했다.


1997년 로마에서 공부하던 백광현[새 관구장], 신현문, 이태석 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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